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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지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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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지독했다

[한재권의 Mosic & Muvie]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들

몇 년 전 안방극장을 점령했던 일일연속극 중에 <보고 또 보고>라는 작품이 있었다. 경이로운 시청률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보다 더 경이로웠던 것은 TV 드라마를 그닥 좋아할 수 없는 대한민국 남자라는 본능적인 입장과 드라마 안에서 벌어지는 기도 안 차는 상황 전개 탓에 <보고 또 보고>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그 시간만 되면 브라운관 앞에 앉으시던 어머니와 때아닌 채널 쟁탈전을 벌여야 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이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일련의 대상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그러하고, 꽤 오래전에 발표된 재미와 감동을 겸비한 만화책들도 있고 한푼 두푼 모아 사모은 음반들은 보고 또 봐도 언제나 기분이 좋다. 영화 중에도 보고 또 봐도 언제나 흥분되고 재미있고 볼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대단한 감성으로 다가오는 작품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작품들이 그렇다. .
히치콕 감독의 가장 왕성한 활동시기였던 1940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고품격 스릴러들은 몇 번을 봐도, 몇 십번을 봐도 도무지 질리지가 않는다. 특히나 좋아하는 <싸이코>나 <이창>, <다이얼 M을 돌려라> 등은 그야말로 대사 한마디 한마디, 샷 바이 샷을 달달 외울 정도로 봐도 재미있다. 그러다보니 얼마 전부터 히치콕 영화를 바라보는 또 다른 묘미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당시와 비교해도 그렇고 요즘 헐리우드 영화와 비교해도 상당히 독특하고 심오한 그의 영화음악관을 읽을 수 있어서 신나고 흥미진진하게 그의 작품들을 대할 수 있게 됐다. 히치콕은 1950년 <무대공포증>을 기점으로 영화음악에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하는데 사실 1935년에 영국에서 발표해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게 된 <39계단> 이외에는 음악적으로 이렇다할 특색은 보이지 않는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이룰 때 흔히 운명적인 만남 운운하듯, 히치콕도 1941년 야심차게 모국인 영국으로 돌아가 만들었던 <염소자리>를 통해 만난 디미트리 촘킨과의 한순간이 음악적인 영감의 발로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제작사의 사정과 개런티 문제 때문에 함께 작업하지는 못했지만 (히치콕도, 촘킨도 당대 최고의 감독과 음악가로 발돋움하던 시기였다.) 이후 몇 년 간을 계속해서 음악적인 자극과 영상적인 상상력을 나누며 교분을 키워나갔고 1954년이 되어서야 걸작 스릴러 <다이얼 M을 돌려라>를 통해서 꿈에도 이루던 공동작업을 하게 된다. 촘킨은 다른 감독들과의 이전 작품들에서 들려주었던 섬세하고 가녀린 현악기 편성 대신에 선이 굵고 스릴러 장르에 딱 맞아 떨어지는 저음 위주의 악기 편성으로 관객의 심리를 갖고 노는 감독의 의도에 부합되는 음악을 선보였다. 이후 급작스런 건강 악화와 서로 운대가 맞지 않는 시간상의 이유로 공동작업을 많이 선보이진 못했지만 히치콕은 언제나 자신의 작품에 촘킨의 감수성을 불어넣고 싶어 안달했음을 함께 작업했던 유수의 음악감독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1956년에 발표한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를 작업할 때는 자그마치 세 명의 음악감독을 대동하고서도 (그중에는 거장 버나드 허먼도 있었다) 끝내 촘킨의 이름만을 계속해서 되뇌었다는데 음악감독들에게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의뢰 방법이었다. 버너드 허먼은 이후 <현기증>(1959)을 의뢰받고 오히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작업에 임했다는데, 히치콕이 자신을 낙점한 이유를 "가장 촘킨적인 음악을 소화해낼 수 있는 작곡가"라고 밝혔다는 말에 아예 기막혀했다는 후일담도 전해온다. 정말로 그것이 허먼을 기용한 결정적 이유였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버너드 허먼은 이후 히치콕의 최고 황금기의 걸작들을 함께 작업하는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있는 두 콤비의 작품은 단연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와 <싸이코>(1960)다. 허먼은 훗날 회고록에서 히치콕과의 작업은 폭력적인 악처와 지내는 것 같다고 썼다. 히치콕은 함께 있는 동안 음악적인 의견을 교환하고 조율하다가도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을 때에는 가차없이 뭔가 집어 던지기도 하고 분을 못참아 씩씩대기도 했다니 참으로 직접 보고 싶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히치콕을 존경하는 후배 감독들의 작품에서 그의 연출 기법뿐만 아니라 음악의 사용에 있어서도 근접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종종 느낄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브라이언 드 팔머와 커티스 핸슨 감독이다. 특히나 커티스 핸슨은 <베드룸 원도우>(1987)에서는 아예 히치콕 영화의 몇몇 장면을 그대로 잘라다 붙여놓은 것 같이 판에 박은 듯한 미장센과 음악을 선보였고, 1997년에 발표한 걸작 느와르 에서는 상당히 세련된 방법으로 히치콕에 대한 자신의 경외심을 영상과 음악적인 기법으로 뽐내기도 했다. 디미트리 촘킨, 버나드 허먼, 그리고 말년의 걸작 <토파즈>의 음악을 담당했던 모리스 쟈르까지 히치콕과 작업한 일련의 음악감독들은 그를 회상할 때 항상 빼놓지 않는 것이 바로 그의 고집과 치밀함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것이야말로 그의 작품들을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게 만드는 은근한 내공이 아닌가 싶고, 그네들과 동종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써 지독한 고집쟁이에 독불장군, 뭔가를 집어던지며 씩씩대는 숨을 내뿜을지라도 몇 달을 머리를 맞대고 작업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물론 우리나라에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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