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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아닌 '본격 정치영화'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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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아닌 '본격 정치영화' 보고싶다

<기자의 눈> '보스 상륙작전'이 남긴 숙제

한나라당과 '영풍' 논란까지 빚었던 영화 '보스 상륙작전'이 지난 주말 흥행에서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영화업계에서는 220개라는 사상 최다의 개봉관 숫자보다는 개봉 직전 검찰·한나라당과 제작사간의 갈등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화제를 불러온 점이 이 영화가 1위를 차지하는데 '1등 공신'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다행히 이번 '영풍'파동은 소동으로 끝나고 영화는 아무런 제재 없이 상영되고 있다. 게다가 흥행도 성공적이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회의가 남는다. 왜 우린 아직도 "내 영화는 정치(풍자) 영화다" 라는 당당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걸까?

***"정치영화 아니다" 라는 항변, 이걸로 충분한가?**

지난 주 개봉 직전 이 영화가 논란이 됐을 때 영화사와 홍보사측의 답변은 "이 영화가 정치드라마가 아니라 단순한 코미디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정치권의 비리를 일부 소재로 삼긴 했지만 '풍자극'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닌 영화를 왜 정치적으로 오해하느냐"고 항변했다. "직접 영화를 보고 입장을 밝혀라"라며 감독이 화를 냈지만, 그건 "내 영화는 정치영화가 절대 아니다"라는 새삼스런 강조로 읽히기까지 했다.

혹시라도 '정치영화'의 멍에를 쓰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사실 이 영화는 단순한 코미디다. 정치드라마도 정치풍자 영화도 아니다. 따라서 감독과 제작사의 항변은 지극히 타당하다. 하지만 왜 꼭 그래야만 하는가?

우리에겐 아직 본격 정치드라마도 통쾌한 정치풍자 영화도 없다.

몇가지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몇 년 전 한 영화에서 미혼모가 농담으로 "애 아버지가 사실은 청와대에 있다"고 농담을 한 장면이 상영 직전 문제가 되어 삭제된 적 있다.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1997)가 그 영화다.

또 세금공무원들의 횡령으로 '세도'라는 말이 일상에서까지 쓰이던 시기에 이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려 한 제작사가 있었다. 하지만 갖가지 압력에 시달린 끝에 영화는 '사기꾼을 잡는 세무서와 검찰 직원의 활약상'으로 뒤바뀌었다. '똑바로 살아라'(1997)가 그 영화다.

우린 여전히 이 수준이다.

***현직 대통령을 통렬히 풍자해 대는 외국 영화들**

외국의 경우를 몇 개만 보자.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수상작인 미국 영화 '왝 더 독'(1997)에서는 걸스카우트 소녀를 추행한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미디어와 영화제작자들을 동원해 유럽의 약소국을 '세계의 적'으로 조작하고 대대적인 전쟁을 꾸며내는 과정이 묘사됐다. '자신의 추문이 터지면 약소국을 하나씩 폭격하는' 미국 대통령의 행태가 적나라한 풍자로 그려진다.

'프라이머리 컬러스'(1998)는 한술 더 떠 사생활에 결함이 많은 주지사 역할을 맡은 주연배우 존 트라볼타가 클린턴 전 대통령과 흡사한 모습으로 분장하고 출연했다. 이 영화는 대통령 후보가 된 주지사가 자신의 결함을 알고 있는 친지나 정적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하는 비정한 내용을 통해 워싱턴 내부를 조롱했다.

두 영화 모두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재임중이던 시기에 만들어졌고, 성황리 상영됐다.

국내에도 개봉된 '쥬바쿠'(원제:금융부식열도 1999)에서는 일본 금융계의 병폐와 정부 관료의 비리를 한 데 모아 스릴러물 같은 터치로 치밀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금융 구조조정이 정치권 최대 숙제이던 시기다.

***'괘씸죄' 걸릴까 두려운 제작사 정치영화 못 만들어**

그러나 우리 영화계는 정치문제 같은 시사적인 성격이 강한 영화는 사실적인 드라마는 물론이고 코미디나 풍자물의 형식이라도 만들어지기 힘든 상황이다.

정치계의 비리나 혼탁상을 소재로 다룬 작품은 '괘씸죄'에 걸려 다양한 압력과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어 제작사 측에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영풍'소동을 겪은 '보스 상륙작전'의 한 제작스탶도 "한나라당에서 의혹을 제기하기 전에도 광고를 보고 검찰과 경찰을 소재로 다뤘다고 여기저기서 전화가 참 많이 왔었다"고 밝혀 현실을 풍자한 영화를 만드는 어려움을 밝히기도 했다.

정치권이나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파헤치는 통쾌한 영화가 나오기 위해서는 아직도 높은 분들의 '허가'나 관련기관의 '이해'가 필요한 것이 충무로의 현실인 것 같다.

또한 영화인들의 시대정신과 용기 역시 똑같은 크기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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