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가 29일(현지시간) 74세의 나이로 미국에서 삶을 마감했다.
백남준씨는 이날 저녁 8시경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아파트에서 부인 구보다 시게코 씨 및 간호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백 씨의 사인은 '자연적 원인(natural causes)'이며, 장례식은 며칠 뒤 뉴욕 맨해튼 메디슨 애비뉴의 프랭크 켐벨 장례식장에서 거행될 예정으로 전해졌다.
***백남준, 그는 누구?**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씨는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대학의 미학문학부와 독일 뮌헨의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1963년 처음으로 연 독일에서의 개인전 이후 비디오 예술의 창시자로 세계 예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사진1:백남준>
그의 첫 개인전에는 '장치된 비디오' 3대 및 '장치된 TV' 13대와 함께 갓 잡아 피가 떨어지는 황소머리가 전시됐는데, 개막일 '플럭서스' 운동의 창시자 요셉 보이스가 도끼를 들고 나타나 전시중인 피아노 한 대를 부숴버린 일화로 일약 유명세를 탔다.
백 씨는 그 뒤 1969년 미국에서 샬롯 무어맨과 함께 공연을 하면서 비디오 아트를 예술 장르로 편입시킨 선구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세계 예술계에서 인정해주는 만큼 국내에서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1984년 파리와 뉴욕을 통신위성으로 연결하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기획, 지휘하면서 국내에서도 '천재적 아티스트'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인공위성쇼를 도맡아 지휘하면서 고국에서도 타고난 천재성을 과시했다.
백 씨는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의 왼쪽 신경이 마비된 상황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벌였으며, 예술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은 당대에 인정을 받는 행운도 누렸다.
그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1996년 10월 독일 <포쿠스>지가 선정한 올해의 100대 예술가에 오르기도 했다. 1997년 8월에는 독일 경제월간지 <카피탈>이 선정한 세계의 작가 100인 가운데 10위 안에 선정되는 영예도 얻었다.
또한 그는 현대예술과 비디오를 접목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로 '98년도 교토상'을 받았고, 한국과 독일의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괴테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한국의 이름을 빛낸 그에게 2000년 금관문화훈장이 수여됐다.
***뇌졸중 후에도 직접 퍼포먼스…그의 별세 소식에 뉴욕 문화계 침통**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그가 직접 퍼포먼스를 벌인 것은 지난 2004년 10월 6일의 '메타 9.11'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메타 9.11'은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을 상징하는 두 줄의 비디오 스크린에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영상을 담아 미국 예술계의 호평을 받았던 작품으로, 뇌졸중과 싸워가며 힘겹게 퍼포먼스를 벌이던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사진 2:그의 작품>
백 씨는 뇌졸중으로 고생하면서도 최근까지 '마지막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몰두했던 것으로 알려져 그를 사랑했던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한층 더하고 있다.
그의 별세 소식으로 뉴욕의 문화계도 침통한 분위기다. 더욱이 지난 20일 맨해튼 갤러리 코리아에서 개막돼 오는 2월 24일까지 열리고 있는 비디오 작품전시회 '무빙 타임전'에 그의 과거 작품 3점이 전시돼 백남준의 마지막 전시회가 된 셈이라며 뉴욕의 비디오 예술가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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