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유독 회화나 조각, 화가 등 미술작품과 예술가를 다룬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동명 그림을 소재로 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부터 화가의 일대기를 담은 <프리다>와 <열정의 랩소디>까지 예술과 예술가를 다룬 다양한 작품들이 영화화되어 있다. 미술을 비롯한 예술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화면에 보여지는 미술작품이나 예술을 별 의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정말 영화 속에 나오는 미술 작품이나 예술가들에 관한 내용들은 과연 모두 진실일까? 왜곡되거나 거짓인 부분은 과연 없는 것일까? <미술영화 거들떠 보고서>는 스크린에 구현된 미술 작품 가운데 과연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꼼꼼하게 짚어낸 책이다. '스크린에 복제된 미술의 허상'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미술영화 거들떠 보고서>는 영화와 미술의 양쪽 분야를 폭넓게 아우르며 미술과 영화의 상관 관계를 이론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해낸다. 저자인 이연식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과정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한 탄탄한 이력을 바탕으로 스크린에 투영된 미술의 실체에 접근해나간다. 저자는 '미술 영화 그리고 텍스트', 미술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영화관 뒤 미술관' '영화감독의 눈으로' 등 네 개의 챕터로 나누어 미술작품을 다룬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들을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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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영화 거들떠 보고서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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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다룬 어빙 스톤의 전기소설 <삶의 열망>을 영화화한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영화 <열정의 랩소디>는 고흐의 실제 모습과 작가 어빙 스톤의 상상력이 결합된 소설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놓는다. 덕분에 영화 속 고흐와 실제 고흐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되는지는 어빙 스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영화 속에서 고흐가 걸작 '해바라기'를 그리게 된 과정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해바라기'는 과연 고갱의 주장대로 고흐가 고갱의 가르침에 따라 그린 것인지, 고흐 자신의 회화적 성취일까? 저자는 여러 가지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의문에 대한 답을 논리적으로 찾아나간다. 아네스 메를레 감독의 <아르테미시아>는 1970년대 이후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한 17세기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의 이야기를 다룬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가 구약성서의 외경 중 하나인 <유디트서>에 나오는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를 살해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를 어설프다고 평가한 아르테미시아가 새로운 관점으로 그려낸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를 미술사적 관점으로 비교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아르테미시아와 그림에 얽힌 사건을 친절하게 묘사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처럼 영화가 미술작품을 다루는 방식 면에서 영화가 실제 사건과 허구적 상상력을 결합하는 방식을 친절하고 철저하게 설명한다. 저자의 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양화를 전공한 저자는 <타이타닉>에서 가난한 화가 잭 도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로즈(케이트 윈슬렛)의 누드를 그리는 장면을 비롯, 잭이 그린 소묘와 로즈의 짐 속에서 피카소의 걸작 '아비뇽의 처녀들'이 나온 장면 등을 분석하면서 미술작품과 예술가를 그리면서 세심하게 디테일을 배려하지 못한 감독의 연출력에 일침을 가한다. 저자는 잭 도슨의 스케치북에 그려진 그림들이 싸구려 도색잡지의 그림을 닮았다고 설명하고, 잭이 그린 그림 중 '보석 부인'은 프랑스 사진가 브라사이가 1933년에 내놓은 사진집 <밤의 파리>에 실린 사진을 그대로 베껴 그렸다는 사실들을 폭로하면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뻔뻔스러움을 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에서 혜주(조안)이 윤지(박지연)을 죽이고 그 시체에 찰흙을 덧대어 '작품으로서의 윤지'를 만든 것이나, <위대한 유산>에서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가난한 주인공을 뉴욕의 미술계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다거나, <스캔들-조선남여상열지사>에서 바람둥이 조원(배용준)이 섹스파트너인 기생의 알몸을 그리는 장면을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의 구도를 따 우아함이 흐르는 영상으로 바꿔놓는 것 등을 예로 들며 예술과 영화의 행복한 만남의 가능성과 의미를 찾아내기도 한다. <미술영화 거들떠보기>는 젊은 미술학도의 눈으로 미술을 다룬 영화를 소재로 동서양 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쳐놓는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물랑 루즈>, <누드 모델><까미유 끌로델>, <바스키아>, <취화선>, <폴락> 등 30여 편이 넘는 미술 관련 영화뿐만 아니라 관련 소설, 각종 전기 등도 함께 다루면서 스크린에 투영된 미술작품과 영화의 상관관계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동시에 이 책은 폭넓은 인문학적 시선으로 미술작품과 예술가들을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탐구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미술과 화가, 미술계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게 도와준다. 수록된 참고서적과 관련 DVD 리스트는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한 독자들에게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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