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적으로 4강에 진출했던 일본이 21일 쿠바를 꺾고 결국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정상에 섰다. 우승을 차지한 일본 대표팀의 중심에는 이치로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대회의 승리자가 됐을지는 몰라도, 진정한 영웅이 되지는 못했다.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카멜레온 같은 그의 '입' 때문.
***"'30년 발언'은 일본 대표팀의 단결을 위해서 한 것"**
이치로는 20일 동료들과 일본 팀의 마지막 공식 연습을 끝낸 뒤 '30년 망언'에 대한 해명을 했다. "일본 대표팀이 결성된 직후에는 선수 개개인에게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았다. 일본 팀을 정신적으로 똘똘 뭉치게 하는 게 내 임무였기 때문에 다소 감정에 치우친 처신을 해야 했다." 한국에 대해 도발적인 언행을 한 것도 사실은 일본 팀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미다.
이치로는 WBC 대회가 시작되기 전 "(한국과 대만이) 30년 동안 일본을 이길 생각을 못하게 만들어 놓겠다"며 의기양양했다.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보유자인 '타격 천재'가 내뱉은 이 말은 한국 선수들의 자존심을 긁었다. 이치로 발언은 부메랑처럼 일본 덕아웃으로 되돌아 왔다. 한국은 일본과의 1라운드 경기에서 이승엽의 결승포로 도쿄돔을 찾은 일본 팬들을 침묵시켰다.
2라운드에서 한국과 일본은 다시 싸워야 했다. 철두철미한 자기 관리로 '완벽주의자'로 불리는 이치로는 한국과의 경기에서 반드시 설욕을 해야 했다. 일본이 한국에 질 경우 4강 진출도 힘들지만 자존심이 패배를 허락하지 않아서다. 이치로는 8회 김민재의 파울 타구를 잡으려다 역시 공을 쫓던 관중들과 신체 접촉이 있은 뒤에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보였다. 하지만 또 다시 일본은 한국 이종범의 결승타에 침몰했고, 이치로는 "내 야구 인생에 있어서 가장 굴욕적인 날"이라는 말을 남겼다. 일본의 패배가 확정되자 이치로는 분한 마음에 더그아웃에서 욕설을 내뱉었다.
*** "이길만한 팀이 이겼다"**
4강 진출이 사실상 좌절된 상황에서 이치로는 술을 마셨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치로는 이빨도 닦지 않은 채 술에 취해 침대에 쓰려졌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이 멕시코에 지는 바람에 기사회생했고, 이치로의 '입'도 덩달아 살아났다. "한국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같은 상대에게 3번 진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치로의 말을 전해들은 한국의 김인식 감독은 "그런 미련한 X가 있나. 야구 끝난 다음에 얘기하고 있는데 자기가 무슨 (야구해설가) 하일성이냐"라고 응수했다.
이치로는 준결승에서 한국에 설욕한 뒤에는 오만함을 드러냈다. "이길만한 팀이 이겼다. 야구는 싸움이 아니지만 그런 기분으로 한국 전에 임했다. 한국과의 준결승에서 나왔던 관중의 야유는 약했다. 좀 더 강했으면 좋았을 텐데…."
반면 일본에 이미 두 경기를 이겼지만 '엉터리 대진표'로 세 번째 경기에서 고배를 마신 한국 선수들은 억울한 마음을 뒤로 한 채 겸손하게 말했다. 박찬호는 "결승에서는 친구인 이치로가 있는 일본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 차례나 결정적 호수비를 펼치며 일본 야구를 허물었던 이진영은 "실력이 모자랐던 게 패인이다. 우에하라의 포크볼은 정말 치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이치로가 지난 2004년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세웠을 때, <아사히 신문>은 "이치로의 신기한 안타 행진에 위대하는 말밖에 어떤 말로 표현이 가능할까"라며 극찬했다. 이 신문은 한 발 더 나아가 마쓰이 히데키(뉴욕 양키스)에 비해 이치로가 다소 홀대를 받았던 점을 꼬집기도 했다.
***"난 아직 덜 성숙한 사람"**
마쓰이는 세이료 고교시절부터 주목받는 거포로 일본 최고 명문 구단 요미우리에 입단하는 등 문자 그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야구 선수였다. 반면 이치로는 오릭스라는 인기없는 구단에 입단한 뒤 변칙 폼 때문에 구단 수뇌부들에게 미움까지 받았지만 밑바닥부터 착실히 성공한 선수. 이 때문에 일본 언론은 그동안 이치로 보다 마쓰이에게 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하지만 일본의 서민 계층은 이치로에게 더 많은 박수를 보낼지도 모른다는 게 <아사히 신문>의 분석이었다.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도 "이치로는 천부적 재능에다 다른 선수에 비해 두 배의 노력을 통해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안타의 위업을 달성했다"며 국민영예상 수상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치로는 "나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다"라며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2001년 메이저리그 진출 첫 해 아메리칸리그 신인왕과 MVP를 석권했을 때에 이어 두 번째 수상거부였다. 이치로의 주가는 더욱 높아졌다. 그의 겸손함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도 "이치로를 배우자"는 의견이 제시됐었다.
하지만 2년 뒤 WBC에서 나타난 이치로는 자신의 말처럼 정말 덜 성숙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김인식 감독은 "이치로가 신기록을 세웠을 때 한국에도 팬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WBC 대회를 앞두고 '30년 발언'을 해서 한국인들을 자극했다"고 지적했다.
한 때 이치로는 "프로 선수는 승리하는 것 이상으로 어떻게 야구팬에게 감동을 주는 플레이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치로는 WBC 대회에서 일본의 우승으로 승리의 기쁨을 누렸지만 야구팬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방망이'로 말하기 이전에 '입'으로 자신의 모든 감정을 여과없이 표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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