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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알고보면 음란해, 너무 음란해

[핫피플] 〈음란서생〉의 김대우 감독

선입견이라고 하는 건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김대우 감독을 만나기 직전까지 나는 이 사람이 어느 정도는 음란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란서생을 만들었으니까. 그만큼 음란한 상상력을 많이 했을 테니까. 아, 물론 그렇다고 영화 <음란서생>이 죽어라 외설스런 영화란 얘기는 아니다. <음란서생>은 오히려 너무 점잖은 영화다. 격렬한 정사 끝의 가쁜 호흡 같은 건 전혀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 사대부 양반의 걸음마냥 <음란서생>에서 보여지는 성적 판타지는 느릿느릿 팔자걸음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아무리 점잖은 사람일지라도, 아 그거 한번 제대로 하지 그래 하는 조바심을 갖게 한다. 하지만 영화를 좀더 보고 있으면 바로 그 점이야말로 이 김대우란 감독이 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음란서생>은 흔히들 지식인이라 불리는, 잔뜩 잰 체하는 사람들의 얄팍한 이중성을 그리려 했으니까. 짐짓 보지 않는 척 애쓰지만, 에헴 하는 헛기침과 함께 재빨리 '빨간 책'을 나꿔채는 주인공 선비의 손짓 같은 것. <음란서생>은 성인에로물로 기대했다가 그게 아니어서 실망스럽지만 그렇다고 그걸 입밖에 내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이중성 그 자체를 겨냥한 작품이다. .
김대우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생각보다 음란하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듣겠다. 글쎄 그런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이 영화가 굉장히 음란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영화의 음란성을 나 혼자만 '과신'했다는 얘기다.근데 그런 반응들이 많은 것 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세상이 훨씬 더 음란한 것 같다.(웃음) - 극 후반부로 가면 오히려 정통의, 신파의 멜로 틀을 강화시킨다. 맞다. 그랬다. 멜로의 스피드를 가져가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영화를 만들면서 늘 주인공 윤서(한석규)의 윤리적 밸런스를 놓고 고민했던 것 같다. - 윤서가 음란소설을 쓰게 된 행동동기 같은 것? 그렇지. 그의 동기가 정말 그가 음란해서인가,라는 고민 같은 것. - 윤서는 성적 충동 때문에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사회적 좌절 때문에 쓴다. 맞다. 바로 그 점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쉽게 '음란'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 경계의 지점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고민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마치 윤서와 정빈(김민정)의 정사 신에서 정빈의 벌거벗은(naked) 몸을 보여주기 보다는 아름다운 나신(nudity)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쪽이었다면 그 뉘앙스의 차이가 드러날까? 아무튼 그런 것이다. 당신이 말하는, 또 사람들이 기대하는 에로틱한 장면들을 더 많이, 더 깊게 찍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찍어 놓으면 아무래도 쓸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어느 선까지만 찍으려고 했다. 잘 한 건가? (웃음) - 음..잘한 거다. 주인공 윤서처럼 억눌린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적 지식인일수록 '폭력'과 '섹스'에 대해 쓰거나 그리는 문제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이들에겐 체제에 항거할 수 있는 무기가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또 바로 그 점 때문에 약간 불만이기도 하다. 어떤 점이? - 주인공 윤서를 누르는 왕실의 억압적 지배구조, 아버지(이순재)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억압의 모습들이 좀 더 많았어야 했다. 무슨 말인지 안다. 사실 처음엔 당신 얘기처럼 그런 얘기들이 많이 들어갔다. A편집본이 물경 3시간40분이었으니까. 그걸 137분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그런 얘기들이 많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래서 이순재 선생한테 특히 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조금 다른 차원에서 이 영화를 보자면 당신의 그런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다. 영화에서 윤서는 당시의 지배체제에 대립각을 강하게 세우는 인물이 아니다. 그런 성정도 되지 못하는 인물이다. 물론 마음 속에서 꿈틀대는 것은 있다. 내가 더 주목하는 건 바로 그 지점이다. 마음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 평생을 겉과 속을 다르게 사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나쁜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 그래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의 얘기를 그리고 싶었다. 주인공 윤서의 행동이 자못 귀엽게까지 느껴지도록 그린 건 그 때문이다. - 육의전 장사꾼인 황가(오달수)는 그래서 윤서가 쓴 책을 평가하면서 "뭔가… 잰 체 한달까…. 그런 게 좀 문제요"라고 얘기한다. 인상적이었다. 그건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지만 어쩔 수 없이 지식인의 사고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당신의 상황을 스스로 빗대는 것 같았다. 반복하는 것 같지만 난 욕구나 욕망에 대한 사람들의 이중적 태도, 그 자체에 흥미를 느낀다. 그런 이중성은 당신이나 나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문제다. 우리는 얼마나 이상한 시대를 겪어 온 사람들인가.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관습이 지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인터넷과 같은 극단적 개방문화를 겪고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절대적으로 차단돼 있거나 금기시돼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거리낌없이 노출돼 있는 시대다. 이 두 가지를 표현할 수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늘 고민했다. 금기냐 노출이냐. 이번 영화에서 내가 선택한 방식은 일종의 '가림의 미학'이다. - '가림의 미학'이라.. 거부하는 척, 동시에 추구하는 것. 그건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 모두가 보여주는 행동양식이다.
음란서생 ⓒ프레시안무비
- 흠…어쨌든 난 영화의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언해피엔딩은 아닐 것이라는.. 왜 그런 예상을 하게 됐나? - 영화 중간에 황가와 윤서가 다음 책의 내용에 대해 말싸움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윤서는 자신의 주인공들을 죽이려 하지만 황가는 '북촌사람들이 그런 결말을 안좋아 한다'며 주인공들을 살리라고 한다. 당신 얘기를 들으니까 내가 거기서 결말을 슬쩍 노출시킨 셈이군.(웃음) - 입장이나 태도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 영화는 흠잡을 데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프로덕션의 전 과정은 정말 치밀하고 꼼꼼했을 것이다. 음…. 이 기회에 우리 소품팀 칭찬 좀 하고 싶다. 나는 성격이 그런 사람이다. 어떤 장면에 조선시대 탁자 같은 것이 나온다고 하면 촬영 전에 슬쩍 서랍까지 열어본다. 너무 놀란 것은 그 서랍 안까지 조선시대 물건들로 채워 놓았다는 것이다. - 감독이 얼마나 닥달했으면… (웃음) 지금 생각하니 그랬다. 예를 들어 황가의 집에 '육의전'이라는 현판이 써 있다고 가정해 보자. 촬영 전에 슬쩍 이렇게 얘기했던 것 같다. "이 글씨는 상민이 썼구만." 그럼 막상 촬영에 들어갈 때는 좀더 서체가 훌륭해진 현판이 붙어 있었다. 그러면 내가 한마디 더 한다. "이번엔 양반이 썼구만." 그러니 얼마나들 피곤했을까 싶다. 이런 일도 있었다. 영화에서 정빈이 윤서를 자신의 처소로 불러서 차 대접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클로즈업으로 차를 따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만 하루종일 찍었다. 찻잔에 국자 같은 것으로 차를 따를 때 손으로 한바퀴 돌리는데 엑스트라 역할을 했던 다도(茶道) 전문가의 손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방식을 얘기하니까 그 전문가는 그건 일본 다도라고 얘기하더라. 그걸 가지고 한참 씨름했다. 아마도 필름만 4롤을 없앴을 것이다. - 영화가 보여주는 장인정신에 대해서는 할 말을 잃을 정도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영화는 다소 인공적으로 보인다. 흠… 나름대로 날카로운 지적이다. <정사>나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등등 내가 지금껏 썼던 영화들의 시나리오를 생각하면 당신 얘기처럼 그런 맛이 조금 있다. 나 역시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 영화는 좀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 예를 들어서? 뭔가 확 흐트러뜨리는 느낌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 지금까지의 나를 해체하는 것, 그래서 새로운 느낌이 나는 것을 만들고 싶다. 다음 작품을 기다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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