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0일 개막하는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은 10위권 이내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의 목표 달성 여부는 메달밭인 쇼트트랙의 성적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쇼트트랙 대표팀은 지난 몇 달 간 계속된 '따로국밥' 훈련으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비록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세계 최강의 실력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정작 올림픽에서 어떤 성적을 낼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대한빙상경기연맹(이하 빙상연맹) 기자간담회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쇼트트랙 대표팀은 현재 남자팀, 여자팀으로 나뉘어 정상적인 훈련을 받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진선유, 변천사 등 여자팀 2명의 선수들은 남자팀과 함께 훈련을 받고 있고, 남자팀의 '에이스' 안현수는 여자팀과 같이 훈련하고 있다.
왜 이런 이상야릇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가? 빙상연맹에서는 표면적으로는 남녀 간의 상호 훈련협조를 위해 이같은 결정을 했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진짜 이유는 쇼트트랙계에서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파벌 간의 갈등에 있다.
오랫동안 쇼트트랙계는 한국체육대학 출신과 비(非)한체대 출신으로 양분돼 왔고, 자연스레 선수들도 이런 분위기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것. 여기에다 일부 선수들이 "더는 같이 운동을 못하겠다"며 대표팀 코치들에게 직접적인 불만을 표출했고,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빙상연맹은 '따로국밥 훈련'을 허락해야 했다. 2년 전 선수 구타 파문 때부터 지난해 선수들의 입촌 거부 사건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우선 덮고 보자'는 빙상연맹의 미온적인 태도가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남자팀의 송재근 코치는 현재 남자 선수 4명과 여자 선수 2명을 지도하고 있고, 여자팀의 박세우 코치는 여자 선수 3명과 남자 선수 1명을 지도하고 있다. 이 두 팀이 같이 훈련하는 시간은 고작 1주일에 단 한 번이며 그나마도 1시간뿐이다. 팀 플레이가 생명인 쇼트트랙에서는 치명적인 부분이다.
여자 선수 일부가 남자팀 코치에게 지도를 받고, 남자 선수 1명이 여자팀 코치에게 지도를 받는 상황이라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만약 한국 여자 선수끼리 격돌하면 서로 다른 코치에게 작전 지시를 받아야 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피할 수 없다.
올림픽에 출전할 선수 엔트리를 정하는 것은 남녀 대표팀 코치가 권한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남자팀에서 훈련받는 여자 선수나 여자팀에서 훈련 중인 남자 선수는 자신이 '홀대'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점도 문제다. 팀을 옮겨 훈련받는 안현수나 진선유 같은 경우는 한국 남녀 쇼트트랙의 부동의 에이스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상황에 따라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3차 월드컵 때 박세우 코치에게 승부조작에 관한 지시를 받고 불안한 상황에서 레이스를 펼쳤지만 정작 사전에 약속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게 계기가 돼 남자 팀으로의 이전을 요구한 변천사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기록이 아닌 등위에 따라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쇼트트랙은 코치의 작전과 선수의 임기응변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어느 순간 앞으로 치고 나갈 것인지, 상대 선수를 어떤 방식으로 견제해야 할 것인지 정확한 판단을 해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월드컵에서 아웃 코스로 빠지며 추월을 잘 하지 못하는 아폴로 안톤 오노의 약점을 이용해 한국이 톡톡히 재미를 본 것도 모두 작전의 승리였다.
하지만 일부 선수들의 코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코치의 작전 지시도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또한 따로 훈련을 받고 있는 한국 선수들 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은 좋게만 작용할 수 없다. 올림픽에서 외국 선수와의 경쟁보다 나와 입장을 달리하는 다른 한국 선수에게 더 신경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쇼트트랙이 5000미터 계주에서 지금까지 보여줬던 짜임새 있는 팀 플레이도 정작 토리노 올림픽 무대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의문이다. 계주에서는 병역혜택 등 여러 혜택을 고루 나눠주기 위해 개인전에 출전하지 못했던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서구 선수들에 비해 끈끈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한국 선수들은 계주에서 강점을 보여 왔지만 이번 만큼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빙상연맹은 하루 빨리 쇼트트랙 대표팀을 정상화시키고 토리노 현지 훈련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토리노까지 가서도 따로 훈련을 하게 된다면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 한국 쇼트트랙은 역대 올림픽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험대에 올라 있다. 캐나다, 미국, 중국 등의 거센 도전도 이겨내야 하지만 대표팀의 관리 소홀로 인한 부메랑도 슬기롭게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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