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당시 기업인수합병(M&A)을 도와주며 거액의 사례비를 받은 '기업사냥 브로커'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돼,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M&A 관련 `검은 공생관계'의 실체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검찰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 금융계의 마당발로 통하던, 한 설팅업체의 전 대표 김재록(49) 씨를 22일 체포한 데 이어 23일에는 김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김 씨를 상대로 금융기관 대출 알선, 부실기업 인수합병 관련 금품수수 등 알선수재 혐의를 추궁하고 있지만, 이는 검날이 겉으로 스치는 부분이고 실제로 겨냥하는 타깃은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체로부터 인수합병에 대한 청탁을 받고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부탁해 검은 돈을 매개로 청탁을 성사시켰는지에 수사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검찰 주변의 관측이다.
김 씨는 정관계에 구축해놓은 광범위한 인맥을 토대로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각종 금융구조조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나면서 '인수합병의 달인', '기업사냥꾼' 등의 별명이 붙었던 인물이다.
따라서 수사의 중추기관인 대검 중수부가 직접 나서서 김 씨를 조사하는 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범법행위를 처벌하기보다는 그동안 철저히 은폐됐던 권력형 비리의 몸통을 파헤치겠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정리대상 업체로 선정된 '알짜기업' 매각을 둘러싸고 이뤄진 '블랙 커넥션'을 낱낱이 밝히겠다는 것이다.
김 씨가 브로커로 활동한 때는 IMF 사태 이후 정부가 약 145조 원의 구조조정 자금을 투입해 정리대상 기업을 국내외에 매각한 시기였고, 당시 우량기업들이 지나치게 싼 값에 팔려나갔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구조조정으로 30대 재벌 가운데 대우ㆍ기아ㆍ한보를 포함한 16개 그룹이 탈락했고 10개 그룹은 아예 공중분해됐으나 한화와 두산은 각각 초우량기업으로 평가받던 대한생명과 한국중공업을 저가에 인수해 특혜시비가 일기도 했다.
검찰은 김 씨가 정리대상 업체의 워크아웃 및 매각 등에 관여했던 전현직 경제분야 고위 관료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점에 주목하고 있다.
김 씨가 정리대상 업체를 매입하기를 희망하는 업체들로부터 청탁과 함께 거액을 받아 경제부처 관료들에게 무차별 로비를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검찰이 단순히 기업인수합병을 도와주고 수수료를 챙겼다는 점에서 김 씨를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 분야의 전현직 고위관료들을 겨냥해 수사를 벌이고 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검찰 관계자는 "정관계 인사들을 당장 소환할 계획은 없지만 청탁여부도 조사대상"이라고 밝혀, 구조조정 당시 김 씨와 정관계 인사들 사이에 검은 돈 거래가 있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향후 수사목표임을 시사했다.
IMF 사태를 전후한 시기에 퇴출 위기에 처했던 기업들이 김 씨를 매개로 정관계 인사들을 매수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번 수사의 불똥은 재계로 번질 게 불 보듯 뻔하다는 점에서 이번 수사가 어떤 성과를 올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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