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의 최대 약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곳은 수비라인이다. 비록 지난 1월 16일부터 시작된 전지훈련과 평가전을 통해 포백 수비가 안정세에 접어든 게 사실이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다. 특히 중앙 수비가 그렇다. 현 대표팀 코치인 홍명보가 지키던 2002년과 달리 다소 투박해 보이기도 한다.
중앙 수비를 단단히 하기 위해 아드보카트 감독은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쓰는 이른바 '더블 볼란테' 체제를 확립했다. 이들의 과제는 중원에서 1차적으로 상대 역습의 맥을 끊고, 수비수들의 공격가담 때 나타날 수 있는 빈 공간을 커버하는 것. '진공청소기' 김남일은 후배 이호와 함께 효과적인 커버 플레이와 날카로운 패스로 전지훈련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오랫동안 부상과 재활을 거듭했던 김남일은 지난 1월 25일 핀란드 전을 통해 10개월 만의 A매치 복귀전을 치른 뒤부터 한층 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대표팀 중원을 책임지는 터주대감으로 책임을 완수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지난달 28일 열린 대표팀 합동 기자회견에서 "내가 맡고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는 축구에서 비중이 큰 자리다. 다른 선수들이 나를 믿고 기댈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던 것도 같은 맥락.
김남일의 숨겨진 진가가 가장 잘 발휘된 경기는 지난달 22일 벌어진 시리아와의 아시안컵 예선전.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 경기에서 시리아가 후반전에 한국 포백 수비의 뒷 공간을 노리는 롱킥을 자주 시도하자 스리백으로 수비 전형을 바꿨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김남일에게 최후방 수비를 맡겼고, 김남일은 시리아의 공격을 잘 차단했다.
김남일의 화려한 변신은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포백과 스리백을 넘나들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김남일의 최종 수비수로의 변신은 지난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유상철이 홍명보 대신 한국의 수비를 지휘했던 것과 유사한 것. 당시 유상철의 안정적 플레이가 없었다면 한국은 안정환의 극적인 연장 골든골을 못 봤을지도 모른다.
아드보카트 감독도 당시 "상대가 롱킥 위주로 공격해 중원 압박이 효과적이지 못할 때 이 같은 수비 시스템을 쓰기 위해 연습했다. 오늘 한국의 시스템 변화가 잘 이뤄졌다"며 간접적으로 김남일의 포지션 변경을 높게 평가했다.
김남일은 2일 2006 K리그 기자회견에서 "대표팀이 많이 져봐야 단단해지는데 지금 너무 잘 나가는 것 같다. 월드컵 본선까지 얼마 안 남았지만 이탈리아, 잉글랜드 같은 강팀과 맞붙고 싶다"고 말했다. 김남일의 발언은 히딩크호가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며 강팀과의 경기를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했던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아드보카트호가 순항하고는 있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조금 더 거친 파도'를 만나야 한다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김남일은 2002년 월드컵 때 가장 궃은 일을 많이 했던 선수다. 상대 팀의 미드필더, 공격수들과 거친 몸싸움으로 공격의 예봉을 철저히 막아냈다. 누가 뭐래도 김남일은 아드보카트 감독이 추구하는 압박축구에 가장 필요한 선수 중 하나다. 비상시에는 최종 수비수로 자리를 옮겨 '제2의 유상철'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보여줬다. 이제 대표팀이 아닌 K리그로 돌아와 활약하게 될 김남일의 일거수 일투족이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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