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성들은 중산층 가정이라는 안락한 포로수용소에 '여성의 신비'라는 이데올로기로 속박돼있다"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하며 1960년대 여성운동을 이끌었던 페미니스트이자 사회심리학자인 베티 프리단이 타계했다. 자신의 85번째 생일인 4일(현지시간) 워싱턴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다.
미국 여성운동의 대모로 수많은 여성들의 삶과 의식에 영향을 미친 프리단은 〈여성의 신비〉라는 책을 통해 행복한 현모양처란 없으며 여성들은 남편과 육아에서 해방돼 사회적 활동을 강화함으로써 실질적인 성평등과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편과 아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프리단은 일리노이주 피어리어에서 보석상인 아버지 해리 골드스타인과 신문기자를 하다 전업주부가 된 어머니 미리엄 사이에서 태어났다.
올 A의 성적으로 스미스 컬리지를 우등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심리학과로부터 특별연구원 지위를 제안받았으나 거절한 그는 졸업 후 뉴욕에서 노동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두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출산 휴가를 얻었다가 나중에 파면당하거나 회사측이 남자로 자신의 자리를 교체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는 1963년 대학 졸업 후 전업주부가 된 여자 동창생들의 결혼 생활을 추적, 탐사 보도 형식의 책자 〈여성의 신비〉를 완성, 초판으로 3천부를 발행한 것이 260만부가 넘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는 〈여성의 신비〉에서 당시 여성들이 가정주부로서 겪고 있던 내면적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로 규정하고 여성들이 이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은 '내가 누구이며, 내가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그것을 죄라고 느껴서는 안 된다. 여성들은 남편과 아이를 넘어서 자기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기를 원하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느낄 필요가 없다"
그의 강력한 성평등 메시지는 당시 여성운동의 기폭제가 됐으며 프리단은 미국 최대의 여성운동 단체인 전미여성기구(NOW)를 비롯, 전미낙태권행동리그(NARA), 전미여성정치회의(NWP)의 창립자가 돼 낙태, 출산 휴가권, 승진과 보수에서의 남녀평등을 위한 운동을 폈다.
킴 간디 NOW의 현 의장은 〈여성의 신비〉가 "삶의 실질적인 다른 무언가를 꿈꾸던 여성의 사고를 열어주었으며, 그런 생각들을 비밀스럽게 숨기고 살아온 여성들에게 자신 외의 다른 여성들도 더 나은 삶을 꿈꾼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뉴욕대와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강의를 맡았으며 전세계 여성 회의를 돌며 연설을 하는 것은 물론 1995년엔 베이징 여성대회를 주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미국 내에서도 그는 민주당을 설득해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에 여성대표들이 절반을 차지하도록 했으며, 지난 1984년 제럴딘 페라로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을 당시 그 스스로 대표로 참여했다.
***70년대 이후 '중산층 백인여성 중심' 비판받아**
프리단은 그러나 여성 운동이 남성과 가정을 거부하지 않는 미국의 본류로 남아 있어야 한다면서 여성 동성연애주의자들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이 때문에 급진적인 여성 운동가 수잔 브라운 밀러는 그를 '가망 없는 부르주아'로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그의 이론과 행동은 가정과 직장 일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수퍼우먼'을 요구하며, 여성 내부의 인종적·계급적인 차이를 무시했다며 '중산층 백인여성 중심'이라는 비판에 부닥치기도 했다.
그는 1981년 저서인 〈두 번째 단계〉에서 〈여성의 신비〉가 가정 내의 삶에 대해 지나치게 경멸하고 있다는 비판을 수용하기도 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우리의 실패는 가정에 대한 우리의 눈멈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70년대 이후 노령자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지난 1993년 마지막 저서인 〈노년의 샘〉에서는 "노인들을 다루는 사람들이 마치 20년전 여성들에게 그랬듯이 '동정을 베풀듯' 인격을 무시하며 보호하려 든다"며 비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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