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의 평가전이 끝난 뒤 박주영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왼쪽 윙포워드로 출장한 박주영은 중앙 공격수 이동국과 자주 겹쳤다. 한국의 오른쪽 측면 공격이 효과적이었던 것에 비해 박주영이 위치한 왼쪽 측면 공격은 '휴화산'이었다. 이 때문에 박주영의 포지션은 윙포워드가 아닌 중앙 공격수여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시됐다.
하지만 딕 아드보카트 대표팀 감독은 "UAE와의 평가전에서 한국은 5번의 득점 기회가 있었고, 이 중 3차례의 기회가 박주영과 연관돼 있었다. 이 사실은 박주영이 현재의 포지션에 적합한 선수라는 점을 입증한다"라며 윙포워드 박주영에게 신뢰감을 보였다.
UAE와의 평가전에서 슈팅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해 애를 먹었던 박주영은 21일 그리스 전에서 방향을 살짝 바꾸는 절묘한 헤딩슛으로 득점을 기록했다. 그리스에 선취점을 내줘 어렵게 경기를 풀어가던 한국은 이천수의 프리킥에 이은 박주영의 헤딩골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다. "박주영은 타고난 골잡이"라고 했던 아드보카트 감독의 칭찬에 박주영이 화답한 셈이다.
그리스 전에서도 한국은 UAE 평가전과 똑같은 스리톱 공격 조합을 사용했다. 이동국(中), 박주영(左), 이천수(右)의 구성이 바로 그 것. 하지만 내용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이동국은 공을 빼앗길 경우 상대 수비와 적극적인 몸싸움을 하며 한국의 1차 수비 저지선 역할을 충실히 했다. 이동국은 중앙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좌우 측면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며 상대 수비도 끌고 다녔다. 이날 '죽기 살기'로 뛰며 한국의 공격을 주도했던 이천수는 감각적인 프리킥으로 박주영의 헤딩 동점골을 이끌어 냈다.
수비 가담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주영도 하프 라인을 넘어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을 지원했다. 이동국과 함께 박주영은 부지런한 위치 변환으로 상대 수비를 교란시켰다.
청소년대표 시절 중앙 공격수나 섀도우 스트라이커 역할을 주로 담당했던 박주영은 전형적인 윙포워드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다.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과감한 측면 돌파를 주무기로 하는 정경호와 박주영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박주영을 지도했던 은사들은 대부분 박주영이 원톱 뒤에 다소 처져 자유롭게 공간을 움직일 수 있는 섀도우 스트라이커를 해야 폭발력이 되살아 난다는 말을 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표팀 내에서 박주영에게 어떤 포지션이 가장 잘 어울릴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대 축구에서 전방 공격수들은 순간적으로 위치를 바꿔가며 다양한 공격을 전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리스 전에서 박주영의 플레이가 살아난 것도 중앙 공격수 이동국과의 끊임없는 위치 변화에 있었다. 포지션 배치도 중요하지만 스리톱 간의 유기적인 호흡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경기 상황에 따라 박주영이 때로는 중앙 공격수로, 때로는 측면 공격수로 변신할 수 있어야 한국 공격력은 더욱 강해진다. 오는 25일 펼쳐지는 핀란드와의 평가전에서 유심히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