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의 박스오피스를 보면 봄맞이를 기념, 치열한 난타전이 벌어진 듯이 보인다. 갖가지 영화들이 시장에 나와 한껏 기량들을 펼쳤고, 그럼으로써 아마도 승부에 관한 한 후회들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상컨대 이번 한 주가 지나면 또 다시 많은 작품들이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주말 1위를 차지한 <청춘만화> 같은 작품. <청춘만화>는 일단 개봉 첫 주에 전국 82만여 관객을 모으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그 파워는 메이저 배급사가 밀어준 덕이다. 배급사 쇼박스는 이 영화를 위해 전국적으로 무려 373개의 스크린을 비워줬다. 알고보면 한국영화가 수치상으로만 희희낙낙하고 있다는 것은 박스오피스만 봐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치 떨이 장사 하듯 물량공세로 우루루 작품몰이를 함으로써 박스오피스 1,2,3위를 차지하는가 싶지만 그런 영화들 가운데 한 주나 두 주 이상을 가는 작품이 극히 드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흥행 장기 레이스를 밟은 작품은 <왕의 남자>와 <음란서생> 정도뿐이다. 나머지 작품들은 스크린 독점, 마케팅 독점, 심지어 방송가 버라이어티 쇼를 도배하다시피 하며 마치 무슨 대대적인 작전을 펼치듯 흥행몰이를 해서 '만들어' 나간 경우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
|
청춘만화 ⓒ프레시안무비 |
안된 얘기지만, 그리고 웬만해서는 하지 않으려고 한 얘기지만, <데이지> 같은 영화가 딱 그런 꼴이다. 전지현이니 정우성이니 하는 온갖 스타를 다 불러 모은 데에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촬영하며 폼이란 폼은 다 잡았지만 이 영화는 개봉 딱 3주만에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일설에 의하면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다 입이 남대문까지 나온다고 한다. <데이지>를 제작한 아이필름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 이어 또 한번 패착을 둔 셈이다. <여.친.소>와 달리 이번에는 슬쩍 시나리오 크레딧으로 물러난 것처럼 보이지만 책임을 져야 하는 면에서는 절대 에누리를 해줄 수 없는 곽재용 감독 역시 또 한편의 졸작을 만든 셈이 됐다. 제작과 관련된 사람들이 잘못 과대망상에 휩싸이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영화 <데이지>는 여실히 증명해 낸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가치가 매우 높은 작품이다. 지난 주 박스오피스에서는 <오만과 편견>의 선전이 눈에 띈다. 이제 와서 제인 오스틴의 영화를 누가 또 찾겠느냐며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지만, 여성들 가운데 의외로 오스틴 골수 팬들이 많다고 믿었던 배급사 UIP의 뚝심 전략이 시장에서 먹혀 들었다. 예상을 깨고 UIP는 이 영화를 전국 150개 스크린으로 벌렸으며 그 결과 전국적으로 20만 정도의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오만과 편견>은 언뜻 보면 특히 요즘 같은 때에 상업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일종의 '문예영화'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전국 20만이라는 수치는 우리 관객들이 요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영화들에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명작은 오래 가는 법이다. 명화 역시 오래가는 법이다. <오만과 편견>은 단순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
개봉 첫주에 각축을 벌였던 <브이 포 벤데타><여교수의 은밀한 매력><방과후 옥상> 등은 상영 2주째에도 여전히 끼리끼리 경쟁을 벌였다. 모두들 뒷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제히 하락하는 추세다.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러기에는 새로운 작품들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다. 장기 상영작들도 서서히 종영을 준비중이다. <왕의 남자>는 아무래도 1300만 고지는 조금 힘들 듯 보인다. <음란서생>은 예상대로 260만 정도에서 그칠 전망이다. <메종 드 히미코>는 8만5000명을 넘어섰다. 정말 수고한 셈이다. <브로크백 마운틴> 역시 아쉽지만 35만 명 선에서 그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됐든 한국 극장가가가 그나마 모양새를 갖춰 온 것은 이들 작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수를 보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