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가와모토 키하치로 외 34인 | 2002년 |
시간 39분
화면비율 풀 스크린 1.33:1 |
오디오 돌비 디지털 2.0
출시 라바메이저
"삿갓은 긴 여정의 비에 젖어 낡아지고 / 나그네 옷은 머무는 곳마다의 풍파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 초라해질 대로 초라해진 쓸쓸한 사람 / 스스로도 가련하게 느껴집니다 / 그 옛날 교카를 읊었던 시인 치쿠사이 / 문득 이 지방에 살았던 것을 떠올리며 시를 읊어봅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겨울날>은 원래 일본 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마츠오 바쇼의 7부작 렌쿠 시집 중 제1권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일본 전통문학의 하나인 '렌쿠'는 '하이카이'라 불리던 짧은 시구를 여러 사람이 이어 짓는 형식을 뜻한다. 자연과 풍류를 좋아했던 마츠오 바쇼는 하이카이 수행을 위해 여행을 떠났고,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 특히 <겨울날>은 마츠오 바쇼가 나고야를 방문해 그곳 문인들과 함께 지은 것으로, 위 구절에 등장하는 '치쿠사이'는 에도 초기 소설 <치쿠사이>에 등장하는 주인공 방랑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겨울날>은 바로 마츠오 바쇼의 이 원작을 바탕으로 전세계 애니메이터 35명이 만든 짧은 작품을 모은 연작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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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발한 작품을 기획한 사람은 일본 독립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거장 가와모토 기하치로. 한 작품을 여러 작가들이 공동으로 만드는 형식에 흥미를 느낀 그는 렌쿠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기자는 취지 아래 전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애니메이터를 초청했다. 러시아 절지 애니메이션의 거장 유리 놀슈테인, 2000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작 <노인과 바다>의 작가 알렉산드로 페트로프, 캐나다 애니메이션의 거장 코 회드만, 벨기에 애니메이션의 대부인 라울 세르베, <반딧불의 묘>로 유명한 다카하타 이사오 등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뛰어난 예술가들이 모두 이 작품에 참여했다. <겨울날>은 현대 아트 애니메이션의 역량과 수준을 총집결해 보여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여 애니메이터들은 마츠오 바쇼의 시구(時句)에 영감을 얻은 1분 내외의 짧은 작품을 보내왔다. 절지, 퍼펫, 2D, 3D, 실루엣, 셀, 클레이 등 전통적인 수작업을 필요로 하는 방식부터 현대적인 감각에 맞는 발랄한 형식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다. 각 작품이 시작될 때마다 마츠오 바쇼의 시구가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오며, 각각의 작품들은 바로 그 시구의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장중하고 우아한 음악과 함께 소개되는 시와 애니메이션은, 상당히 격조 높은 미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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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 ⓒ프레시안무비 |
<겨울날>은 작품의 진행에 있어서도 렌쿠의 형식을 따른다. 렌쿠에서는 가장 윗사람 또는 '주빈'이라 할 만한 초대손님이 첫 번째로 시를 읋고, 집 주인이 이를 넘겨 받아 두 번째 시구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에서는 존경받는 유리 놀슈테인이 '쿄쿠 바쇼'라는 첫 작품을 선보이며, 기획자인 가와모토 기하치로가 '와키노쿠'라 불리는 두 번째 작품으로 이어간다. 시를 마무리 하는 '아게쿠 쥬고'를 가와모토 기하치로가 연출한 것도 렌쿠의 전통을 따른 형식이다. 전체 작품 상영 시간은 약 39분. 상당히 짧은 분량이지만 문학적, 예술적 가치는 웬만한 장편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뛰어나다. 서플먼트 역시 알차게 담겼다. <겨울날>의 기획 의도와 작가들을 소개하는 '렌쿠란 무엇인가'는 일종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35인의 작가들의 작품 경력과 감독 인터뷰가 모두 실려 있어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는 자료로서도 소장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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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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