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조셉 콘라드의 <암흑의 핵심>,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 J.K.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이들 소설의 공통점은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소설은 영화 탄생 이후 오랫동안 영화에 영감을 제공해왔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의 상당수는 원작 소설로부터 얻은 자양분을 바탕으로 걸작을 탄생시켜 왔다. <소설과 카메라의 눈>은 오랫동안 끈끈한 관계를 맺어온 소설과 영화의 관계를 분석한 본격적인 이론서이다.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과 매체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영화평론가로 활동중인 저자 앨런 스피겔은 소설과 영화 양쪽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소설과 영화의 공통원리와 차이점을 밝혀내는데 주력한다. 저자는 플로베르에서 제임스 조이스, 헨리 제임스, 피츠제럴드, 발자크, 프루스트, 세르반테스, 보르헤스에 이르는 영미문학, 프랑스문학, 스페인문학의 명작뿐 아니라 그리피스와 에이젠슈타인, 로셀리니와 안토니오니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 텍스트와 영화 텍스트를 인용하며 서구 근대 소설과 영화의 상관관계를 논한다. 저자는 소설에서 객관적인 묘사를 선보인 플로베르부터 오늘날 우리가 관습적으로 '현대소설'이라고 부르는 소설의 형식화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플로베르의 소설은 '훌륭한 논평이나 경구 대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옮기려는 시도, 사물에 일치하는 단어를 찾으려는 노력, 생생하게 그려주고 제시하려는 진술'을 성취해냈다. 이는 현대소설의 묘사적 특징이 플로베르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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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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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 이후의 작가들은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서사'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특징을 보인다. 조이스, 콘래드, 포크너, 헤밍웨이, 나보코포 등 현대 작가들은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즉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낸 소설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는 것. 소설이 묘사적 특징을 강화하면서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부터 소설은 영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영화는 '보여주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생생한 묘사로 무장한 현대 소설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필연인 것이다. 소설은 작가가 대상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묘사하는 반면 영화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대상을 객관화시켜 보여준다. 즉 소설 속에서 화자, 혹은 작가가 바라보는 시점이 카메라 렌즈의 시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플로베르와 디킨스 등 근대 초기 소설들에서 나타나는 관점은 연극의 공간과 유사점을 드러낸다. 주어진 장면의 모든 구성요소(배경, 배우, 소도구)를 단일한 각도의 틀 안으로 끌어들여 마치 관객이 무대를 바라보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영화는 카메라의 관점에서 프레임으로 잘라낸 이미지들을 연속해서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줄거리를 따라갈 수 있게 만든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프레임 밖으로 잘려나간 이미지들은 관객의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초기에는 연극 무대처럼 묘사됐던 소설은 점차 카메라의 눈과 같은 구상화된 양식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서서히 발달해간다. 영화가 발명되기 반 세기 전에 쓰인 <보봐리 부인>에서부터 카메라의 눈으로 바라본 것과 같은 영화적 묘사가 드러나 있으나 저자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서 비로소 구조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명실공히 영화적 형식을 제대로 갖춘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어 영화 <율리시스>가 소설이 성취해낸 영화적 형식을 제대로 구현해냈는지도 비교 분석한다. 이처럼 저자는 '순수한' 시각적 정보들로 가득찬 19세기 이후의 소설들, 특히 19세기 후반기 소설들에서 나타나는 영화적 특징들이 20세기에 출연한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영화의 출연 이후 소설은 영화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설명해낸다. <소설과 카메라의 눈>은 '영화와 현대 소설에 나타난 영상의식'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영화와 현대 소설이 공유하고 있는 묘사적 특징을 다양한 문학 텍스트와 영화를 예로 들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플로베르나 제임스 조이스, 콘라드, 디킨스의 소설을 읽지 않아도, 그리피스나 에이젠슈타인, 안토니오니의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들도 소설과 영화의 상관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다. 본격적인 이론서임에도 불구하고 딱딱하지 않은 문체와 수많은 텍스트를 인용한 쉬운 설명 등은 읽는 재미를 준다. 대학에서 국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신춘문예에 영화평론으로 등단하기도 한 박유희와 국문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수학한 김종수가 번역한 문장들은 크게 거슬리는 부분 없이 무난하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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