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뷰 포인트]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뷰 포인트]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

감독 이안 출연 히스 레저, 제이크 질렌할, 미셸 윌리엄스, 앤 해서웨이 수입 백두대간ㅣ배급 CJ엔터테인먼트ㅣ등급 15세 관람가 시간 133분 | 2005년 <브로크백 마운틴>은 치유의 영화이다. 2003년 여름 <헐크>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이안 감독은 지금 이 작지만 위대한 영화로 거뜬히 원기를 회복했다. <헐크>는 무려 1억2천만 달러가 투입된 대규모 블록버스터인 반면, <브로크백 마운틴>은 그 10분의 1에 불과한 1천4백만 달러의 제작비로 완성되었다. 변종 괴물 활극과 CG로 점철된 과잉의 영화를 지나온 이안은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가슴 떨리는 러브 스토리와 대자연을 담아낸 절제의 영화로 180도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 대만 출신의 다재다능한 시네아스트가 어떤 작품에서 가장 빛날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였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지난해 9월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을 것을 시작으로 거침없는 수상 행진을 벌여왔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브로크백 마운틴>의 수상 목록은 이제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만을 남겨두고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퓰리처 상 수상작가 애니 프루의 동명 단편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이미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라스트 픽처 쇼>(1971)로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 올랐던 일흔 살의 노작가 래리 맥머티와 TV 시리즈 작가인 다이애너 오사나가 프루의 소설을 시나리오로 옮겼다. 미국 와이오밍 주의 브로크백 산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두 카우보이의 20여 년에 걸친 사랑 이야기를 담는다. 8월 여름 양떼 방목이 한창인 이 산에 스물을 갓 넘긴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이 일자리를 구하러 온다. 아무도 없는 산 중턱에서 양떼를 지키던 이들은 조금씩 친해지던 중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여름이 끝나면서 헤어져 각자 가정을 꾸린다. 에니스는 약혼녀 엘마(미셸 윌리엄스)와 가정을 꾸리고, 잭은 텍사스 거부의 딸 로린(앤 해서웨이)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4년 뒤 재회한 이들은 그간 서로를 열렬히 그리워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위험한 만남을 지속한다.
브로크백 마운틴 ⓒ프레시안무비
<브로크백 마운틴>은 여러 면에서 기존 미국 장르영화의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카우보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이것은 저 유구한 할리우드 웨스턴 장르의 관습을 전혀 따르지 않는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사연을 풀어내고 있지만 전통적인 멜로드라마의 궤도에서 한참을 이탈해 있다. 영화는 대단히 격정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낯설 정도로 고요하고 건조하게 진행된다. 초반부 여름 목장의 나른하고 심심한 풍경부터 후반부 삭막한 반전에 이르기까지, <브로크백 마운틴>은 최근 미국 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절제의 미학으로 점철돼 있다. 또한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의 안타까운 사랑의 행위를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가족이라는 제도와 가정 생활의 디테일에도 공을 들인다. 한 가족을 지켜야 하는 '가장'이면서 밀회를 지속시키는 개인의 좌절, 그 구속과 일탈의 딜레마를 파헤치는 것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겨냥하는 것은 두 주인공의 단순한 사랑 놀음이 아니다. 이안의 작가정신은 '회적 동물로서 개인의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야말로 이 영화는 제도와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을 파고드는 일종의 가족 사회학이라 할 만하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관객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쥐락펴락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스크린을 압도하는 웅대한 자연의 풍경은 에니스와 잭의 희열과 고통을 넉넉하게 끌어안으며 보는 이의 마음마저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관객보다 앞서 나가서 먼저 동요하거나 수선을 떨지 않는 이 점잖은 영화는, 긴장과 이완의 적절한 배분으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선사한다. 극중 잭은 에니스에게 "우리가 가진 것은 브로크백 마운틴뿐이다. 모든 것이 거기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제도의 억압에서 탈주하고자 하는 에니스와 잭의 도피처이자, 그들의 사랑을 완성시켜줄 수도 있는 공간인 셈이다. 그러나 이들의 밀회는 결국 비극으로 치닫는다. 20년 넘게 지속된 사랑일지라도 그 '완성'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이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은 사랑의 억압(repression)과 환상(illusion)에 대한 영화이다. 견고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환상에 대한 영화이다. 우리는 견고한 사랑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더욱 슬픈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인간이 꿈꾸는 견고한 사랑이란 결국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본 날 밤이면, 잔잔한 비애(悲哀)가 당신의 목젖 너머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