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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과 데니스 머피…두 노투사의 짧고 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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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과 데니스 머피…두 노투사의 짧고 긴 만남

사는 곳은 달라도 삶의 터전 빼앗긴 주민들은 매한가지

"처음 보는데도 마음이 딱 통하는 게 느껴져."

문정현 신부가 11일 아침 '필리핀의 문정현' 데니스 머피를 만났다. 국적도, 사는 곳도 달랐지만 힘없는 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왔던 두 사람의 한 평생은 비슷한 모습이었다. 굳이 여러 말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척척 알아듣는 '이심전심'에는 사는 곳은 달라도 삶의 터전을 빼앗긴 것은 마찬가지인 평택과 필리핀 주민들의 똑같은 원통함도 바탕이 되었다.

지난 8일 머피를 인터뷰한 〈프레시안〉이 그에게 '필리핀의 문정현'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이 이날 만남의 계기가 됐다. 문정현 신부는 머피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머피가 '필리핀의 문정현'이라니까 안 만나볼 수가 있어야지"라며 환하게 웃었다. 문 신부의 요청으로 애초 일정에도 없던 이 두 사람의 만남이 주선된 것이다.

☞ 관련기사 보기 : "한국의 원조가 필리핀 민중의 삶을 억압한다"(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60209150801&s_menu=세계)

〈사진 1〉

***"평택에 꼭 한번 오십시오"…"신부님도 필리핀에 와주세요"**

두 '노투사'가 현재 온 힘을 들이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주거 생존권 문제다. 한 사람은 미군기지 확장으로 인해 평생 농사짓던 땅과 살던 집에서 하루 아침에 쫓겨나게 된 평택에서, 또 한 사람은 한국 정부가 자금을 지원한 '마닐라 남부 통근열차 프로젝트(사우스 레일 사업)'으로 아무 대책 없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된 철로변의 주민들과 함께 싸움을 만들어가고 있다.

"평택에서, 필리핀 마닐라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까?"

사는 곳은 다르지만 고민은 하나였다.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주체는 달랐으나 살던 곳에서 떠날 것을 종용당하는 주민들의 모습도 너무나 똑같았다. 그러니 한 마디만 해도 척 하고 알아들을 수밖에. 500일이 넘도록 매일 촛불집회를 벌이고, 지난 1월에는 11일 동안 트랙터 순례길을 오르기도 했던 평택 주민들이었다. 그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찬 바람 속에서도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워 온 평택 주민들과 늘 함께 해 온 문정현 신부였다. 문 신부는 아예 지난해 평택시 대추리로 이사하기까지 했다.

문 신부는 "내일 열리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3차 범국민대회에 오시면 좋을텐데…"라며 아쉬움을 전하자 머피는 다음 기회에 꼭 한번 가보겠노라고 약속했다. 머피는 문 신부에게 "필리핀에 한번 오시라"고 초청하기도 했다. 문 신부는 "평택 싸움이 지금 워낙 급한 상황이라 당장은 어렵겠지만 꼭 필리핀에 가보겠다"고 응답했다.

〈사진2〉

문 신부의 가슴을 평택 주민들이 메우고 있다면, 머피에게는 필리핀 주민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머피는 "우리 조사에 따르면, 사우스 레일 사업으로 인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 하는 주민들이 새로운 지역에서 지금의 경제 수준을 되찾으려면 무려 5년이란 세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지금도 넉넉한 생활은 못되지만 새 지역에서는 그조차도 영유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같은 주민들의 고통에 대해 "한국 정부는 어떤 응답도 하지 않고 있다"고 머피는 안타까워했다. 필리핀 정부가 주민들의 주거를 보장해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요구해야 한다고 몇 차례나 강조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 한국 사람들의 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나이 얘기도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갔다. 머피는 올해 76세, 문 신부도 1940년생이니 올해 67세다. 둘 사이에는 십 여 년의 나이차가 있지만, 머피의 말처럼 두 사람 모두 "대다수의 사람보다 나이 든" 할아버지들이다. 살아온 세월 만큼이나 민주화와 빈민들을 위해 바친 인생의 발자취는 되짚어 더듬어봐도 끝나지 않을 얘기였다.

문 신부가 1989년 임수경 방북 당시를 회상하자, 머피는 임수경의 이름을 듣고 반가워했다. 전대협 대표로 방북한 임수경을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을 거쳐 데리고 들어오던 그 순간을 자신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문 신부가 "그 당시는 내가 참 많이 힘들었다"고 회고하자, 머피는 "외로운 싸움이죠"라고 대답했다. "네, 정말 외로운 일이었습니다." 문 신부의 대답과 함께 두 사람의 시선은 잠시 '청년'이던 옛 시절을 쫓아가고 있었다.

〈사진 3〉

그 외에도 두 사람은 아시아 곳곳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공유했다. 문 신부가 '효순이·미선이'를 얘기하자 머피는 필리핀에서 미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사람들의 얘기를 전했다. 두 사람이 젊은 시절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하던 미국에 대한 저항들이 아시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문 신부가 "한국에서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에 대해 그렇게 거세게 저항하지 못했다"고 말하자 머피는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동의했다.

이번 한국 방문 기간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문 신부가 묻자 머피는 젊은이들을 만났던 순간을 꼽았다. 70여 명의 젊은이들 앞에서 '사우스 레일' 사업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필리핀 주민들의 얘기를 전하던 날, 그는 매우 놀라웠다고 했다. "초롱초롱한 눈들이 나를 바라보고, 내가 전하는 필리핀 얘기에 진심으로 귀기울이고 있었다. 아시아 곳곳을 다녀봤지만,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머피는 한국의 젊은이들과 만난 그 순간을 문 신부에게 전했다.

문 신부는 머피를 위해 자신과 평택 사람들의 사진이 닮긴 CD를 건넸고, 서로 메일 주소를 주고 받기도 했다.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두 사람의 짧은 만남은 끝났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각자의 삶 속에서 이미 두 사람을 함께인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만남이 '짧고도 긴' 것은 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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