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대사관측이 국내 여론을 묵살하고 옛 덕수궁터에 미 대사관건물 신축 및 직원용 8층아파트 건립을 강행키로 해 물의를 빚고 있다.
미 대사관은 26일 서울 남영동에 소재한 미 대사관 공보과에서 '덕수궁터 미 대사관·아파트 신축 반대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미 대사관의 다섯가지 입장**
시민모임이 미 대사관 관계자들을 만난 뒤 공개한 미 대사관측 입장은 다음 다섯 가지이다.
첫번째, 신축부지는 미국의 소유이고 한국정부가 제공한 부지이므로 신축은 정당하다.
두번째, 세계 대도시의 경우 주요대사관들이 도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미 대사관과 직원아파트가 서울의 중심지인 정동에 위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번째, 미국은 한국의 문화유적을 발굴하여 보존하고, 신축건물은 덕수궁의 경관을 고려할 것이다.
네번째, 신축부지의 이전과 제3의 대체부지는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
다섯번째, 미국대사관의 입장이 제대로 알려진다면 신축에 반대하는 한국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시민모임, "미국측 인식 자체가 잘못돼 있었다"**
시민모임의 천준호 집행위원장은 이와 관련,"미국측의 인식 자체가 잘못되어 있음을 면담결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국민은 덕수궁 터에 외국건물이 들어서는 자체에 반대하고 있고, 문화재보호라는 관점에서도 문화재를 발굴해 박물관에 놓자는 게 아니라 덕수궁터를 그대로 유지, 보존하길 바란다는 것을 거듭 말했으나 미국측은 덕수궁 주변에 20층 이상의 고층건물이 이미 많이 있다는 이유로 아파트건설을 강행할 의지를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또 "국민여론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알면 한국인들이 충분히 이해할 것이고 현재 반대 입장을 나타내는 것도 소수일 것이라며 여론을 묵살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천 위원장은 특히 면담에 참석한 짐 포브스 행정참사관이 "주변에서 조언하기를 '한국인들은 감정적이니 이를 감안하고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 들었다. 한국인들의 인식이 잘못됐다"는 발언도 했다고 전했다.
***미 대사관, "외교부하고만 대화하겠다"**
천 위원장은 미 대사관측 입장도 동등하게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도록 공개토론회를 개최하자고 거듭 제안했으나, 포브스 참사관은 "외교적 문제인 만큼 한국 외교통상부하고만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 대사는 지난 5월 중순 이 문제와 관련, 외교통상부가 아닌 건설교통부 고위관리를 만난 자리에서 "대사관 숙소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일반 아파트를 지을 때 적용하는 주택건설촉진법 규제를 받지 않도록 해 달라"는 요청을 한바 있다. 그는 또 고건 당시 서울시장에게도 비슷한 요구를 하여 '내정간섭'이라는 여론의 비난을 받은 전례가 있다.
허바드 대사의 이같은 행보는 미국과 외교통상부간의 외교문제인 미 대사관과 직원아파트 신축에 외교통상부가 국내 관련부처나 서울시의 입장을 들어 반대할 것을 대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신임 이명박 서울시장 등 유관부처 관련자들은 강력한 반대여론을 인식, 미 아파트 신축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공표했던 만큼 미 대사관의 일방적 공사강행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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