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은 24일 TV와 라디오를 통한 연설에서 야권 및 극좌ㆍ우익 세력이 선거에 의해 출범한 합법적 정부를 축출하기 위해 최근 연속적으로 취해 온 기도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밝혔다.
***'피플파워' 20주년 기념일에 대규모 군중시위 소문 돌아**
아로요 대통령은 이날 사전에 준비된 연설에서 "군의 일부 세력이 지휘체계에서 벗어나 민간정부를 축출한 뒤 헌법에 위배되는 정권 수립을 기도한 것으로 드러나 이를 분쇄했다"고 지난 22일 소장파 장교들에 의한 쿠데타 기도 적발 사실을 알리며 '피플파워(민중혁명)'에 의한 정부 전복 시도 재현 가능성에 경고했다.
아로요 대통령은 "국가에 대한 명백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다"며 "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이런 상황을 통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의 최고통수권자로서 군대와 경찰에 폭넓은 조치를 취할 권한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필리핀이 국가 비상사태까지 선포하게 된 데에는 지난 1986년 페르디난도 마르코스를 대통령직에서 축출한 '피플파워' 20주년이 되는 25일에 맞춰 대규모 군중시위가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도는 등 아로요 대통령의 축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탓이라고 〈BBC〉등 외신들은 분석했다.
필리핀 군당국에 따르면 아로요의 반대세력들이 결집해 25일 '피플파워' 기념탑에서 아로요의 하야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일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측은 계획된 모든 집회의 허가를 취소했으며, 모든 학교들도 문을 닫았다.
비달 퀘롤 메트로 마닐라 경찰국장은 반 아로요 군중들이 EDSA 고속도로 상에 위치한 기념탑에 진입을 시도할 경우 강제해산과 구속 등의 조치를 취할 것임을 밝혔다.
이에 앞서 22일 에르모게네스 에스페론 육군참모총장은 아로요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군부 쿠데타 음모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 음모와 관련해 최소 10명에서 12명의 장교들이 구속돼 조사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난ㆍ군부 내 反아로요 정서ㆍ부정선거 의혹 등이 원인**
필리핀은 지난 20년간 12차례나 국가 전복 시도가 있었을 만큼 정국이 불안정하다. 아로요 대통령도 지난 2003년 7얼 쿠데타 시도와 2005년 9월 대통령 탄핵 시도에 직면한 바 있다. 산사태와 잇따른 군부 쿠데타 기도 등 아로요 대통령은 사면초가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제3차 '피플파워'의 희생양이 아로요가 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1986년 마르코스를 몰아낸 제1차 '피플파워'에 이어 조셉 에스트라다를 권좌에서 밀어내고 아로요를 대통령에 취임시켜 준 것이 바로 2001년의 제2차 '피플파워'였다. 그 아로요가 이제 제3차 '피플파워'의 칼날에 위협을 당해 국가 비상사태까지 선포하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은 무엇보다 심각한 필리핀의 경제난으로부터 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년 동안 전체 8400여만 인구 가운데 40%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의 수입을 가진 극빈곤층으로 전락한 상황과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나는 실업자 등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아로요에 대한 불만도 높아간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한 군부에 팽배한 반(反)아로요 정서도 아로요의 위기의 한 요인이다. 아로요는 그동안 매관매직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해 정치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해 온 '정치장성'들에 대한 강제전역과 군 예산의 투명성 강화 등 군 개혁을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개혁이 임박하고 있다고 느껴 온 사관학교 출신 소장파 장교들은 아로요의 개혁에 미흡함을 느끼며 불만이 높아지고 있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작년 5월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아로요가 부정선거 의혹에 시달려 왔던 것도 필리핀의 위기의 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필리핀에서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 있는 코라손 아키노 여사는 아로요의 부정선거 의혹을 비판하며 이로 인한 국정혼란을 막기 위해 아로요가 '명예로운 퇴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국가 비상 사태까지 선포하면서 현정부를 전복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강력히 맞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아로요 대통령이 점차 자신을 향해 좁혀오고 있는 비판의 칼날에 맞서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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