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 이하 위원회)가 1973년 당시 야당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납치된 지 10여 일 후 한국 정부가 납치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담은 보고서를 유엔에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5일 정부가 공개한 DJ 납치사건 관련 외교문서 중 이 위원회가 작성한 `전 대통령후보 납치 및 재출현'이라는 제목의 번역문에는 당시 DJ 납치사건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혹 어린 시선이 녹아 있다.
최상급 비밀로 분류된 이 보고서는 도쿄에서 납치됐던 DJ가 자택으로 돌아온 지 이틀 뒤인 8월15일 사건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작성됐으며, 당시 위원회의 사무국장인 오즈브든 씨는 8월20일 이 것을 유엔본부로 보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위원회는 DJ납치의 첫 번째 시나리오로 정부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46%의 지지를 얻고 현 정부에 반대해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야당지도자를 아마 한국정보기관에서 납치했을지 모른다"고 추정했다.
위원회는 이어 "한국에 CIA(중앙정보국)와 같은 기관이 몇 개 있으며 그 기관들은 납치할 수 있는 능력.방법과 요원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위원회는 또 이 사건을 계기로 한일간 국교단절 문제가 발생하거나 한국에 부정적인 세계 여론이 유발될 수 있고 한국 정부가 `기만(欺瞞)정부'로 낙인 찍힐 가능성이 있다면서, 특히 한국 최고 지도자층에서 알고 있었다면 이는 한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될 것이라고까지 언급해, 상당한 파장이 일 것을 예상했다.
위원회는 이 밖에도 재일민단이 한국 정부를 돕기 위해 감행했을 가능성과 북한 간첩 또는 조총련계 인물의 소행일 가능성, DJ 자작극 가능성, 일본 기관 개입 가능성 등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한국 정부의 개입 가능성에 가장 비중을 두었다.
특히 위원회는 이 문건에서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 당시 한국 정부가 서독에 체류하던 한국인 17명을 한국으로 송환해 처벌한 사실을 거론한 뒤, DJ 납치사건에도 한국 정부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위원회는 "대부분 사람들은 한국 정부가 1967년 6월 동백림 간첩단 17명을 서독에서 감쪽같이 잡아온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1950년 10월 유엔총회가 전쟁으로 파괴된 한국의 재건과 복구를 위해 설립한 이 위원회는 1973년 해체될 때까지 유엔에 한국의 정치.경제.군사 등 중요한 문제에 관한 연례보고서를 제출했다.
위원회는 호주, 칠레, 네덜란드, 파키스탄, 필리핀, 태국, 터키 등 7개국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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