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 건너가 자랐으며 최근 미국 프로풋볼리그(NFL)의 슈퍼볼에서 올해의 MVP(최우수선수)로 선정된 하인스 워드(Hines Ward, 30)가 3일 한국에 왔다. 그는 4일 노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한 데 이어 5일에는 서울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을 예정이다. 그의 방한 기간 내내 다양한 환영 행사가 열린다. 이와 함께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혼혈 청소년들의 교육과 사회적응 문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증가하는 국제결혼, 다인종 국가 진입 멀지 않아**
현재 한국의 혼혈인구는 3만5000여 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의 0.73%에 해당한다. 하지만 국제결혼이 크게 늘고 있어서 이 수치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2003년 전체 결혼의 8.4%를 차지하던 국제결혼이 지난해에는 13.6%로 늘었다. 불과 2년 만에 5%포인트 이상 늘어난 것이다.이 중 상당수가 동남아시아계 여성과 한국의 농촌 거주 남성의 결혼이다.
현재 전북 지역에 거주하는 혼혈 학생 755명 중 고등학생은 11명이고 중학생은 44명인데, 초등학생은 700명에 달한다. 학년이 내려갈수록 혼혈 학생의 비율이 큰 것은 농촌 지역에서 혼혈 아동의 출산이 늘어가는 추세가 반영된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전북 장수군의 장수초등학교에서는 전교생 357명 중 20명이 혼혈 아동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추세대로라면 2020년에는 20세 이하 인구 5명 중 1명(21%)이 혼혈인이 되고, 신생아 3명 중 1명(32%)이 혼혈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혼혈 학생들의 교육에 관한 문제는 이제 '특수한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문제가 공론화된 적이 별로 없다.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라는 통념이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인스 워드의 MVP 선정이라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라도 혼혈 학생들의 교육권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혼혈인'을 대체할 표현을 찾는 게 시급**
전문가들은 우선 '혼혈인'이라는 표현을 대체할 말을 찾는 것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피가 섞였다는 뜻의 혼혈이라는 말은 순수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설령 부정적인 뉘앙스가 없다고 해도 인종적 특징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표현이 쓰이는 것은 곧 다가올 다인종 사회에서 갈등의 요소가 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기지촌 여성이나 혼혈인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혼혈인'이라는 표현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이 사용돼 왔다. 하인스 워드처럼 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아메라시안(Amerasian), 다른 아시아국가 출신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이를 코시안(Kosi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난달 전북 교육청이 혼혈인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제안한 '온누리안'이라는 표현도 있다. 또 혼혈아를 국제아, 이중문화 가정의 자녀, 다문화 가정의 자녀 등으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이런 대안적인 표현은 모두 인종학적인 혈통 개념이 아닌 문화적 차이에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이견이 있다. 기지촌 혼혈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단체인 두레방의 김동심 상담실장은 "기지촌 혼혈인들은 한국인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이들은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게 아니라 한국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아메라시안이나 다문화 가정 출신이라는 표현을 거북해 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적으로는 다른 한국인과 똑같은데, 인종적인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다문화적 정체성에 기반한 표현으로 칭하는 것도 부적절하다"라고 말한다. '혼혈인'을 대체할 표현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대체할 만한 표현을 찾을 때까지 잠정적으로 혼혈인이라는 표현을 쓰겠다는 입장이다.
***혼혈아는 있어도 혼혈인은 없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혼혈인이라는 표현이 들어갈 자리에 혼혈아라는 말이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병역법 시행령 제136조(수형자 등의 병역처분) 제1항 제2호 나목에서는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아 및 부의 가에서 성장하지 아니한 혼혈아"라는 대목이 있다. 병역법의 적용대상자는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혼혈아라는 표현이 쓰였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기지촌 혼혈인 인권실태조사'는 그것이 오랫동안 혼혈인이 사회의 주변에만 머물러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성인이 되어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으로 살고 있는 혼혈인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게 쉽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혼혈 '아동'의 이미지가 대신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혼혈인이 들어갈 자리에 혼혈아라는 말이 있어도 어색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혼혈인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성인이 돼도, 사회적으로는 항상 아동으로 취급돼 온 셈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게끔 하는 것, 그리하여 세상과 만나게 하는 것. 그게 교육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혼혈인과 혼혈아가 구별 없이 쓰이는 현실은 결국 그동안 혼혈아들이 교육의 대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단군의 자손'이 아니면 학교에 다니지 말라?**
한국의 교육은 혼혈인들을 완곡한 방식으로 배제해 온 게 아니다. 아예 교과서 자체가 혼혈인들을 내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사, 윤리, 사회 등의 교과서에서 "세계에서 보기 드문 단일민족 국가", "피를 나눈 동포들에 대한 연대의식으로서 민족공동체 의식" 등의 표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군의 자손', '한민족' 등과 같은 표현을 포함한 교가(校歌)나 교훈(校訓)은 부지기수이다.
3월 31일 국가청소년위원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 학교에 다니는 흑인계 혼혈 청소년이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느끼는 비율은 매우 낮다. 37%가 스스로를 외국인이라 여기며, 66%는 외국인과 한국인이 모두 아닌 애매한 정체성으로 자신을 규정한다.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여기는 비율은 외모의 차이가 줄어드는 것에 비례한다. 백인계 청소년들은 11.8%, 아시아계 청소년들은 51.4%가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여기고 있다. 교과서 속의 사진이나 삽화가 설정하고 있는 표준적인 한국인의 유형이 이들을 배제하고 있는 까닭이다.
물론 혼혈 학생들이 학교 안팎에서 겪는 차별은 이것만이 아니다. 2003년 국가인권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혼혈인들 중 73.3%가 "학창시절 피부색으로 인해 놀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따돌림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64.4%로 나타났다. 학교 밖에서 겪은 차별 경험으로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수군거린다"는 응답이 75.6%였고 "성희롱, 성폭행을 당한 경험"도 각각 29%, 8.9%로 나타났다.
***저출산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이민족에 대한 개방성이 절실**
이민족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는 단지 인권의 측면에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심각한 저(低)출산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는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에 대한 준비가 절실하다.
서울시 대안교육센터 김찬호 부센터장은 2004년 〈컬티즌〉에 기고한 '저출산의 해법, 이민족에 대한 개방성과 새로운 사회계약'이라는 글에서 저출산 문제의 해법 중 하나로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가능하게 하는 개방적인 문화의 조성을 제시한 적이 있다. 부족한 인구를 반드시 한민족만으로 메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개방적인 문화를 통해 다양한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사회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먼 훗날의 과제가 아니다. 이미 한국에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연변 동포들, 그리고 탈북자들이 살고 있다. 이 글에서 김 부센터장은 "남북통일도 먼 훗날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제 '차이'에 대한 관용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더욱 절실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교과서를 고치는 것, 혼혈인이라는 말을 대체할 표현을 찾는 것 모두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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