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일방적인 협상은 처음인 것 같다. 한나라당이 완패한 것 아니냐"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등원 협상에 만족감을 표했다. 노 대통령의 이런 평가는 여당 지도부에게는 더 없는 칭찬이었겠지만 한나라당에는 모욕에 가까운 비아냥이었다.
그러나 정작 장외투쟁을 '반(反)정권 투쟁'으로까지 확대시켰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한나라 '발끈'…박근혜는 '침묵'**
2일 박근혜 대표 주재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엄호성 전략기획본부장은 "대립과 갈등을 봉합하고 국민 통합의 중심에 서야 할 대통령이 제1야당을 이렇게 무시하는 발언을 해도 되느냐"고 발끈했다. 그는 "제1 야당의 입장에서 대통령에게 엄중히 유감을 표한다"고도 했다.
이계진 대변인 역시 "대통령이 덕이 있는 분이라면 추운데 여야가 산상회담을 하느라 고생했다는 덕담을 해야 했다"며 "노 대통령이 실제로는 그런 심정이었는데 여당 지도부가 곡해해 전한 얘기라고 믿고 싶다"고 꼬집었다.
원내협상을 두고 '완패'란 판정을 내린 노 대통령의 평가에 한나라당의 이 같은 반발은 충분히 예상된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53일 간의 사학법 재개정 장외투쟁을 이끌었던 박근혜 대표는 말이 없었다. 공개된 회의는 물론이고 박 대표는 비공개 회의에서도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회의 직후 생일 축하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가 "어제 저녁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저녁을 주며 했던 첫 마디가 '국회 정상화가 돼 좋다'는 말이었다"고 운을 뗐지만 박 대표는 대응 없이 다른 화제로 말 머리를 돌렸다.
***주도권은 이재오 대표에게로**
장외투쟁 당시에는 청와대와 여당의 공격에 즉각적인 반응을 했던 박 대표였다. 하기에 정작 노 대통령의 "완패" 발언에 대한 침묵 대응은 대여 관계의 주도권이 이재오 원내대표 쪽으로 넘어갔음을 보여준 장면으로 해석됐다.
긍정적으로 보면 등원을 합의한 이재오 원내대표의 성과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려는 배려의 의미가 포함돼 있다. 여기에는 뾰족한 대안 없이 장기화 기로에 섰던 장외투쟁의 돌파구를 열어준 이 대표에 대해 반박 진영은 물론 친박 진영에서도 호응도가 급속히 높아진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학법이 원내 협상 국면으로 넘어간 마당에 강경론에 다시 불을 지필 타이밍도 아니라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표도 사학법 장외투쟁에 부정적인 당 안팎의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따라 한나라당은 장외투쟁이 '중단'이 아닌 '보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국가정체성 수호'라는 박 대표의 '신념'이 이끈 강경론은 재점화가 쉽지 않아 보인다. 장외투쟁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도 못했을 뿐더러, 이 원내대표가 주도하는 원내전략에 박 대표가 개입할 여지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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