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신뢰 받는 언론인이자 현직 시절 베트남전에 대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전 CBS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가 이라크 전쟁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루 빨리 전면 철수하는 것이 그나마 미국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10명 중 언론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되기도 했던 그는 23일 〈마이애미 헤럴드〉에 실은 '다큐멘터리가 의회에 경고를 보내다(Documentary Sends Warning to Congress)'는 칼럼에서 최근 개봉된 다큐멘타리 영화 '우리는 왜 싸우는가(Why We Fight)'가 "미 의회와 행정부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끔찍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화에 나오는 베트남전쟁 당시 사이공의 황폐한 모습을 보며 '데자뷰'의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베트남전의 악몽이 이라크전에서 그대로 다시 재현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그는 또 현재의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방법은 "'전쟁의 승리자'라는 칭호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영예에 만족하는 것"이라며 하루 빨리 미국은 이라크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의 칼럼 전문. 원문은 http://www.commondreams.org/views06/0323-20.htm에 실려 있다. 〈편집자〉
***"다큐멘터리가 의회에 경고를 보내다"**
어린 안 두옹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사이공을 떠나던 1973년, 그녀는 자신이 언젠가 미군을 위해 폭탄을 만드는 사람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단지 "자유에 대한 목마름"과 "다른 사람들의 희생"으로 안전한 미국을 향해 떠난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두옹의 삶의 얘기는 얼마전 새로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왜 싸우는가(Why We Fight)'에서 미국의 안전을 위해 일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얘기와 함께 소개됐다. 이라크전쟁 개전 당시 '이라크 자유 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을 위해 이라크에 초기 공습을 퍼부었던, 어리고 눈이 큰 신참 전투기조종사부터 9.11로 아들을 잃은 뉴욕의 경찰 얘기까지 영화는 전쟁이라는 끔찍한 비극이 반복되는 역사를 살았던 미국인 가족들의 얘기를 담고 있다.
오늘날 두옹은 매릴랜드주 인디언 해드의 '해군 해상 전투국'에서 일하는 폭발물 전문가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된 막강한 벙커 파괴 폭탄의 개발을 책임졌던 그녀는 망명자에서부터 '무기 전문가'로 거듭난 자신의 출세를 자랑스러워 했다.
두옹은 "나는 절망을 기억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전쟁은 기억하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남베트남의 많은 사람들은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을 버렸다고 느꼈다. 미국은 결국 모든 지원을 단계적으로 중단했다."
비록 미국으로부터 배신당한 경험이 더 이상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지만, 전쟁의 희생자에서 전쟁 전문가로 거듭난 그녀의 삶의 여정은 참 아이러니하다. 비록 사람들은 두옹의 얘기를 성공한 이민 스토리로 호들갑떨고 있지만, 오늘 이라크에서의 철군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른 지금 영화 속에 그려진 당시 사이공의 가을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데자뷰(旣視感: 과거에 이미 똑같은 장면을 본 것 같은 느낌)'의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내가 지난 1968년 보도한 바 있는 베트남의 수렁(Quagmire)과 오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라크의 수렁은 매우 닮은꼴이다. 달라진 점이라면 당시는 잘못된 전쟁의 명분으로 국제공산주의의 위협이 거론된 반면 오늘날은 그 위협이 국제 테러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구체적인 명분은 달라졌지만, 거짓과 잘못된 약속, 그리고 나날이 커지고 있는 국민적 불신은 그 때나 지금이나 모두 똑같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리가 전쟁의 수위를 높이면 높일 수록 우리는 더욱 더 빠른 속도로 우주적 재앙에 다가서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이라크 주둔 미군의 4분의 3은 미군의 전면 철수를, 4분의 1은 즉각적인 철수를 원한다고 대답했다. 행정부의 '똥고집' 낙관주의에도 불구하고 3분의 2의 미국인들은 현재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미 의회에서는 이런 목소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1968년 나는 방송을 통해 당시 베트남의 상황을 '교착상태(stalemate)'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라크 사막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현재 미군의 상태를 '교착상태'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하루라도 빨리 손을 떼야 한다는 것이다. 사마라에서의 황금 사원 폭파 사건 이후 시아파와 수니파는 서로 충돌하고 있다. 우리 군인들은 그들의 주둔 자체가 폭력사태를 초래하고 시아파와 수니파간 화해의 장애물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내전을 막아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과거에 베트남에 관해서 여러 차례 얘기했던 것처럼 나는 현재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유일한 방법은 '전쟁의 승리자'라는 칭호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영예에 만족하는 것이라고 본다. 최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닥쳐온 직후에 나는 지금이 바로 이라크에서 명예롭게 철수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라고 주장했었다. 우리는 당시 엄청난 폭풍으로 황폐화된 우리 사회와 사람들을 돕는 데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총동원해야 했던 매우 어려운 순간이었다. 물론 의회의 그 어떤 사람도 내 말을 새겨듣지는 않았다.
일반 미국인들 뿐 아니라 의회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영화 '우리가 왜 싸우는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 영화는 우리 의회와 행정부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끔찍한 경고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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