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X Generation)로 일컬어지는 1990년대는 그야말로 대중음악의 황금기였다. 지난 1980 년대 후반까지 언더그라운드에서 꿈틀대던 얼터너티브와 힙합이 동시에 주류 음악 시장을 석권, 달콤한 팝과 삼류 메탈을 패퇴시켰다. 많은 음악평론가들은 음악적으로 가장 풍성했던 1960년대가 재림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평범한 소프트 록이나 스키드 로우, 모틀리 크루 등의 헤비메탈이 판을 치던 록 음악계는 너바나, 펄 잼 등 시애틀 밴드들의 등장으로 완전히 변모된 모습을 선보였다. 시애틀 밴드들의 그런지 열풍에 이어 인더스트리얼과 루츠 록, 그리고 테크노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들이 등장, 대중음악계에 모던 록(Modern rock)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영화 <청춘 스케치>는 1994년 발표된 작품으로 당시 X세대의 고뇌와 불안감, 로맨스 등을 아주 세밀하고 흥미롭게 그려냈다. 물론 1990년대 중반 절정을 이뤘던 모던 록 음악은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로 활약한다. 감독인 벤 스틸러는 대학을 졸업한 20대들이 접해야만 하는 사회현실과 히피즘의 영향을 받은 그들의 나태한 생활태도, 그리고 결손가정의 문제들을 잘난 척하지 않고 덤덤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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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스케치.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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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춘 스케치>에는 1990년대 20대들을 대표하는 다섯 명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총명한 이상주의자로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꿈꾸는 르레이나(위노나 라이더 분), 유명 의류점 갭(Gap)의 직원으로 일하며 계속 연애상대를 갈아치우는 비키(지니 가라 팔로), 인생에 대해 매우 냉소적인 허무주의 로커 트로이(에단 호크),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감추는 소심한 성격의 새미(스티브 잔), 그리고 이들과는 다르게 돈도 많고 사회적 지위도 있는 여피(yuppie, 고학력 고소득의 전문직 종사자를 말함) 마이클(벤 스틸러)이 바로 그들이다.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르레이나는 휴스턴 지역 텔레비전 방송국에 취직하지만, 프로그램 진행자와의 불화로 해고된다. 그녀는 실직의 고통과 싸우며 친구인 비키와 트로이, 그리고 새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중이다. 서로 우정과 애정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르레이나와 트로이. 두 사람 사이에 마이클이 끼어 들면서 영화는 삼각관계를 드라마의 중요한 축으로 삼는다. 첫눈에 르레이나에게 반한 마이클은 그녀의 다큐멘터리를 유선방송의 프로그램으로 채택 하려고 하고, 트로이는 이런 마이클의 행동에 코웃음을 친다. 감독 데뷔작에서 마이클 역을 맡아 연기자와 감독을 병행한 스틸러는 자칫하면 상투적일 수 있는 백인 중산층 젊은이들의 꿈과 로맨스를 꽤 짜임새 있게 구성해냈다. 영화의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그룹 월드 파티의 리더 칼 월린저가 만든 사운드트랙도 젊은 분위기로 가득차 있다. 모던 록 계열의 음악들이 주를 이루는 <청춘 스케치>의 사운드트랙은 총 14곡이다. 사운드 트랙의 문을 여는 곡은 1979년 팝 싱글 차트 정상까지 올랐던 4인조 밴드 낵(the Knack)의 'My Sharonna'이다. 'My Sharonna'와 마찬가지로 U2의 'All I Want Is You'와 스퀴즈의 'Tempted'도 이 영화 이전에 발표된 바 있는 명곡들이다. 'All I Want Is You'는 U2 다큐멘터리인
에 수록된 라이브 곡으로 차분한 느낌을 주는 사랑의 노래다. 'Tempted'는 한 때 뉴웨이브의 '레논과 매카트니'로 일컬어졌던 크리스 디포드와 글렌 틸브룩이 이끌던 스퀴즈의 1981년 앨범 수록곡으로 팝 싱글 차트 49위까지 오른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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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스케치. ⓒ프레시안무비 |
트로이 역의 에단 호크가 직접 부른 'Im Nuthin'은 허무주의에 사로잡힌 X 세대 젊은이들의 좌절감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이다. 위스키와 담배에 찌든 듯한 그의 쉰 목소리는 이렇게 외친다. "더 이상 미국의 꿈에 대한 얘기는 지겹다. 내게 더 이상 꿈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난 아무 것도 아니니까." 매력 만점의 여성 보컬이 돋보이는 줄리아나 햇필드 3의 'Spin the Bottle', 리사 로엡과 9 스토리즈의 'Stay', 뉴질랜드-호주 그룹인 크라우디드 하우스의 'Locked Out', 포이시즈의 'Going Going Gone' 강렬한 메탈 사운드로 일관하는 다이너소 어 주니어의 'Turnip Farm', 월드 파티의 'When You Come Back To Me'와 같은 대표적인 모던 록 넘버들을 만나는 것도 크나큰 즐거움일 것이다. <청춘 스케치>의 사운드트랙 수록곡들은 지난 1990년대를 대표하는 젊은이들의 음악이었다. 힙합과 댄스 팝이 판을 치는 요즘 추억의 책가방을 열고 X세대의 주옥 같은 모던 록 음악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 그 시절 젊은이들의 힘겨운 삶과 고뇌를 한 번 느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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