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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강력한 버티기, 7.11 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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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청와대의 강력한 버티기, 7.11 개각

"한발 물러서라" 요구 외면, 국정혼미 우려

'정도(正道)'와 '꼼수', 하늘과 땅의 차이다. 국어사전엔 '꼼수'를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이라고 풀어 놨다. 풀어 놓으니 왠지 맛이 없다. '꼼수'는 그냥 '꼼수'다.

정권이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항상 정도를 걸으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정치행위엔 어느 정도 꼼수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1일 단행된 DJ 정부의 마지막(?) 개각은 그야말로 꼼수 일변도다. 말을 돌리지 말고 곧바로 왜 꼼수로 일관한 개각인지 살펴보자.

***홍업씨 수사 발표를 덮으려는 개각 발표시기 조정**

첫째 개각이 발표된 시기가 '꼼수'다.
10일 검찰은 대통령 차남 홍업씨 비리 수사를 마무리하고 구속기소했다. 그간 거론되어 온 대가성 자금수수 외에 현대, 삼성 등 재벌 돈 받은 사실, 국정원장의 용돈 받은 사실, 대선잔여금 관리 사실 등이 새롭게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11일 조간신문이 '홍업씨 재벌 돈 받아'로 온통 도배한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 조간신문을 채 다 읽기도 전인 아침 9시 30분 개각이 발표됐다.

당장 이날 석간부터 머리기사 자리가 개각으로 바뀌었다. 이게 아니었으면 '한나라당 수사미흡 질타' '특검제, TV 청문회 요구' '임동원, 신건 사퇴 촉구' 혹은 '검찰, 재벌 돈 대가성 수사 계속' 등이 머리기사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신문 머리기사를 하루라도 바꿔 보기 위한 개각 발표시기 조정, 이게 바로 '꼼수'의 전형이다.

***허공에 뜬 얼굴마담, '헌정 최초 여성총리'**

둘째 여성총리 임명이 '꼼수'다.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총리 임명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진작 이런 일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시기다. 지금은 대통령 선거를 5개월 앞둔 임기말이다.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변화를 도모할 때가 아니다. 아무 탈 없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시기다.

여기서 충돌이 발생한다. '헌정 사상 최초 여성총리'라는 파격성과 '임기말 철저한 마무리'라는 시대적 요구가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여성이라고 해서 관리를 못 한다는 것도 아니고, 특히 장상 총리서리가 적임자가 아니라는 뜻도 결코 아니다. 하지만 '헌정 사상 최초 여성총리'가 진정 의미를 가지려면 '최초 여성총리'라는 기록을 세웠다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국정의 틀을 뭔가 조금이라도 바꾸어 내는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여성'이 총리가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남성총리 시대와 달라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내지 차별의식에서 이런 주장을 펴는 게 아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똑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시기가 언제든 여성총리는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엔 '최초'다. 그것도 이번 한번 하고 말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는 시작의 의미로서의 '최초'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여성총리가 '여성'의 관점과 능력으로 국정의 틀을 어떻게 바꾸려 시도했다는 증거들을 축적시켜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총리가 새롭게 뭔가를 시도해 볼 때가 아닌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총리 임명은 '꼼수'다. 누구를 세워도 야당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고, 민심의 지지도 모으기 어려운 상황에서 '깜짝쇼'의 방법론으로 선택된 것이 '헌정사상 최초 여성총리'인 것이다.

청와대 부실장으로 불리던 김진표 정책기획수석을 국무조정실장에 임명한 것을 보아도 청와대의 저의가 분명히 드러난다. 국무조정실장은 총리의 영을 받아 행정 각 부처의 행정업무를 총괄조정하는 자리다. 결국 청와대가 총리실을 직할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최초 여성총리'는 그저 공중에 뜬 '얼굴마담'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지금껏 남성총리에게도 '얼굴마담'이란 칭호를 자주 붙여 온 바 있지만, 이번 경우 진짜 '마담'이 '얼굴마담' 노릇 하게 됐다는 점만이 차이일까.

사정이 이러하기에 진정 여성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여성총리 임명에 분개해야 옳다. 그런데도 속없는 여성계는 환영 논평 일색이다. 하긴 이 나라는 이렇게라도 해야 여성총리를 탄생시켜 볼 수 있는 나라라는 자포자기성 상황인식이 바탕에 깔린 논평일는지도 모르겠다.

***개각 여론 핑계 삼아 묵혀 놓은 장관 교체사유 해결**

셋째 이번 개각은 청와대의 '고충처리'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꼼수'다.
지난 4일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중립내각 구성 촉구 기자회견이 아니더라도 개각에 대한 요구는 많았다. 한나라당도 일찍부터 중립내각을 촉구해 왔고, 대통령 아들이 2명씩이나 구속되는 마당에 임기말을 위해 뭔가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확산돼 왔다.

게다가 월드컵도 끝났고, 제3기 지방자치도 시작됐고, 16대 하반기 원구성도 마무리되었다. 여전히 만만치 않게 남아 있는 대통령의 임기 동안 나라를 제대로 꾸려가야 한다는 차원에서 개각의 시점이 온 것이다.

그런데 정작 개각 내용은 청와대의 '고충처리'에 그쳤다.

이한동 총리는 민주당 일각에서 노 후보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일단 여의도로 복귀, 운신의 폭을 넓혀 놓아야 할 시점이다.

남궁진 전 문화관광장관은 재보선 출마를 위해 스스로 사퇴했다.
김동신 전 국방장관은 서해교전에 따른 논란 때문에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송정호 전 법무장관 역시 대통령 두 아들 구속과 이 과정에서의 압력의혹설 등으로 경질대상이었다.
양승택 전 정보통신부장관은 SK의 KT 지분 확보와 관련 대통령의 회수지시를 이행 못해 재계의 레임덕 현상을 확인시킨 장본인으로 꼽힌다.
이태복 전 복지부장관은 그 스스로의 주장에 의하면 제약업계의 강력한 경질로비를 받았다 한다.

신임 해양수산부장관에 김호식 전 국무조정실장을 임명한 것은 김진표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국무조정실장으로 보내려니 자리를 만들어 줘야 할 필요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게 전부다.

개각이 있어야 한다는 시기적 공감대와 정치권의 기대를 구실삼아 청와대가 그간 묵혀 놓았던 장관 교체 사유들을 일거에 해결한 것이다. 이게 '고충처리'가 아니고 무엇일까.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란 표현도 적절하겠다.

***마지막까지 청와대가 직접 관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

바뀐 내각진용을 보면 청와대 출신이 4명 포진해 있다. 전윤철 경제부총리 이상주 교육부총리 모두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이다. 총리를 대신해 행정부처를 통할할 김진표 국무조정실장은 정책기획수석 출신이다. 문광부 장관에 김성재 전 정책기획수석이 있다.

법무장관은 꼼꼼하기로 소문난 호남(전남 신안) 출신 김정길 전 법무장관을 1년 2개월 만에 재기용했다. '이명재 검찰호'를 만들어 두고 청와대가 얼마나 땅을 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간 야당의 지속적인 경질 요구를 받아온 박지원 비서실장, 신건 국정원장, 임동원 특보는 모두 유임시켰다. 뒤의 두 사람은 홍업씨에게 용돈을 준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다.

선거와 직결된 행정자치부 장관은 노무현 후보가 바꿔야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임시켰다.

대충 이 정도면 새 내각이 어떻게 움직일지 짐작이 간다. 모든 것을 청와대가 직접하겠다, 청와대의 의지대로, 그것도 강력히 관철시켜 나가겠다는 뜻이 새 내각진용에 그대로 드러난다.

몇 달 안 남은 대선, 그것도 대통령 두 아들을 감옥에 가둔 상태에서 국정을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은 청와대가 이제 한걸음 뒤로 물러서 줄 것을 기대했다. 조용히 정리할 건 정리하는 기간으로 보내길 바랐다.

그런데 청와대의 응답은 정반대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버텨 보겠다는 강력한 응대였다.

당장 정치권의 반응이 싸늘하다. 한나라당이 맹비난하고 나섰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도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정국의 앞날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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