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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력화'의 허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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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제3세력화'의 허구성

생존 위한 일시 제휴, 1차 목표 '노무현 흔들기'

정치현상을 분석할 때 주의해야 할 두 가지 역설의 법칙이 있다.

첫째 정치인의 정치행위는 "뭔가를 이루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기 쉽다. 하지만 사실 "그저 죽지 않고 살기 위해" 하는 정치행동이 더 많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결국 뭔가를 이룰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말이 그 말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정치인의 행동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는 정확히 짚어내야 한다.

사실상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 뿐인데도, 정치인들은 마치 대단한 것을 이루기 위한 것처럼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이때 언론은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을 마치 앵무새처럼 되풀이 소개해 주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주의해야 할 대목이다.

둘째 역설의 법칙은 정치인의 행동과 민심의 소재 사이의 관계이다.
정치인들이 새롭게 깃발을 들고 자신의 주장을 펴면서 국민을 자기편으로 설득해 가는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깃발을 들고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슬그머니 깃발을 드는 것이다. 선거에서 표를 먹고 사는 대중정치인들은 절대 대중과 유리된 자기만의 주장을 내놓지 않는다. 대중이 원하는 지점을 미리 간파해서 그 지점에 적합한 주장을 내놓고 지지를 끌어모으는 것이 정치인들의 기본생리다.

이 두 가지 역설의 법칙을 이용해서 최근 주목할 만한 정치현상 하나를 분석해 보자. 분석대상은 최근 민주당 안팎에서 거론되는 이른바 '반(反)노무현 전선 형성 조짐'이다.

***권력분점 통한 제3세력 형성?**

이인제 의원과 김중권 전 고문이 지난 주 금요일 골프를 쳤다. 이 의원은 곧 이한동 전 총리도 만날 예정이라 한다. 이밖에 정몽준 박근혜 의원도 이 대목에 자주 등장한다. 김종필 총재도 있다.

다들 어떻게 하겠다는 딱부러진 얘기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이번 대선에 어떻게든 한 자락 끼고 싶어 한다. 이미 확고한 위치를 장악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밑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 손을 들어줄 생각도 전혀 없다. 권력구조 변화, 개헌 얘기를 많이 꺼낸다.

그래서 이들을 묶어 언론지상에는 '반(反)이회창 비(非)노무현 연합전선' 혹은 '반(反)노무현 연대'라는 식으로 소개된다. 연대의 고리는 개헌이 될 것이란 예측이다. '권력분점'을 매개로 한 '제3세력'이란 얘기다.

이들이 정말 제3세력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까? 권력분점이란 각자의 평소 정치적 소신을 관철시키기 위해 단합하고 있을까? 답은 '아니다'이다.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혼자 치고 나갈 수도 없는ㆍㆍㆍ**

이들이 움직이는 기본동력은 우선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이인제 의원. 신한국당 경선 불복에 이어 이번엔 경선 중도포기다. 그것도 지난 3-4년간 부동의 대선후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갑자기 '노풍'에 밀렸다. 뭔가 일을 저지르고 싶은데 할 일은 없다.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노 후보 지지도 하락, 민주당 6.13 선거 참패, 서해교전이 터지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 움직이면 잊혀지기 때문이다.

김중권 전 고문. 대중의 호응은 크지 않았지만 이른바 '영남후보론'을 맨 처음 편 장본인이다. 그러다 다른 영남후보에게 완전히 밀렸다. 게다가 재보선에라도 나가볼까 했는데 노무현 후보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축출당한 셈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이한동 전 총리. 20여년 양지인생을 살았고, 최근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사이를 넘나드는 현란한 정치곡예 실력을 보여 줬다. 하지만 이젠 외톨이가 됐다. 어디로든 또 가야 한다. 아직 선뜻 움직일 만큼 자신을 대접해 주는 곳이 없다. 몸값을 올려야 한다.

정몽준 의원. 현대의 후광으로 벌써 4선 의원이 됐고, 월드컵 성공으로 몸값이 치솟았다. 하지만 선친의 경험상 혼자 치고 나가서는 승리의 자신이 없다. 아니 그랬다간 한번에 추락해 버릴 위험이 크다. 패배할 경우 뒷탈도 무섭다. 그렇다고 한참 주가가 오른 지금의 상황을 허송해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치고 나가기도 어렵다. 그래서 정중동(靜中動)이다.

박근혜 의원. 이회창 후보를 상대로 '탈당'이란 정면승부를 걸 때만 해도 상황이 좋았다. 하지만 '한국미래연합'을 만들어 보니 일이 뜻 같지 않다. 점점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도 줄어든다.

김종필 총재. 민주노동당에게도 졌다. 재보선에 내세울 사람도 없다. 뭔가 하지 않으면 그나마 몇 남지 않은 의원들 뿔뿔이 흩어질 판이다.

사정이 이렇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자주 움직이고 만난다. 동병상련이고, 지푸라기 잡기다. 가만히 있으면 죽겠고, 그렇다고 혼자 뭘 할 수도 없는 사람들. 이들이 살기 위해 부지런히 다니는 것이다.

영원히 함께 할 동지들? 물론 아니다. 상황이 조금만 달라지면 살 길 찾아 떠날 사람들이다. 아직은 이중 한명도 좋은 길이 안 보이기 때문에 한데 얽혀있을 뿐이다.

이들이 공히 권력분점을 들고 나오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혼자서 다 장악할 수 없기 때문에, 함께 모이려면 공통분모는 '나눠먹기' 밖에 없기 때문이다.

***反이회창 非노무현 민심에 호소**

그렇다면 왜 이들이 '反昌非盧'인가? 왜 '反盧연대'인가? 답은 간단하다. 지금 현재 '反昌非盧'의 지점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노무현 후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찍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 그렇다고 노무현 후보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노풍'이 거셀 때는 크게 줄어들었다가 요사이 다시 늘었다. 여기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것만으론 불충분하다. 이회창-노무현 구도가 확고부동하다면 이들의 움직임은 주목받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 둘 중 한 곳 노무현 쪽이 흔들린다.

6.13 선거 참패에 이어 8.8 재보선 전망도 밝지 않은 민주당, 그리고 회복 조짐이 아직은 뚜렷하지 않은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 그래서 "이렇게 가다간 이회창 대통령 당선 확정적"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시점, 이 때를 노리는 것이다.

이인제 의원 김중권 전 고문이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까닭도 이것이다. 이한동 전 총리가 총리 퇴임사에서 곧바로 자신의 '꿈'을 들먹이며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 이유도 똑같다.

정몽준 의원도 월드컵 뒷마무리에 바쁘다면서 거의 매일 정치행보를 한다. 박근혜 의원, 김종필 총재는 언론이 자신들을 주목해 주지 않는 데 불만일 것이다.

***'노무현 흔들기' 성공할까?**

따라서 '권력분점을 매개로 한 제3세력 형성'은 이들의 목표가 아니다. 연합과 연대 역시 이들의 최종 목적이 아니다.

현재 이들의 공통 목표는 '살아남기' '몸값 키우기'이며, '이회창-노무현 구도 흔들기' 직접적으론 '노무현 흔들기'다. 이 당장의 목표를 위해 일시적인 제휴 몸짓을 보이는 것이다.

권력분점과 개헌론은 이들이 내세운 명분일 뿐이다. 1등은 없이 함께 2등을 하자는 이해타산의 산물일 뿐이다. 또한 지금은 이회창 노무현 밑에 숨죽이고 있지만 내각제를 통해 국회의원의 권력이 커지는 데 결코 반대할 이유가 없는 많은 현역 의원들에게 던지는 추파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의 행보가 향후 어떤 모습으로 귀결될 것인지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부질없는 시도다.

다만 하나 분명한 것은 이들 전부가 마지막까지 함께 하면서 제3세력으로 자리잡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상황변화에 따라 이들중 몇몇은 이회창 혹은 노무현 쪽으로 갈 수도 있다. 독자세력화를 추진하다가 대선에 임박해서 막바지에 누군가의 손을 들어주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일시적 동거, 이것이 '反昌非盧' 혹은 '反盧 연대'의 실상이다. 이들을 '제3세력'이라 부르는 것 역시 언론의 일시적 편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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