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논란이 됐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관련해 '주한미군 지역적 역할 관련 논란점검'이라는 제목의 청와대 문서가 또 공개됐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22일 국회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공개한 이 문서는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주한미군의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및 대북 억지력을 위한 핵무기 배치 가능성 등에 대한 청와대 측의 우려를 담고 있다.
노 의원 측이 "지난 2004년 12월에 작성돼 국정상황실과 민정수석실에서 논의된 문서"라고 밝힌 이 청와대 문서는 크게 ▲병력 이동의 유연성 ▲기지 사용의 유연성 ▲장비의 유연성 ▲사전협의 절차의 유연성 등으로 나누어 쟁점사항을 정리하고 있다.
***장비의 유연성 : "미사일방어체제 및 핵무기 배치 대비책 검토 필요"**
주한미군의 장비의 배치를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장비의 유연성'과 관련해 이 문서는 "미군의 미사일방어체제(MD), 핵무기 배치 등에 대한 포괄 승인 여부 및 대비책 검토 필요"라고 명시돼 있다. 또한 "실제 미국은 110억불을 투입, 주한미군 장비의 현대화 추진 계획 발표"라고 첨언하고 있다.
노 의원은 이와 관련해 "지난 2003년 5월 미국이 한국에 통보한 '주한미군 전력증강 계획'에는 MD 관련 장비인 최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PAC-Ⅲ)이 포함돼 있다"면서 "2003년 5월 주한미군은 오산 공군기지, 평택기지, 군산, 광주 등에 패트리어트 부대를 배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미국 MD 체계의 종말 단계를 구성하는 주요 무기로서 PAC-Ⅲ는 육상에, SM-Ⅲ는 이지스함에 배치되는 최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이라며 "주한미군의 동북아 MD 체계구축은 단기적으로는 북한을, 장기적으로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지난 2월7일 미 국방부의 4개년 국방정책검토(QDR) 보고대회에서 라이언 헨리 미 국방부 정책담당 수석부차관이 "북한이 핵과 운반수단인 탄도미사일을 개발 중이다. 우리는 탄도미사일뿐만 아니라 크루즈미사일까지 포함하는 통합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며 "우리는 본질적으로 비이성적일지 모를 불량국가(북한 및 이란)들에 대해 억지력을 가져야 한다. 핵무기는 이런 억지력의 핵심이지만 우리에겐 다른 억지력도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다.
***병력이동의 유연성 : "주한미군 감축, 제3지역 분쟁에 투입 가능성 검토"**
청와대 문서는 또 주한미군의 전출입에 대한 포괄적 유연성을 한국정부가 양해하는 '병력이동(flow-in and flow-out)의 유연성'과 관련해 "미측 임의로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제3지역에서의 분쟁에 주한미군(심지어 한국군 포함 가능성)을 투입하는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검토와 특히 대만사태 등에 주한미군의 투입 가능성과 군산 미군 항공기의 대 중국 초계활동 등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대응책 마련 필요"라고 적고 있다.
노 의원은 "이는 중국-대만사태가 발생한 이후가 아니라 평시에도 중국을 감시하는 정찰기가 매일 군산에서 발진한다는 뜻으로서 발생 가능성이 낮은 양안(兩岸) 사태(중국과 대만의 분쟁)보다 평시의 대 중국 초계비행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 의원은 "미국의 '주한미군 전력증강계획'에는 무인정찰기(Shadow UAV), 프레데터 UAV 등 초계 비행을 위한 무인정찰기도 포함돼 있고, 주한미군은 이를 2003년 5월부터 한국에 배치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기지사용의 유연성 : 한미상호방위조약 등 개정여론 비등 대비해야"**
청와대 문서는 또 주한미군 기지가 동북아 신속기동군의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우리 측이 양해하는 '기지사용의 유연성'과 관련해 "우리나라가 미국의 동북아 패권유지를 위한 군사기지를 제공한다는 논란을 초래하는 한편,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소파협정 등의 전면적 개정 여론이 비등할 가능성, 경우에 따라서는 필리핀과 그리스 등과 같이 미측에 미군기지 사용료 징수 논의로도 확대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을 주문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한미군 지역역할 수행대비책'(2003년 7월 FOTA 제3차회의 자료)에서 국방부는 전략적 유연성 인정에 따른 예상되는 문제점으로 '토지 무상공여 및 방위비분담금 등 주한미군 지원에 대한 당위성 제한'을 꼽으며 "이는 미군이 한반도 안보를 목적으로 주둔한다는 전제 하에 지원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사전대비책으로 방위비분담금 조정검토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외에 청와대 문서는 "전략적 유연성은 우리 헌법 60조 상의 국가안보 및 주권의 제약을 가져오는 중차대한 사안으로 한미간 합의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필연적 대두"를 우려했다.
또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휘발성이 큰 국내 논란 소지"가 있음을 적시하고 있다.
노 의원은 "전략적 유연성의 구체적 내용이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대통령과 정부는 더 이상 국민들을 속이지 말고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야 한다"며 "국민들이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에 적절한 보고 누락…의도적으로 주한미군 역할조정 교섭 순연"**
청와대 문서는 이와 함께 전략적 유연성 협상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우선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 문제는 주한미군 재배치, 방위비 협상 등을 넘어서는 한미 양국에 있어 동북아 전략상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대통령님께 심도 있는 적절한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고 형식적인 보고서 제출을 상부 재가로 치부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문제점 분석과 대응 전략 마련은 내부에서라도 철저한 공론화의 절차를 거쳐야 할 사안임에도 이에 대한 입장 정립 절차가 모호하고, 그간의 협의 과정에서 상당부분에 대해 이미 원칙적 동의를 부여함으로써 앞으로의 교섭 시 우리 측 입장 개진에 제약 요인이 됐다"고 밝혔다.
청와대 문서는 이어 "한미 양국간에 상당부분 협의가 있었고 우리 측의 원칙적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에도 대외적으로는 이를 일체 부정함으로써 국가가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의 단초를 제공하고 우리의 교섭 상대방으로서의 신뢰성 및 우리 입장에 대한 미측의 오해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문서는 또 "한미 동맹 재조정 관련 논의 과정의 우선순위에 대한 전략적 판단 부재 또는 의도적 회피로 국익 반영에 지장을 초래했다"면서 "주한미군 역할 조정은 용산기지 이전 협상에서 우리 측이 비용을 전담하는 문제에 대한 대응 논리로 활용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려하지 않고 용산기지 협상 이후로 교섭 일정을 순연했다"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문서는 "우리 측에서 오히려 의도적으로 순연시킨 정황도 관찰된다"고 명시했다.
청와대 문서는 이와 함께 "법적 문제점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서 교환 형식으로 미국 측과 합의하고 이러한 절차에 대한 필수 고려사항과 문제점에 대한 보고를 해태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한미상호방위조약 전반에 대한 내부적 검토와 대안 마련이 필수적임에도 이에 대한 필요조치가 부실했다"며 "국가안보에 관한 중요 사안에 대해 반대 여론을 의식해 비공개 각서 방식 추진으로 민주성 흠결과 위헌 논란의 소지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