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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風'은 '盧風'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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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鄭風'은 '盧風'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아직 '애매한 현상'일뿐, 확고한 지지 아냐

여론조사가 또 한번 '요술'을 부리려는 조짐이다. 노무현의 '노풍(盧風)'에 버금가는 정몽준의 '정풍(鄭風)'이 바로 그것이다.

무소속 정몽준 의원. 4선의 국회의원이지만 얼마전까지는 누구도 연말 대선의 유력 주자로 그를 떠올린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1위다. 8.8 재보선이 있던 날 SBS 여론조사에서 첫 1위에 올라서더니, 이후 MBC, 동아일보 등의 조사에서 이회창 후보와의 격차를 점점 더 벌리고 있다.

민주당 국민경선이 시작된 지난 3월에도 노무현-이회창 대결에서 노 후보가 1위에 올라선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노풍'이 불었다. 그 결과 지난 4년동안 부동의 민주당 주자로 자리매김해 온 이인제 의원을 거꾸러뜨리고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탄생시켰다.

이번엔 '정풍'이 시작되려 한다. 게다가 민주당은 신당을 한다며 노무현-정몽준 한판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정풍'은 '노풍'처럼 또 한번 요술을 부릴 것인가? 노무현 후보를 낙마시킬 것인가?

***그간 '대선후보 정몽준'이 그림이 안된 이유**

정몽준의 급부상. 이건 '노풍'보다 훨씬 갑작스럽다.

노무현 후보는 이미 오래전부터 민주당 대선후보군에 포함돼 왔다. 비록 격차는 좀 크게 벌어졌었지만 이인제 의원에 이어 거의 매번 2위 자리를 차지했었다. 한두번 고건 전 서울시장과 엎치락뒤치락해 온 정도다. 그러다 국민경선이 시작되면서 지지도가 급신장, 대역전 드라마를 펼친 것이다.

그런데 정몽준 의원의 경우는 불과 몇 달전까지만 해도 대선후보군에 이름도 거론되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리고 그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첫째 그간 정 의원의 이미지는 '아버지 덕에 사업하고 정치하는 귀공자' 정도에 머물렀다.

고 정주영 회장의 6남. 1951년생. 중앙고등학교,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ROTC 복무. 군 제대 직후 현대중공업 입사, 상무와 사장을 거쳐 현재 고문. 88년 울산동구 무소속 당선 이후 내리 4선.

스물 다섯에 아버지가 만든 회사 상무로 입사해 지금 고문이며, 아버지가 일군 도시에서 국회의원에 네 번 당선된 사람을 과연 누가 대통령감으로 생각해 봤겠는가?

둘째 4선 의원이긴 하지만 거의 무소속 의원이었기에 정치권내 기반이 전혀 없다.

88년 첫 당선 이후 90년엔 민자당에 입당했으나 2년후 아버지가 당을 만들자 탈당했다. 92년엔 국민당으로 재선. 국민당이 사라지면서 다시 무소속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줄곳 무소속 의원이다.

정당정치, 그것도 양당정치를 기본으로 해 온 우리의 대통령선거 풍토를 고려할 때 이러한 정 의원의 정치경력은 대통령선거와 아예 부합하지 않는다.

셋째 92년 대선에서 아버지가 실패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이후 현대그룹이 온갖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대선후보 정몽준'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버지의 실패'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재벌총수가 대통령선거에 나서는 일은 다시 없을 것이라는 일종의 고정관념을 갖게 됐다. 때문에 그 동안 대선주자군에 혹여 정몽준이란 이름이 나오더라도 금방 힘을 잃게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현대그룹은 고 정주영 회장 사후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자동차, 중공업과 조선, 건설과 상선, 백화점 계열 등 네 동강이 났다. '92년의 정주영'과 비교해서 '2002년의 정몽준'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불과 몇 달전까지 '대선후보 정몽준'은 그림이 안 됐다.

***'정몽준 1위'의 원인 분석**

월드컵이 이변의 주인공이었다.
7백만을 거리로 내몬 월드컵 신드롬, 이것은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리적 요인 등등 모든 것이 응축된 폭발적 분출이었다. 그 한 작은 조각이 지금 '정풍'의 시작이다.

우리 국민 모두를 그렇게 오랜 동안, 그렇게 많이 기쁘게 만들었던 이벤트가 또 있었을까? 너무 기쁘고 좋아서 월드컵과 관련된 모든 것이 예뻐 보인다. 히딩크는 영웅이 됐고, 김남일 박지성 이을용 등등 스타가 즐비하게 태어났다.

정몽준도 그래서 일단 예뻐 보인다. '정풍'의 시작으론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한달여만에 '정몽준 1위'가 나왔다.

7월을 돌아보자.
이회창 후보는 '병풍(兵風)'의 십자포화를 맞아 방어에 급급한 모습이다. 또 '부자 몸조심' 한다고 의도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병풍' 공격에 대한 방어도 당직자들이 대신 나서고 있다. 명색이 제1당 대통령후보인데 그의 동정이 신문에 전혀 오르내리지 못한 날도 많았다.

노무현 후보는 6.13 지방선거 패배 이후 재신임 파동을 겪었다. 곧바로 8.8 재보선 준비태세에 들어갔지만 공천과정에서부터 한마디로 '말발이 서지 않았다'. 당내에선 계속 그를 흔들어대는 소리만 터져 나왔다. 급기야 7월 하순 접어들면서는 민주당 간판 내린다는 게 기정사실화됐다. 8.8 선거는 또 참패였다.

한 사람은 조심조심 활동도 자제하고, 연일 자신에게 퍼부어지는 공격 막느라 정신이 없다. 또 한 사람은 영화 와호장룡의 주인공처럼 휘청거리는 대나무 꼭대기에 올라 중심 잡기에 여념이 없다. 그 영화 주인공 주윤발처럼 내공의 고수도 못 되니 제대로 서 있기도 힘겨울 정도다.

대신 다른 한 사람은 전국 방방곡곡, 해외 여기저기 다니며 월드컵 감사 인사하러 다닌다. 월드컵과 자신의 이미지가 조금 떨어질 만하면 다시 한번 월드컵을 상기시키는 행보다.

그러면서 가끔씩 정치적 멘트를 한다. 그것도 무소속 의원으로 아무 책임질 일 없으니 좋은 소리만 골라서 한다. 알 듯 모를 듯한 미소와 함께.

이러니 지지도의 변화가 어떻게 나오리라는 건 불을 보듯 명확한 것 아니겠는가. 그 결과 1위가 됐다.

***'盧風'과 '鄭風'의 결정적 차이점**

이제 '정풍'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한번 뜨기 시작한 지지도는 일정기간 가속도가 붙는다. '노풍' 때도 경험했다. 한때 노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25% 포인트 가까이 앞서기도 했지 않는가.

특히 민주당의 신당 창당이 삐그덕거리면 거릴수록, 또 김대업씨의 잇따른 폭로가 일단락되기 전에는 '정풍'이 더더욱 거세게 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노풍'과 '정풍'의 결정적 차이점이다.

정몽준 의원의 지지도는 그가 대선과 관련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동안 급신장해 왔다. 정치판은 어지럽고 대신 그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는 동안 '정풍'이 불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풍'은 노무현이 방아쇠를 당겼다. 경선 시작 전부터 '영남후보론' '정계개편론' '민주세력 대연합론' '서민정치론' 등등 숱한 이슈를 만들어 내고, 기성정치 전체에 대한 도전자의 선전포고를 날렸다.

그러다 기성정치권과 보수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또 준비가 덜 된 까닭에 스스로 내뱉은 선전포고를 책임있게 실현시켜 내지 못하는 미숙함도 드러냈다. 자신의 정치적 배경인 DJ의 완전몰락도 한 몫을 했다.

그래서 지지율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30%를 견고히 지키고 있다.

***'일시적 현상' 수준의 '鄭風', '표'로 연결될까**

반면 '정풍'은 정몽준의 구체적이지 않은 애매함에 뿌리를 박고 있다. 아리송한 신비주의와 결합되어 있다.

하지만 애매모호함만으로 대선까지 갈 방법은 없다. 가급적 시기를 늦추고 싶겠지만 그것도 뜻한 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그가 구체적 행보를 시작하면서 '정풍'은 시련을 맞을 것이다.

신당의 경선에 참여할 것인지, 독자 창당에 나설 것인지,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인지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부터 새 국면이 전개된다. 경선에 참여하든 창당에 나서든, 맞상대가 정해지고 파트너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그에 대한 진짜 평가가 시작될 것이다.

'애매모호한 신비주의'에 기초한 지지율은 그저 '일시적 현상'일뿐이다. 정치인에 대한 지지기반이라 부르기 어렵다.

개인의 이미지와 능력, 그가 속한 정파에 대한 신뢰도, 노선과 정책에 대한 평가, 심지어 이해관계의 일치까지가 종합되어야 지지기반이 된다. 또 엄존하는 지역주의를 감안할 때 영호남 민심이 어디로 흐르는가도 빼놓을 수 없는 변수다.

게다가 그 지지가 표로 연결될 것인지는 대선 직전의 정치경제적 상황, 거기에 대처하는 정국관리능력까지를 살펴봐야 알 일이다.

정몽준 의원, '정풍'엔 아직 아무 것도 없다.

***여론조사, 또 한번 '천변만화의 요술' 부릴까**

신당의 관건은 노무현-정몽준 양자관계다. 어느 쪽으로 힘이 쏠릴 것인지, 경선을 한다면 대의원들과 국민참여자들은 각기 누구를 더 지지할 것인지, 각자 따로 출마한다면 누가 더 표를 많이 얻을 것인지 이번 대선 최대 관심사다.

이제 막 시작된 싸움에서 여론조사라는 '요술'은 정몽준 편을 들어주고 있다. 이 '요술'이 '노무현 대통령후보 탄생'과 같은 또 한번의 천변만화를 일으킬 것인지 차분히 지켜볼 일이다.

사족 한마디.

'정풍'을 맞는 노무현 후보의 심사는 어떨까? 지난 3월 '노풍' 앞의 이인제 의원 마음과 닮아 있지 않을까? '인생사 돌고 돈다'고 노무현 자신이 이인제 의원의 심정이 될 줄 짐작이나 했을까?

이 간단한 이치를 미리 알고 후보 확정 직후 이인제 의원부터 찾아가 위로했다면 어떠했을까? 지금 같은 일은 아예 벌어지지도 않았을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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