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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아톰'을 다시 만드는 이유는?

50여년전 열패감 극복의 상징, '재도약의 실마리 찾자'

70년대초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TV만화영화 '우주소년 아톰'(원제: 鐵腕 아톰)이 새로 만들어진다.

일본 언론들 보도에 따르면, 새로운 시리즈는 아톰의 53번째 생일인 내년 4월7일 방영을 목표로 소니(SONY)그룹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소니 계열사로 이미 지난 99년 데스카 프로덕션에서 영화와 TV 등의 캐릭터 판권을 사들였던 소니 픽처스엔터테인먼트는 데스카 프로덕션과 공동으로 작품을 제작해 '아스트로 보이·철완 아톰'이라는 타이틀로 일본을 물론 아시아와 미주 지역에서도 방영될 예정이다. 아톰 팬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될 가능성이 높다.

명작 만화를 리메이크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할리우드의 경우도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숱한 만화영화를 극영화로 리메이크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아톰의 경우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아톰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는 게 일본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12년째 끝없는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있는 일본의 침체된 분위기와 상당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는 이들의 공통된 견해다.

무슨 얘기인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 강하다"**

아톰은 '일본만화의 신(神)'이라 불리는 데스카 오사무의 대표작이다.

데스카는 1951년에 어린이잡지 <소년>에 '아톰대사'라는 제목의 단편 만화를 실었다. 그런데 이 만화에서 조연 캐릭터로 등장한 로봇소년이 큰 인기를 끌자, 십년뒤인 61년 1월 일본 최초의 TV용 흑백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시청률 40%라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1966년까지 총1백93편이 제작됐다.

이후 80년 10월부터 81년말까지는 컬러애니메이션 '신(新) 철완아톰'을 제작해 큰 인기를 끌었고, 이미 70년대 '우주소년 아톰'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됐던 국내에서도 이를'돌아온 아톰'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됐었다.

이처럼 일본에서 아톰이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의 만화평론가 또는 사회평론가들은 그 핵심원인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데스카의 철학과 당시 시대상황의 절묘한 결합에서 찾고 있다.

45년 패전으로 일본은 범국민적 컴플렉스에 빠져들어갔다.
패전후 항복에 반대하며 할복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이런 극단론자들은 한줌에 불과했다. 대다수는 무한대의 물질적 풍요를 앞세운 미국에게 "역시 우리같은 소국은 상대가 안된다"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혔다. 일본은 본디 12~19세기까지 장장 7백년간 약육강식의 봉건영주시대를 경험한 사회다. 매일같이 잔혹한 영토확장 전쟁이 계속되다 보니 "강자가 선이고 약자는 악"이라는 '강자의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게 됐다. 이같은 강자의 논리가 패전후 일본인들을 극심한 컴플렉스의 늪으로 밀어넣은 것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며 미군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들은 더욱 열등감이 심했다. 아이들이 일제시절 학교에서 배운 것은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논리였다. 이 교육이 아이러니컬하게도 패전후 아이들의 열등감을 크게 부추켰다. "크고 허여멀건한 서양것이 최고고, 자그마하고 누리끼리한 우리 것은 촌스럽다"는 식이었다.

데스카 눈에 비친 일본의 위기는 심각했다. 어린아이들이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일본의 미래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런 고민끝에 탄생한 것이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이 강하다"는 데스카의 철학이었고, 이런 철학의 완성체가 아톰이었다.

***"일본 어린이들을 열등감에서 구원한 것이 바로 아톰이었다"**

한 예로 아톰의 연작 시리즈 가운데 '지상최대의 로봇'이라는 작품을 보자.

여기에는 아톰보다 힘이 세고 외양도 빼어난 서양 각국의 거대 로봇들이 총출현한다. 아톰은 당연히 이들과의 싸움에서 크게 고전한다. 그러나 악착스런 승부근성으로 거대한 서양의 강적들을 하나씩 물리친다.

가장 압권은 마지막 장면. 도저히 아톰 혼자 힘으로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로봇이 나타난다. 이때 아톰이 생각해낸 방법은 자신처럼 자그마한 일본의 수백여 동료 로봇을 모아 초거대 로봇 형상을 만들어 싸우는 방식이었고, 당연히 아톰 진영은 최후의 승리를 거둔다.

이런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데스카 철학은 그의 다른 작품 <밀림의 왕자 레오>나 <사파이어 왕자> 등에서도 그래도 목격된다.

일본의 넌픽션 작가 세키가와 다쓰오는 한 글에서 데스카 철학이 일본사회에 미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패전 직후 어린이들에게 일본은 바로 후진국 그 자체였다. 배워야 할 것이라고는 구미문화말고는 없다는 성급한 풍조와, 일본인으로 태어난 그 자체가 이미 열등하다는 낙인이 찍힌 거나 다름없다는 비관적인 분위기가 사회를 뒤덮고 있었다.

그 굴절된 상황에 시달리던 어린이를 구원한 것이 데스카의 만화였다. 만화 속에서 일본 어린이들은 능력이나 용모 면에서 백인 어린이와 대등했다. 일본 어린이들은 이를 통해 처음으로 해방감과 인터내셔널리즘을 배운 것이다."

일본 경제학자들은 데스카의 철학이 소니 등 일본 기업들의 '경박단소'형 제품 생산 등 일본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본은 그렇다지만, 과연 우리는 다른가**

아톰이 처음 그려진 지 5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일본인들은 아톰을 그리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아톰이 탄생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어쩌면 할리우드 영화와 같은 그렇고 그런 오락물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인이 생각하는 아톰은 위기때 일본이 나아갈 좌표를 제시한 '국민적 영웅'이다. 일본인들은 지금도 데스카 오사무를 단순한 만화장인이 아닌 일본 최고의 사상가로 존경하고 있다.

얼마 전 만난 한 일본 저널리스트는 "지금 일본은 심각한 좌절의 늪에 빠져있다"고 토로했다. "위기의 일본을 이끌어갈 리더가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같은 일본의 깊은 좌절감이 아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과연 우리는 다른가.
우리는 월드컵에서 '순수한 하나됨'의 뜨거운 경험을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현재 일본이 절망하고 있는 리더십의 부재가 우리 문제가 되지나 않을까라는 우려를 금할 길 없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이 조금 더 크고 넓은 시야에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적극적 비전을 제시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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