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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비가(悲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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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비가(悲歌)

김민웅의 세상읽기 <134>

1960년대 초 동대문 근처 청계천 주변에는 판자집들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전동차 길이 지나는 그곳은 누가 따로 소집한 것도 아닌데 세상의 모든 가난이 다 몰려 있는 듯한 곳이었습니다. 청계천 위로 낡고 더러운 목재를 사용하여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던 판자촌은 당시 한국의 현실이 어떤 처지에 있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판자촌의 아이들은 위험한 전동차 길 옆에서 놀았습니다. 때로 철로에 귀를 대고 멀리서 전동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못을 그 위에 올려놓고는 재빨리 몸을 피한 뒤, 전동차가 지나가면 납작해진 못을 전리품처럼 주워들고는 기뻐했습니다. 그 날카롭게 펴진 못은 사과궤짝으로 썰매를 만들 때 필요한 기구가 되기도 했지만, 던지면 그대로 과녁에 꽂히는 표창처럼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거대하게 돌진해 오는 전동차와 같은 현실을 마주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날카로운 무기를 만들어 쓰는 싸움을 배웠고, 세상에서 버려진 자들의 막다른 골목에서 세상에 대한 분노를 배워갔습니다. 술로 지새는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절망의 정체를 목격했고, 몸을 파는 이름 모를 숱한 누나들의 슬픈 화장에서 가난이 지불하는 대가를 알아갔던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이곳 사진을 찍으려 들면 경찰이 다가와 가로막았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청계천 판자촌은 개발시대를 앞세웠던 정권의 허구가 드러나는 현장이었으며, 태풍이 몰아치거나 불이라도 나면 순식간에 그 일대 전부가 허물어지는 처참한 운명을 겪어내야 했던 곳이었습니다. 이를테면 그곳은 서울의 막장이었습니다. 훗날, 이들은 다시 산꼭대기로 내몰렸고 그 다음에는 이곳저곳으로 퍼내어져 뿔뿔이 쫓겨나야 했습니다.

청계천 바로 옆의 평화시장 봉제공장은 그런 가난을 떠맡아 살던 소년과 소녀들이, 미래의 꿈을 담보로 생명을 갉아 먹히고 있던 작업 현장이었습니다. 닭장 같은 좁은 공간에서 고된 노동을 짊어지면서 사람의 가치를 박탈당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던 이들의 한숨과 눈물은, 청계천을 덮어버리는 공사를 밀고 나갔던 권력이 숨기고 싶어 했던 비밀이기도 했습니다. 그 눈물을 모두 모아 온 몸에 뿌린 '전태일'은 그 권력이 은폐한 비밀이 땅에서 하늘로 솟아오른, 누구도 사라지게 할 수 없게 된 깃발이었습니다.

청계천을 덮으면서 그 위로는 고가도로가 세워지고 개발시대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곳에 있던 가난은 서서히 그 정체를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극복의 결과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외곽지대로 계속해서 밀어낸 결과일 뿐이었습니다. 청계천 복개공사는 개발 권력의 정치적 자랑을 상징하면서 그와 동시에, 그 자랑을 위해 누가 희생되어갔는가를 역사 속에 기록해나간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청계천을 덮었던 콩크리트를 다시 뜯어내고 물이 흐르게 한 것은 소위 개발시대의 무지에 대한 반대명제가 결국 승리한 것을 보여줍니다. 환경이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생명에 대한 시대적 각성이 청계천의 물길을 다시 흐르게 한 힘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정치의 기본 발상의 틀이 바뀌어 간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청계천을 덮었던 권력이나 청계천을 다시 연 권력이나 모두 동일하게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현실이 엄연히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의 내어쫓김입니다. 가난에 대한 전쟁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에 대한 전쟁으로 만들어진 개발이나 환경의 복구는 그 모두가 다 누군가의 피눈물을 대가로 이루어진 성과입니다.

이것을 망각한 채 청계천을 다시 흐르게 했다는 자랑에만 몰두하는 권력의 광고에 취해나갈 때, 우리 사회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운명으로 알고 사는 불행한 곳이 되어가고 말 것입니다. 환경정치도 가난한 이들을 몰아내고 만들어야 하는 우선권을 가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건 맑은 시내가 흐르는 수도(首都)의 아름다움과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철학이 아닐까 합니다. 청계천 찬가만 불리우는 시절에 비가(悲歌)의 은폐된 음조에도 귀기울이는 깊이가 있을 때 그곳의 물도 쉽게 바닥을 드러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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