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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천만관객 돌파! 왜 하필 이런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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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천만관객 돌파! 왜 하필 이런 때에…?

[특집] 놀라운 성과…영화계 구조문제 해결에 도움돼야

<왕의 남자>가 마침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왕의 남자>는 2월 11일 오전에 이미 전국 280개 극장에서 1000만 명의 관객을 훌쩍 넘기며 또 다른 신기록 고지를 향해 초고속 질주중이다. 그 어느 누구도 이 영화가 1000만 관객이라는 메가 히트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않았다. 영화계가 이 영화의 대박 흥행을 놓고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일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과연 이 영화의 흥행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건 우연히 이루어진 한 순간의 신기루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한국영화의 폭발적 에너지에 따른 예고된 결과인가. 그리고 또 이 영화는 그저 한 편의 1000만 관객 영화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한국영화 제작의 트렌드를 일거에 바꿀 새로운 모멘텀이 될 것인가. 한국영화 평자들은 지금, 분석에 골몰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영화가 기존의 흥행코드와 공식을 상당 부분 비껴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 한 편이 1000만 관객을 모으기 위해서는 이른바 '스타 대군단'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처럼 인식돼 왔으며 무엇보다 막강한 조직력과 자금력이 철저하게 뒷받침돼야 하는 것으로 생각돼 왔다. 영화의 내적인 힘도 힘이지만 장기간의 마케팅 레이스와 와이드 릴리스(확대개봉) 전략이 결부되지 않고서는 이 '이상현상'을 만들어 내기란 어려운 일로 간주돼 왔던 것이다.
ⓒ프레시안무비
또 다른 1000만 관객 영화인 <실미도>를 만들면서 강우석 감독이 무의식적으로 "이제 한국에서도 1000만 관객 영화를 만들어 낼 때가 됐다'고 말했던 것은 바로 그 같은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000만 관객 영화는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 강 감독의 이 표현에는 다분히 '인위적 작전계획'이 들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과거의 천만 관객 영화들, 그러니까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은 대박 흥행의 과정과 작품에 대한 평가가 꼭 일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그 두 영화의 작품성에 대한 평단의 평가는 찬사일변도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비록 호평이었다 해도 그것이 영화 흥행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두 영화는 이미 1000만 관객을 만들어 내기로 '기획'됐기 때문이다. ***순수 관객의 힘으로 1000만 관객 이뤄낸 첫 작품** 하지만 이번 <왕의 남자>는 다르다. 이 영화의 1000만 관객 동원에는 평단의 극찬과 호평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따라서 <왕의 남자>는 역설적인 의미에서 정상적으로 혹은 자연발생적으로 1000만 관객을 모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의 첫 작품이 됐다. 순수하게 영화 '내적'인 힘만으로 빅 히트를 기록한 셈이다. 평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렇다면 우리 영화계가 드디어 정상궤도로 진입할 노선을 찾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1000만 흥행돌파가 꼭 반가운 일만은 아니라는 데에서 작금의 국내 영화계가 안고 있는 고민의 흔적이 읽혀진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왕의 남자>의 1000만 관객 돌파시기가 적절치 못하다는 얘기마저 흘러 나온다. 현재 국내 영화계는 미국을 상대로 한국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그 같은 상황에서 1000만 짜리 영화의 등장은 대중들에게 쿼터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설득하는 데 있어 뜻밖의 장애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이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거의 80%선까지 육박하고 있어 일부 관객들은 벌써부터 쿼터제의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그 속사정은 다르다. <왕의 남자>와 <투사부일체> 정도의 흥행성적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작품이 평균점 이하의 성적을 거두고 있고 따라서 이 한편의 영화가 갖는 대박 성공의 의미를 스크린쿼터 축소론으로 갖다 붙이는 것은 아전인수 혹은 어불성설의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가뜩이나 힘겨운 투쟁과정에서 대중들을 설득해 내야만 하는 또 다른 의제가 설정됐다는 측면에서 전술적으로 매우 불리한 상황이 초래된 셈이다. 왜 하필 이런 때에,라는 숨죽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축배보다는 영화계 구조개선에 심혈 기울일 때** <왕의 남자>의 1000만 흥행은 또 역설적으로 우리 영화산업의 기형적이고 불균질한 구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1000만 관객 동원, 그것도 특별한 스타군단을 동원하거나 막대한 마케팅비 혹은 독점적 배급력을 동원하지 않고 순수하게 영화 내적인 힘으로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는 모두들 큰 박수갈채를 보내야 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한편에서 보면 왜 꼭 1000만 관객이어야 하느냐는 의문을 낳게 한다. 영화산업의 정상적 구조에서라면 이렇게 극장에서 1000만 관객을 모으기 보다는 400만 관객 정도만 모으고 나머지 600만 관객은 비디오나 DVD 등 다양한 윈도우에서 모으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혹은 만약 우리가 정상적인 영화구조라면 지금 이 영화가 극장에서 1000만 관객을 모은 만큼 1500만 관객은 DVD 등 다른 윈도우에서 창출돼야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영화산업 구조는 현재 오로지 극장에서만 1000만 관객을 모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타의 부가판권 시장이 완전히 죽어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왕의 남자>가 동원한 1000만 관객은 앞으로 다른 작품에서라면 그 관객 수가 적절한 비율로 다른 윈도우 매체에 분산돼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영화계가 풀어야 할 최대 현안이자 숙제 라는 것을 다시 한번 웅변한다. 이유와 과정이야 어찌 됐든 우리 같은 좁은 내수시장에서 한 편의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모은 것은 놀랍고 또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1000만 관객의 의미가 올바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것이 국내 영화산업 내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얼마만큼 일조하느냐에 달려 있다. <왕의 남자>의 1000만 관객 동원에 기쁨과 걱정이 교차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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