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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 포인트] 돈 컴 노킹 Don't come knocking

감독 빔 벤더스 | 출연 샘 셰퍼드, 제시카 랭, 사라 폴리, 가브리엘 만 수입,배급 스폰지 | 등급 15세 관람가 | 시간 122분 | 2005년 이십몇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본 아들은 집안의 온갖 집기를 창밖으로 내던지며 난동을 부린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달래보려 하지만 오히려 그의 화를 돋구기만 할 뿐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얼굴에 대고 실컷 욕을 한 후 휑하니 집을 나가버리고 아버지는 아들이 집앞에 내다 버린 소파에 앉아 하루종일 그를 기다린다. 무표정하면서도 고통스런 아버지의 표정 뒤로 하루의 시간이 흐른다. 그의 마음속 격랑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풍경들이 그의 눈앞을 오간다. 머리 위로는 해가 중천에 떳다가 가라앉는다. 유달리 푸르른 하늘과 흰구름은 차라리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을 준다.
돈 컴 노킹 ⓒ프레시안무비
독일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 <돈 컴 노킹>은 거장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성찰의 영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장면은 자신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난봉꾼이자, 퇴락해 가는 은막의 스타인 하워드(샘 셰퍼드)가 아들 얼(가브리엘 만)을 만나 면박을 당한 후 그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장면이다. 한때 잘나가던 영화배우였던데다 자신말고 남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터여서 하워드는 당초부터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빌 인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존심 강하고, 여전히 자기 잘난 줄만 아는 하워드는 아들의 소동에 할 말을 잃는다. 아직은 아들을 혼내 줄 힘이 남아 있지만 그는 그저 아들 앞에서 무기력할 뿐이다. 그리고 떠난 아들을 기다린다. 그런 하워드의 표정엔 그의 마음과 기원이 그려진다. 수십년 동안 자신을 기다리게 한 아들을 위해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열심히 그를 기다리겠다고. 마음을 다해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고. <파리, 텍사스>에서 최근의 <랜드 오브 플렌티>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통해 끝없이 여행을 떠나 온 빔 벤더스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유독 내면의 여정을 깊이 따라간다. 지긋지긋한 서부극의 촬영현장에서 역시 '출연자'였던 말을 훔쳐타고 도망을 나온 하워드는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바 마리 세인트)를 만나러 간다. 그를 좇는 영화사 에이전트인 서터(팀 로스)는 자신있게 얘기한다. "모두들 어머니를 찾아가게 돼있어." 하지만 어머니의 집에서조차 하워드는 난봉꾼의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카지노에서 사고를 일으킨다. 어머니로부터 어딘가에 아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하워드의 반응은 그답게 걸작이다. "나한테 아들이 어디 있단 말이에요." 그러나 정작 그는 어머니의 집을 나와 아들이 있다는 몬타나의 뷰트 마을이란 곳을 향해 길을 떠난다. 하지만 이 여정 또한 만만치 않다. 아들을 찾는다는 건, 인생을 새로 시작하겠다는 의지였겠으나 아침에 눈을 떠보면 침대엔 여자가 한명도 아니고 세 명이 함께 누워 있기 십상이다. 여자들을 방 밖으로 몰아낸 후 침대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 하워드는 되뇌인다. "또 사고를 쳤어, 또!" 촬영장에서 미국의 서북부 몬태나에 있는 작은 마을 뷰트까지, 하워드의 여정은 그의 인생만큼 엉망진창이다. 그의 험난한 여행길은 곧 사람들이 수렁에 빠진 인생에서 빠져 나오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잘못에 빠져들면서도, 하워드처럼 쉽게 여자를 만나거나 술과 마약에 빠져들면서도, 언제 어느 때라도 그 길에서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건 정말 엄청난 착각일 뿐이다. 길이 그렇듯, 인생도 한번 잘못 들어가면 나오기가 힘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용서와 구원을 받으려고 애쓴다. 용서와 구원에는 늘 회한과 탄식, 고통과 눈물이 따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용서하는 것보다 누군가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구원일 수 있다. 하워드도 그렇다. 그가 찾은 마을 뷰트에는 아들 얼 말고도 자신이 몰랐던 딸이 한 명 더 찾아 와있다. 얼과 달리 이 딸 스카이(사라 폴리)는 요란을 떨지 않는다. 죽은 엄마의 유해를 안고 다니는 스카이는 좌충우돌, 어쩔 줄 몰라하는 하워드와 얼을 뒤에서 그저 조용히 지켜 볼 뿐이다. 아빠없이 자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심정을 하워드는 알지 못했었다. 스카이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얼과는 달리 반항과 증오보다는 이해와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아버지인 하워드보다, 무엇보다 그의 아들인 얼보다 스카이가 더 침착한 건 그 때문이다. 용서하는 자는 늘 용서받는 자나 용서하지 못하는 자보다 마음이 평화롭기 마련이다. 스카이는 하워드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아빠가 그리울 때마다 사진 속에 나오는 아빠의 손을 만져 보곤 했다, 고. 아빠의 사진 속 굵은 손마디를 쓰다듬으면 진짜 아빠를 느낄 수 있었다, 고. 하워드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스카이를 품에 깊이 안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 중의 압권이다. 빔 벤더스는 우리가 수백번 길을 잘못 들어서지만 그렇다고 계속 그 길에 남아 있으라는 법은 없다고 말한다. 사람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그건 어쩌면 구원으로 향하는 여정의 시작일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돈 컴 노킹>은 제목과 달리 어느날 불쑥 찾아와 (제목을 우리말로 의역하면 '불쑥 찾아 오지 마세요'가 된다) 세상에서 절대 잃어 버려서는 안되는 가치가 무엇인지, 무엇보다 절대로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얘기해 주는 영화다. 불현듯 찾아 온 생의 깨달음과도 같은 영화란 바로 <돈 컴 노킹>을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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