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정하는 걸작인 〈토지〉에 대해 "문제가 많다"고 도전하고 나선 이가 있다. 20여 년간 출판사에서 사전 편찬 일을 하다가 퇴직한 정재관(79)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토지〉는 21권이나 되는 대작이며, 주인공 '서희'를 중심으로 대한제국 말기 경남 하동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만주 땅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시간적, 공간적으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말 그대로 대하소설. 이 소설은 TV에서도 세 차례나 연속극으로 방영된 적이 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리라고 욕심 냈던 작품이며, 지금도 각종 시험에서 언어영역 지문으로 자주 등장하는 책이다.
그런데 정재관 씨는 최근 한국교열기자협회에서 발간하는 〈말과 글〉 제104호에 〈토지〉의 문제점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토지〉를 읽어보니 일본어 관용어의 무분별한 사용, 일본어의 잘못된 번역, 정확하지 않은 우리말 문장 등 표현상의 문제점이 너무도 많다고 지적했다.
1929년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일본어로 교육을 받았다는 정재관 씨는 국민학교 교사를 10여 년 간 하다가 서울에 올라와 최근까지 출판사에서 일해 왔다. 그는 출판사에서 주로 국어사전이나 일한사전 등 사전 편찬업무를 맡아 했으며, 2~3년 전부터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여생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기자와 만난 그는 "은퇴하고 나서야 뒤늦게 〈토지〉를 읽어보게 됐는데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국민적인 존경을 받고 있는 작가가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이 진행되고 있을 만큼 훌륭한 작품을 썼는데, 그 작품 속에 우리말 문장이 잘못 된 부분이 너무 많아서였다는 것이다.
그는 "저자 박경리 씨가 1926년 출생으로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아 일본어 표현에 익숙할 것임은 나도 이해한다"면서도 "문학적 성과면에서도 대작으로 칭송받는 작품이 출간된 지 20여 년이 지나도록 잘못된 표현들이 아직도 수정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만큼'이 과연 무슨 뜻일까?**
정 씨가 일본어 관용어를 그대로 번역해 사용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가장 먼저 문제 삼았다. 우리말 표현에는 없는 일본어 관용어를 직역해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정 씨는 "몇몇 표현은 문맥상으로 이해되는 것도 있긴 하지만, 엄연한 우리말을 두고 왜 일본어 관용어를 사용해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면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만큼'과 같은 표현을 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어 관용어인 'のど(喉)から て(手)が で(出)る'를 직역한 말이다. 이는 '음식을 떠서 입에 넣어 주는 것을 기다리지 못할 만큼 몹시 탐이 남'을 이르는 말인데, 일본어를 잘 모르는 사람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고 정 씨는 지적했다. 이 표현이 〈토지〉에는 여러 차례 등장한다.
정 씨는 "박경리 씨가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은 사람인만큼 이런 표현들이 스스로에게 익숙하리라는 점은 이해된다"며 "그러나 수많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에서 우리말을 두고 굳이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어 관용어 표현을 직역하여 사용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아예 일본어를 한자 그대로 소리 나는 대로 읽어 사용한 예들도 많다. 우리말로 충분히 쓸 수 있는데도 일본어 단어를 사용한 부분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하소설인 〈토지〉에 치명적인 오점이라고 정 씨는 비판했다.
이런 예로 정 씨는 '오복점(吳服店)'과 같은 표현을 들었다. 6권의 117페이지(나남출판사, 2003년판 기준, 이하 같음)에 "일본인 상점이 눈에 띈다. 잡화상이 있고 담뱃가게가 있다. 식료품에 의류를 진열한 오복점(吳服店)이 있다. 이발소가 있고 목욕탕 간판도 보인다"는 문장이 있다.
이에 대해 정재관 씨는 "포목점, 옷감가게와 같은 표현을 두고 굳이 오복점이라고 한 이유를 모르겠다. 시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면 담뱃가게는 '연초옥(煙草屋)', 이발소는 '상옥(床屋)' 등으로 모두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어 번역도 매끄럽지 못하다"**
〈토지〉에는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한 부분도 많다. 시대적 배경 때문에 등장인물 중 일본인이 많고, 조선인이 일본어를 사용하는 부분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어를 소리나는 대로 옮겨 놓았거나, 괄호 안에 해석해 놓은 우리말이 엉뚱한 경우가 많다. 매끄럽게 번역되지 못한 까닭이다.
14권 258페이지에 나오는 '소로소로 쇼바이다나'는 밤업소에 나가기 위해 공중목욕탕에 다녀오는 일본인 기생에게 지나던 경찰관이 건넨 인사말이다. 이것이 〈토지〉에서는 "서서히 장사로구나"로 번역돼 있다. 정 씨는 "이 번역은 무슨 말인지 알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럭저럭 일 나갈 시간인 모양이군"이 더 매끄러운 번역이 아니냐는 것이다.
또 8권 185페이지의 '아사유우와 히에마스네'는 '아침저녁은 차갑다'고 번역돼 있다. 정 씨는 "이 말은 계절인사 말이니 '아침저녁이 선선해졌군요' 정도로 번역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정 씨는 "우리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인데 굳이 일본어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시대를 잘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괄호 안의 번역이라도 이해하기 쉽게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잘못된 우리말도 많다"**
그런가 하면 〈토지〉에서 사용된 우리말 중에서도 잘못된 표현이나 문장들이 꽤 많이 눈에 띄었다고 정 씨는 말했다. '새벽 산사에서 울리는 장엄한 인경소리'에서 '인경소리'는 도성에서 야간 통행금지를 알리던 소리를 가리키는 말인데, 산사(山寺)에서 인경소리가 울린다고 한다면 이는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이다.
또한 9권 287페이지의 '"홍이 너 교회 일 좀 보겠나?" "싫소." 간단없이 돌아온 대답이다.'에서 '간단(間斷)없이'는 '끊임없이'와 같은 말이라고 지적했다. 이 경우 '간단없이'보다는 '지체없이' 또는 '즉각'이 바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정 씨는 순전한 교정의 오류도 상당수 지적했다. 일본어 한자 병기에서의 오류뿐 아니라 우리말을 한자로 병기하는 데서도 오자가 많이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오자는 출판사의 교정 오류일 수 있지만, 〈토지〉가 세계적인 작품인 만큼 작은 오류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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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영향력 알기에 더욱 문제제기 필요성 느껴**
〈프레시안〉은 정재관 씨를 지난 13일 직접 만나 〈토지〉의 잘못된 표현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게 된 계기 등에 관해 들어보았다.
〈프레시안〉: 우리말 표현에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는지?
정재관: 내가 1926년생인데, 일제시대 중앙중학교에 다니던 중에 해방을 맞았고, 가족과 함께 시골에 내려가 국민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워서 안동사범학교에 본과 3학년으로 편입하여 학업을 마치고 교사 생활을 하던 중, 친구의 소개로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때 만들었던 책이 중고등학교 국어 참고서 〈완전정복〉이었는데, 국어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사전도 만들게 되고, 20여 년 동안 사전 편찬 일을 해 왔다. 그래서 사전 편찬 작업을 하면서 국어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프레시안〉: 〈토지〉는 유명한 작품인데 그 동안에는 읽어보지 않았나?
정재관: 출판사 일이 너무 바빴다. 더구나 〈토지〉는 21권이나 되는 장편이라서 섣불리 읽어보겠다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 처음 출판사에 들어갔을 때 매일 야근, 일요일에는 특근까지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장편소설을 읽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한 2년 전쯤 완전히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지내면서 아들이 그 책을 가지고 있다기에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프레시안〉 : 처음부터 이 작품의 표현상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읽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정재관: 처음에는 21권을 다 보려고 시작했던 것도 아니었다. 아들에게 심심하니 한번 읽어볼 겸 서너 권 가져다 놓으라고 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중간에 자꾸 걸리는 것들이 생겼다. 이렇게 유명한 작품이 표현상 문제가 많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일단 오탈자가 너무 많고, 일본말이 많이 섞여 나오는데 잘못된 일본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개 정도의 실수이겠거니 했는데, 한두 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 때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소설이 재미있어서 끝까지 다 읽은 게 아니라 잘못된 표현을 찾기 위해 끝까지 다 읽은 셈이 돼버렸다.
〈프레시안〉: 표현상의 오류나 오탈자의 경우 출판사의 잘못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정재관 : 21권을 다 읽고 잘못된 표현을 정리한 후 출판사에 직접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 고쳤다고만 대답하더라. 한자 오탈자의 경우 출판사에서 실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역시 자기 이름으로 나간 책의 최종 책임은 작가의 몫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언론 보도를 보니 박경리 씨가 '원고가 자기 손을 떠난 이후 한번도 다시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 한 작품의 성과를 최대한으로 고양시킨다는 측면에서 그 표현수단으로서의 문장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문제점을 지적해 본 것이다.
〈프레시안〉 : 작가가 일제시대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서 그런 표현들이 많이 나온 것 같다.
정재관 : 나도 이해한다. 박경리 씨도 나와 비슷한 교육을 받았을 것 같다. 당시 학교에선 조선 선생님도 일본어를 사용해야 했고, 모든 책들이 다 일본어로 쓰여 있었다. 무의식 속에 일본어가 자리 잡아 작품을 쓰는 중에 충분히 튀어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대작가이기에 그런 문제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본다. 〈토지〉를 읽는 사람들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프레시안〉 :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계속할 예정인가.
정재관 : 글쎄. 문학작품은 흥이 나서 읽어야지 문제점을 찾아가며 읽으면 흥이 안 나더라. 이번 것도 굳이 하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굳이 찾아서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책들을 읽다가 눈에 띠면 모르겠지만 구체적으로 그런 작업을 할 계획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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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정재관 씨가 〈토지〉에서 발견해낸 문제 있는 표현들과 이에 대한 정 씨의 논평이다. 한국교열기자협회에서 발간한 〈말과 글〉 104호(2005 가을호)에도 실린 적이 있다. 일부 논평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을 수 있지만, 정 씨의 지적과 논평을 그대로 소개한다. 권수와 페이지는 나남출판사 2003년판 기준이다(예를 들어 '2권 45페이지'는 '〈2-45〉'로 표기).
(1) 일본어 또는 일본어의 관용어의 예
△ '나는 죄의 연대자가 아니로소이다.''다만 구경을 했을 뿐이외다.' 시원한 얼굴로 중얼거릴지 모를 일이다. 〈1-186〉
⇒ 밑줄 친 '시원한 얼굴로'란 무슨 뜻일까? '시치미를 떼고'라고 읽어낸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적지 않은 사람이 모호하게 지나쳤을 것이다. 일본어의 'すず(凉)しい かお(顔)'(시원한 얼굴)가 바로 '모르는 체 시치미를 떼는 얼굴'을 나타내는 관용어이다.
△ 하나는 환(幻)과 같이 적막한 평화, 하나는 고뇌에 몸을 떨어야 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1-295〉
⇒ 한문 세대는 '환(幻)'에서 '환상(幻像)'이나 '환영(幻影)'이란 말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환(幻)'이라고 단독으로 쓰이는 일이 거의 없다. 역시 환상, 환영, 덧없는 것, 허깨비 등의 뜻을 나타내는 일본어 'まぼろし(幻)'에서 그 연유를 찾아야 할 것 같다.
△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만큼 의병의 수효가 탐이 나는 마당에서 유생출신 의병장 열 사람 몫은 넉넉할 인물을 개죽음을 시켰다는 것은 〈1-318〉,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만큼 부러웠을 거야. 〈11-262〉
⇒ 문맥으로 보아 뜻을 짐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음식을 떠서 입에 넣어 주는 것을 기다리지 못할 만큼 몹시 탐이 남을 이르는 말이데, 이건 우리말이 아니다. 'のど(喉)から て(手)が で(出)る'라는 관용어를 직역한 말이다.
△ 제 한 일은 선반 위에 올려놓고 멀찍이 서 있는 길상이까지 몰아서 ~ 호통치는 꼴이 가관은 가관이다. 〈5-174〉
⇒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거론하지 않음'을 뜻하는 'たな(棚)に あ(上)げる'를 그대로 번역한 말이다.
△ 등나무에는 크고 퉁겁고 윤이 흐르는 곰벌[熊蜂]만 찾아왔었다. 〈6-20〉
⇒ '어리호박벌'이란 우리말을 두고도 'くまばち(熊蜂)'를 그대로 번역하여 '곰벌'이라고 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괄호 안에 일본어의 한자 표기까지도 적었다. 누구를 위한 한자 표기인지.
△ 서희하고 혼인하겠다 할까. 거짓말도 방편이라 했어. 〈6-108〉
⇒ 방편을 위해서는 때로는 거짓말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으로, 일본어에서 속담처럼 쓰고 있는 말이 'うそ(噓)も ほうべん(方便)'이란 관용어이다.
△ 일본인 상점이 눈에 띈다. 잡화상이 있고 담뱃가게가 있다. 식료품에 의류를 진열한 오복점(吳服店)이 있다. 이발소가 있고 목욕탕 간판도 보인다. 〈6-117〉
⇒ 이런 식의 문장이 하도 많기 때문에 일일이 거론할 수 없고, 대표적인 사례로 이 문장만 예시했다. 포목점, 아니면 주단 포목점, 그것도 아니면 옷감가게라고 하면 될 텐데, 굳이 '오복점'이라는 독자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일본식 용어를 썼을까. 그때의 시대상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면, 담뱃가게는 '연초옥(煙草屋)'이라야 하고, 이발소는 '상옥(床屋)'이어야 하며, 목욕탕은 '풍려옥(風呂屋)'나 '전탕(錢湯)'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글이 뒤죽박죽이 되어 일일이 주석이라도 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 천황폐하가 내리는 작위와 은사, 그 영광에 목욕(沐浴)할 처지가 못되었던 피라미 친일파 조준구 〈7-369〉
⇒ '영광에 목욕하다' 글쎄, 뜻을 대강 짐작은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긴가민가한 느낌일 것이다. (영광을) '입는다' 뜻의 일본어 'よく(浴)する'를 그 일차적인 뜻으로만 번역해 쓴 결과이다.
△ 십 년을 넘게 돌리고 돌린 물레[糸車], 내가 왜 이런 비감한 마음을 가질꼬? 〈8-14〉
⇒ '물레'라고 하면 그만인데, 거기에 굳이 '糸車'라는 한자를 병기하다니. '糸車'가 무엇인가. 바로 물레를 뜻하는 'いとぐるま(糸車)'의 한자 표기이니, 일본인 독자를 위한 배려라면 또 모를까.
△ 걸맞지도 않는 위협적인 몸짓까지 흉내를 내는데, 모르는 것이 부처님이라고 한복에게 그것이 통할 리가 없다. 〈9-390〉
⇒ 누군가가 한복이를 위협하려 하지만, 한복이는 그런 속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부처님처럼 평온한 심경으로 있음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내용을 알면 화도 나고 겁도 나겠지만, 모르기 때문에 천하태평임을 나타내는 일어의 관용어가 'し(知)らぬが ほとけ(佛)', 곧 '모르는 것이 부처님'이다.
△ "이제 나는 손을 떼겠어요. 형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말해 뭣하나. 두 번 하면 잔소리야. 이제부턴 대가리 처박지 말어." 〈9-399〉
⇒ '대가리를 처박다'가 무슨 말일까? 누구와 한통속이 되거나, 어떤 일에 관계한다는 뜻으로 '대가리를 처박다'로 쓸 수 있을까? 바로 이런 뜻으로 쓰이는 일어의 관용어가 'あたま(頭)を つ(突)っこむ', 곧 '머리를 들이밀다'이다. '머리'를 '대가리'로, '들이밀다'를 '처박다'로, 말하는 이의 사람됨에 어울리게 속된 말로 나타낸것뿐이다.
△ 스즈키 그놈아이가 귀여워하는 것은 무리가 아냐. 주머니칼처럼 생광스럽게 쓰여질 테니. 하여 네놈이 배짱을 두둑히 내미는 모양인데. 〈9-400,401〉
⇒ 주머니칼은 물론 여러 모로 편리하게 쓰이는 물건이다. 연필도 깎고, 종이도 자르며, 과일을 깎을 때도 요긴하게 쓰인다. 그러나 이 글에 쓰인 '주머니칼'은 그런 다용도로 쓰이는 편리성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주머니칼'을 뜻하는 일본어 'ふところがたな(懷刀)'의 원래의 뜻은 '몸에 품고 다니는 호신용(護身用)의 비수'이고, 두 번째 뜻은 '은밀한 계획에 참여하는 머리 좋은 사람', 곧 '심복(心腹)'이나 '끄나풀'과 비슷한 말이다. 이 글의 '주머니칼'은 과연 어느 뜻으로 쓰였을까?
△ 오빠가 기름을 짠 모양이군. 당연한 얘기지. 〈10-16〉 허허 참, 하여간 오늘 가서 기름을 좀 짜놓자구. 〈10-382〉
⇒ '기름을 짜다'의 뜻은. ① '많은 사람이 한데 몰려서 부대끼다' ② '착취하다'이다. 그런데 '기름을 짜다'의 일본어인 'あぶら(油)を しぼ(絞る)'는 '몹시 닦달하다' 또는 '혼내주다'라는 뜻의 관용어이다. 저자는 과연 어떤 뜻으로 썼겠는가?
△ 기껏해야 역관의 딸인데 높이 좌정할 것 뭐 있나, 어느 모로 보나 내가 과분한 상대라는 것을 알아차려야지, 〈10-34〉
⇒ '높이 좌정(坐定)하다'는 '높은 곳에 앉아서 내려다보다', 곧 '잘난체하다' '도도히 굴다'의 뜻일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에겐 낯선 이런 표현을 썼을까? 일본어에 그런 표현이 있다는 것을 알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될 것이다. 'たか(高)く とま(止) る'가 곧 '높이 앉다'인데, '앉다'를 점잖게 '좌정하다'라고 바꿔 쓴 것뿐이다.
△ 신문에서 눈을 떼고 하던 말을 마셔버린다. 〈12-29〉
⇒ '말을 마시다' 또는 '말을 삼키다'란 말을 요즘 더러 들을 수 있다. 물론 '말을 하려다가 그만둠'의 뜻이겠지만 우리말은 아닌 것 같다. 일본어 'ことば(言葉)をの(呑)む'에서 온 것이 분명한 것 같다.
△ 야채장사까지 하여 가난을 타개했던 기장한 신씨 부인이 〈12-143〉
⇒ '기장하다'의 '기장(氣丈)'은 한자어지만, '마음가짐이 꿋꿋하고 당참', 곧 '어기참'을 나타내는 'きじょう(氣丈)'라는 일본식 한자어이다. '꿋꿋한 신씨 부인이' 또는 '어기찬 신씨 부인이'와 똑같은 말이다.
△ 밀고 들어갔지. 일본이 손가락 물고 구경하고 있을 성싶소? 〈12-224〉
⇒ 문맥으로 보아 뜻은 어느 정도 짐작이 될 것이다. 'ゆび(指)を くわえる'(손가락을 입에 물다)가, 몹시 갖고 싶지만 손을 내밀지 못하고 헛되이 바라보고만 있음을 나타내는 일본의 관용어이다.
△ 우가는 영악하기가 발톱을 감춘 산고양이 같았다. 〈13-74〉
⇒ '영악하기가 발톱을 감춘'으로 보아 집고양이가 야생화하여 들이나 산에 사는 고양이가 아니고 살쾡이를 뜻하는 것 같은데, 살쾡이와 같은 종류의 동물이 일본의'やまねこ(山猫)'이며, 이것을 그대로 번역하면 '산고양이'가 된다.
△ 왜 여자는 죄 없이 창끝에 올려졌는가, 다수의 폭력이지요. 〈13-183,184〉
⇒ '창끝에 올리다'와 같은 뜻의 일본 관용어가 'やりだま(槍玉)に あ(擧)げる'이다. 원뜻은 '창끝으로 찔러 올리다'이지만, 뜻이 바뀌어 '여러 사람 중에서 골라내어 비난, 공격의 목표로 삼다'이다. 바로 이 말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다.
△ 허허허 허헛, 여자는 굽어도 못 묵고 삶아도 못 묵고 주먹을 쓸 수가 있나… 〈13-329〉
⇒ 구워서도 먹을 수 없고 삶아서도 먹을 수 없다 하였으니, 몹시 다루기 힘들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이 일본의 관용어인 'に(煮)ても や(燒)いても く(食)えない'(삶아서도 먹을 수 없고 구워서도 먹을 수 없다)에서 가져다 쓴 말인 듯하다. 세상사에 닳고 닳은 사람이나 몹시 검질긴 사람에 대해서 이른다.
△ 이따금 모오ㅡ 하고 어미소가 울면 음매에ㅡ 하고 송아지가 운다. 〈14-254〉
⇒ 소의 울음소리를 '모오'라고 나타내는 것은 우리말에서는 좀 낯선 표현이다. 소의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일본어의 의성어가 바로 'もう'(모우)이다.
△ 그런 험난한 길은 남자들 영분(領分)으로 밀어버리세요. 〈14-341〉
⇒ '영분'은 우리말에는 없는 일본식 한자어이다. '소유하고 있는 땅' '세력 범위''몫' 등의 뜻을 나타낸다. 이 글에서는 '몫'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 누가 해답을 주나? 손도 발도 내밀 수 없으면서 〈16-128〉 그 무렵 강탈사건 땜에 우린 손도 발도 내밀 수 없었는데 〈18-15〉
⇒ '손도 발도 내밀 수 없다'는 아무런 방법이 없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음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런 뜻을 나타내는 일본의 관용어인 'て(手)も あし(足)も で(出) ない'(손도 발도 내밀 수 없다)를 그대로 옮겨 쓴 말이다.
△ 그런 모든 세공(細工)이 결국 국민들을 환상적 충사(忠死)로 몰고 간단 말이야. 〈16-321〉
⇒ 우리말로서의 '세공'은 '섬세한 잔손질이 많이 가는 수공(手工)'이란 뜻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어의 'さいく(細工)'에는 이런 뜻 외에 '세부적인 것을 조금 바꾸거나 하여 남의 눈을 속이려는 음모', 곧 '속임수'를 뜻하기도 한다. 이 글의 뜻은 어느 것일까?
△ 종기(腫氣)에 손을 댈까 말까 망설이듯 그렇게 대하지 마십시오. 달겨들어서 짜든지 아니면 외면해버리든지, 〈17-65〉
⇒ 성미가 까다로운 사람 등을 조심조심 다루는 모양을 형용하는 관용어에 'はれも の(腫物)に さわ(觸)る よう'(종기에 손을 대듯)란 것이 있다. 밑줄 친 말은 이 관용어를 약간 변형한 것인 듯하다.
△ 사회주의 겉옷만 걸치고 속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구름모양 보아가며 입방아나 찧고 〈17-110〉
⇒ '구름모양'은 일본어인 'くもゆ(雲行)き'와 같은 뜻으로 쓰인 듯하다. 구름의 움직이는 모양을 뜻하기도 하지만, 일이 되어가는 모양, 곧 '형세(形勢)'를 뜻하기도 한다. '구름모양'을 '형세'로 이해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 효행이 부모의 권리가 된 데 문제가 있는 거지요. 〈18-211〉
⇒ 우리말에서는 '효도(孝道)'와 '효행(孝行)'을 구분해서 쓰지만, 일본어에서는 우리말의 '효도'에 해당하는 말이 'こうこう(孝行)'이다. 문맥으로 보아 '효행'보다는 '효도'가 맞을 것 같지만, 효도와 효행이 무엇이 다르냐고 우긴다면, 글쎄….
△ 오다가다 만냈이믄 자식이나 있든가, 자식이라는 거물장도 없는 처지 〈21-32〉
⇒ '거물장'은 두 나무를 연결하여 고정시키는 거멀쇠, 곧 꺾쇠일 것이다. 그럼 '자식이라는 거물장'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일본어에 'こ(子)は かすがい'(자식은 거멀쇠)란 말이 있으며, 자식에 대한 사랑이 거멀쇠가 되어, 부부의 인연이 유지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 축축한 얘기는 그만두라이. 무시기 할 일이 없어 그딴 말 하는 거가. 〈21-32〉
⇒ '축축한 얘기'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얘기일 것이다. 그럼 왜 '축축하다'라는 귀에 익지 않은 말을 썼을까? 혹시 습기가 많은 모양이나, 어둡고 음습한 모양을 나타내는 일본어 'じめじめ'와 관련이 있지 않은지 궁금하다. 또 5권 339페이지의 '습기가 습습하게 풍기는 방바닥을 내려다본다'에서의 '습습하게'라는 이상한 표현도 혹시 이 'じめじめ'에서 연유된 말이 아닌지 모르겠다.
(2) 일본어 또는 일본에 관계되는 사물
△ 나파후쿠(카키색의 작업복) 〈5-133〉
⇒ '나파후쿠(菜っ葉服)'는 카키색이 아니고 담청색.
△ 여자는 도코노마(객실)로 안내해 준다. 〈5-135〉
⇒ 일본식 주택에서 '도코노마'는 객실이 아니다. 객실 한쪽 벽에 문이 없는 벽장처럼 바닥을 조금 높게 꾸민 공간인데, 족자를 걸어 두거나 꽃병, 도자기 등을 두는, 장식을 위한 좁은 공간이지 손님을 모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객실은 '갸쿠마(客間)' 또는 '자시키(座敷)'라고 한다.
△ 포염시(浦塩市) 〈5-334〉
⇒ '포염'이 어디인가? '블라디보스토크'의 일본식 한자 표기이다. 정식으로는 '浦塩須德'이라 쓰고 '우라지오스토크'라고 읽는데, 줄여서 '浦塩(우라지오)'라고 한다. 현지음과 비슷하게 만든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다시 우리가 받아서 '포염'이라 음독(音讀)하는 것은 난센스다. 현지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야말로 국적불명의 지명(地名)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라고도 나와 있고, '해삼위(海蔘威)'라고도 나와 있으니, 독자로서는 각각 다른 곳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 아사유우와 히에마스네(아침 저녁은 차갑다) 〈8-185〉
⇒ 계절에 대한 인사말인데 '아침 저녁은 차갑다'라고 해서야 되겠는가? '아침 저녁은 서늘해졌군요'라고 해야 인사말이 된다.
△ 스미다가와(隅田川) 나가요바시(永代橋) 〈10-260〉
⇒ '나가요바시'가 아니고 '에이타이바시'이다. 도쿄 스미다가와에 걸린 역사가 오랜 다리.
△ 신겡부쿠로를 걸머진 늙은 것은 어떻고요? 〈10-263〉
⇒ '신겡부쿠로(信玄袋)'는 손에 들고 다니는, 손가방 구실을 하는 것인데, 그것을 어깨에 맨 늙은 거지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말하고 있지만, 그런 설명이 없으면 우스움이 전달되지 않는다.
△ 보오게츠(望月) 여관입니다. 〈10-268〉
⇒ 상호(商號)인 여관 명이야 어떻게라도 읽을 수 있겠지만, 일본인이 경영하는 일본 여관이니만큼 '보오게츠'보다는 '모치즈키(望月)'가 일반적이다.
△ 한자식 일본어 발음인 닌지츠(仁實)란 일본식 마술사의 뜻이기 때문이다.〈10-290〉
⇒ '일본식 마술사'가 아니고 '일본의 옛날 둔갑술'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닌지츠'가 아니고 '닌주쓰(忍術)'이므로, 아예 말이 성립이 되지 않는다. 소설속의 인물인 '仁實(인실)'의 일본식 발음인 '닌지츠'와 '닌주쓰'가 비슷하여 재미있는 대화가 되게 하려는 것이겠지만……. 그리고 '仁'의 일본 음은 '닌'보다는 '진'이 일반적이다.
△ 히야하야(저속물에 열 올리는 사람들)에 쓴웃음을 띠면서 〈14-57〉
⇒ 저속물에 열올리는 사람들을 '히야하야'라고 했는데,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라 난처하다. 혹 '히야히야'의 오식(誤植)이 아닐까 했으나, '히야히야(ヒヤヒヤ)'는 연설회 때 연사의 발언에 공감하거나, 반대로 야유하거나 할 때 청중이 지르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이니, 이 역시 ( ) 안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말에는 주석이라도 있었으면…….
△ 근대화 덕분에 훈도시(샅바) 하나 차고서 재벌에까지 기어오른 층 〈14-57〉
⇒ 훈도시는 남자의 음부를 가리는 좁고 긴 천이다. 운동 팬티 위로, 넓적다리와 허리에 걸쳐서 매는 샅바와는 다르다. 결국, 맨주먹으로 시작하여 재벌에까지 올랐다는 말인데, 자칫 씨름 선수가 재벌이 된 것으로 이해하는 독자는 없을는지.
△ 미즈노미하쿠쇼(물 마시는 농부) 〈14-59〉
⇒ '미즈노미하쿠쇼'가 아니고 '미즈노미뱌쿠쇼'이다. 그런데 그것을 그대로 변역한 '물 마시는 농부'로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가난한 소작농이나 날품팔이 농민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 '미즈노미뱌쿠쇼'이다.
△ 앞으로도 후라이 보즈(방랑하는 중)처럼 그러고 살 참이냐? 〈14-71〉
⇒ '후라이 보즈(風來坊主)'는 아마 착각에서 온 조어(造語)일 가능성이 짙다. '후라이보(風來坊)'가 옳을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사람, 곧 부랑인(浮浪人), 떠돌이를 이르는 말이다.
△ 소위 돈바쿠쇼(돼지 백성)라 하여 모멸의 대상이다. 〈14-258〉
⇒ '돈바쿠쇼'가 아니고 '돈뱌쿠쇼'인데, '돈뱌쿠쇼'에서 접두어인 '돈'을 '돼지 돈(豚)'으로 착각하여 '돼지 백성'이란 이상한 풀이가 나온 듯하다. '돈(どん)'은 욕하고 멸시하는 뜻을 나타내는 접두어 '도(ど)'를 더욱 강조하는 형태소이다. '도뱌쿠쇼' 또는 '돈뱌쿠쇼'는 돼지 백성이 아니고, 농부를 멸시하여 이르는 말이다.
△ 일본만 하더라도 상(商)이 농(農)의 위에 있고 〈14-258〉
⇒ 일본 봉건시대의 계급 관념에 따라 위에서부터 차례로 늘어놓은 것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인데, 상(商)은 농(農)의 위는 고사하고 최하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계급관념 속에서도, 상인들의 경제활동은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에, 경제력에 있어서는 상인이 농민보다 우위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 소로소로 쇼바이다나(서서히 장사로구나) 〈14-264〉
⇒ 밤업소에 나가기 위하여 공중목욕탕에 다녀오는 일본인 기생에게, 길에서 만난 아는 경찰관이 건네는 인사말이다. '서서히 장사로구나'는 아주 어색하다. '그럭저럭 일 나갈 시간인 모양이군'이라고나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 오리오리, 히루나카다조(이봐 이봐, 대낮이야 뭘) 〈14-264〉
⇒ '오리오리'는 '오이오이'의 오식(誤植)인 듯하고, ( ) 안의 '뭘'은 필요 없는 말이다. '야, 야. 대낮에 무슨 말 하는 거냐'라고 할 수는 있다.
△ 이마이 무네히사(今井宗久) 〈14-267〉
⇒ '무네히사'가 아니고 '소큐'이다. 16세기 일본의 다도(茶道)의 명인.
△ 고호안(孤蓬奄)에 있는 국보 희사에몬(喜左衛門) 〈14-267〉
⇒ '孤蓬奄'은 '孤篷庵', '희사에몬'은 '기자에몬'이라야 한다. '기자에몬'은 조선에서 건너간 최고의 찻잔인 '기자에몬이도(喜左衛門井戶)'의 준말로 쓰인 듯하다. '기자에몬'은 그 찻잔의 일본에서의 최초 소장자(所藏者)의 이름이다.
△ 쿠소도쿄(똥 같은 배짱) 〈14-273〉
⇒ '똥 같은 배짱'이 어떤 배짱인가? 어감도 좋지 않고 뜻도 모호하다. 이와 같은 직역은 번역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단한 배짱' '강심장'을 '똥 같은 배짱'이라 해서야…….
△ 도진 오키치(唐人吉女)나 오쵸 후진(나비 부인) 〈15-28〉
⇒ '오키치(お吉)'라는 일본 여인 이름에 '吉'자가 들어 있다고 해서 '길녀(吉女)'라고 우리말화하는 것도 이상하다. 번안(飜案) 소설에서나 있음직한 일이다.
△ 스테셀과 노기(乃木)가 만났을 때 만든 노래 말예요. 〈15-125〉
⇒ 스테셀이나 노기가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일까? 전쟁에 진 러시아군의 장군과 승리한 일본군의 장군이 만났을 때 만든 노래가 아니고, 두 장군이 만났을 때의 장면이나 경과나 대화 등을 나타낸, 어떤 작사자의 가사를 말하는 것이다.
△ 육조 다다미방에는 〈15-296〉
⇒ '육조'는 '六疊'을 한 자는 우리음으로, 한 자는 일본음으로 읽은 것이다. 우리음으로는 '육첩', 일본음으로는 '로쿠조(ろくじょう)'이니, 어느 것이나 마땅치 않아서 '육조'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편법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럴 때는 '다다미 여섯 장 넓이의 방'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 마루비루(마루베니 빌딩)가 있는 오피스가 〈15-301〉
⇒ '마루베니(丸紅) 빌딩'이 아니고 '마루노우치(丸の內) 빌딩'이다.
△ 우에키야(植木屋, 화원) 〈15-320〉
⇒ '우에키야'는 정원사(庭園師)이다. 정원사이니만큼 화원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화원(花園)' 그 자체는 아니다.
△ 쿠사레엔(썩은 인연) 〈16-279〉
⇒ 직역인 '썩은 인연'으로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끊고 싶어도 좀체로 끊어지지 않는 악연(惡緣)이 '구사레엔(腐れ緣)'이다.
△ 총합국책입안(總合國策立案) 〈16-294〉
⇒ '총합(總合)'이 아니고 '종합(綜合)'이다. '종합(綜合)'을 '총합(總合)'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綜'이 상용한자(常用漢字)에서 제외된 전후(戰後)의 일이다.
△ 신주모노(동반 자살) 〈16-307〉
⇒ '신주모노(心中物)'는 '동반 자살'이 아니고, 동반 자살, 곧 정사(情死)를 주제로 한 이야기, 가부키, 연극 등의 작품을 이른다.
△ 사야아데(지나가는 무사들이 칼자루가 서로 부딪는 것을 시비하는 일) 때문에 칼을 뽑고 싸우는 그들 일본인 〈16-318〉
⇒ '칼자루'가 아니고 '칼집 끝 부분'이 서로 부딪친 것을 트집 잡아 다투는 일을 이른다.
△ 다데야쿠샤(가부키의 협객 배우) 〈16-321〉
⇒ '협객 배우'가 아니라 '주연 배우' 또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심 인물' 곧 '주역'을 이른다.
△ 호라우키(내용 없는 큰소리) 〈16-356〉
⇒ '호라우키'가 아니고 '호라후키'이며, '내용 없는 큰소리'가 아니고 '쓸데없이 큰소리치는 사람'을 이른다.
△ 통속시인 사이조 야소(四條八十) 〈17-204〉
⇒ '사이조'는 '四條'가 아니고 '西條'이다. 그는 와세다 대학 교수를 지낸 저명한 시인이자 불문학자이다. 대표적인 동요 시인이기도 하고, 또 가요도 썼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를 통속시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 가도마츠(설이나 문간에 솔을 세우는 일본 풍습) 〈18-105〉
⇒ ( ) 안의 주석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한다. (일본 풍습에서, 정초에 문 앞에 장식으로 세우는 솔)
△ 오로지 대군 옆에서 죽겠노라 〈19-113〉
⇒ 여기서 '대군(おおきみ)'는 천황의 존칭이다. 우리말의 대군(大君)과는 뜻이 다르다. '폐하 곁에서 죽겠노라'라야 한다.
△ 에로, 구로(폭력), 난센스 〈19-115〉
⇒ '구로'는 '그로' 곧 '그로테스크'의 준말인데, 이것이 어째서 '폭력'일까?
△ 옷초코초이(경박) 재사연하는 것들 〈20-89〉
⇒ 생각이 얕고 행동이 가벼움, 곧 경박(輕薄) 또는 경박한 사람이 옷초코초이(おっちょこちょい)이다. 그러니, '재사연(才士然)하는 옷초코초이들'이라고 해야 그런대로 뜻이 통할 것 같다.
△ 야미장수(뒷거래) 〈20-318〉
⇒ 일본어 'やみ(闇)'와 우리말 '장수'가 합친 말이며, 일제 말기에 흔히 쓰이던 말이다. 그런데 그 뜻은 '뒷거래'가 아니고, 상품을 불법으로 뒷거래하는 사람, 곧 '암상인(暗商人)'과 같은 말이다.
△ 요와이모노이지매(약자를 몰아서 건드리다) 〈20-347〉
⇒ '약자를 몰아서 건드리다'는 뜻이 잘 전달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명사를 서술형으로 풀이하는 것도 문제다. 'よわ(弱)い もの(者) いじ(苛)め'는 '약자 괴롭히기'이다.
△ 아마노 다카하라(天の高原) 〈21-219〉
⇒ 일본 신화에서, 천신(天神)들이 살고 있었다는 천상의 나라는 '아마노 다카하라'가 아니고 '다카마노하라(高天原)' 또는 '다카마가하라'이다.
(3) 잘못된 말이나 문장, 이상한 문장
△ 새벽 산사에서 울리는 장엄한 인경소리가 들려왔고, 〈3-103〉
⇒ 도성(都城)에서 야간 통행금지를 알리던 인경소리가 산사(山寺)에서 울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막딸네의 재빠른 행실을 미워하고 멸시하면서도 〈3-317〉
⇒ '행실'에 '재빠른'이란 관형어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 세정에 밝고 처세에 능란하며 제반사에 형통하다 하여 〈4-134〉
⇒ '형통(亨通)'은 일이 잘 풀려 나간다는 뜻이지, 일에 밝거나 능하거나 하다는 것은 아니다.
△ 길변에 있는 주막으로 들어간다. 〈5-82〉
⇒ '길가' '노변' '도로변' '연도(沿道)' 등 허다한 말 가운데서 하필 '길변'이란 귀에 선 말을 썼을까?
△ 책임감도, 사랑에 순교하겠다는 열정도 없이 〈5-297〉
⇒ '순교'라니, 사랑과 종교를 혼동한 것은 아닌지.
△ 부싯돌을 비벼 불을 붙이더니 〈5-312〉
⇒ 부싯돌은 비벼서 불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부싯돌을 쳐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옥이네라는 젊은 과부는 시초부터 치한의 추태 대상으로 나타났었다. 〈6-10〉
⇒ 어떤 치한이 어떤 젊은 과부에게 추태를 부렸는데, 그 젊은 과부가 옥이네였다는 이야기겠는데, 이것을 '추태 대상으로 나타났었다'로 표현했다. 그리고 '치한'이라는 사실로 보나, 글의 내용으로 보나 '추태'보다는 '추행'이어야 할 것이다.
△ 서희의 대상으로서 상현은 사모(思慕)와 기혼자(旣婚者), 이 두 상극선상(相剋線上)의 존재며, 길상은 야망(野望)과 하인(下人),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상극된 것은 아니다. 〈6-12〉
⇒ 서희는 상현을 사모하지만 그는 기혼자이니, 그와는 결혼할 수 없고, 길상은 야망(누구의 어떤 야망인지 분명찮다)이 있으며, 그의 신분이 하인이긴 하나, 그와는 결혼 못할 것도 없다. 뭐 이런 뜻이 되겠는데, '사모와 기혼자' '야망과 하인' 등으로 나란히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인지 심히 당혹스럽다.
△ 이곳에 몸져 살기만 한다면야 〈6-187〉
⇒ '몸져눕다'란 말은 있지만 '몸져 살다'란 말은 없다. '자리잡고 살다'란 뜻으로 썼는지는 모르지만.
△ 핵이 있어야 부챗살도 열리는 것 〈8-34〉
⇒ 쥘부채의 살을 모아 끝 부분에 뚫은 구멍에 꽂는 못을 '핵(核)'이라고 하였는데, '사북'이란 어엿한 우리말이 있다.
△ 성씨 이름 함자 피차 모르는 터이긴 하지만 〈8-360〉
⇒ '성씨 이름'이면 되었는데, 거기에 왜 '이름'의 높임말인 '함자'가 들어갔을까?
△ 불문율이란 대개의 경우 대중의 충동적 행위였으니까. 〈9-19〉
⇒ '불문율'이 충동적 행위가 아니고, 불문율에 의하여 행해지는, 분수를 어긴 천민(賤民)에 대한 사형(私刑)이 대중이 충동적 행위라는 이야기다.
△ 별을 밟고 돌아오는 노동자의 하루하루 〈9-57〉
⇒ '별을 밟고'가 아니라 '별을 이고'일 것이다.
△ "니가 경사(敬辭)를 쓰니께." 〈9-152〉
⇒ 서울에서 살다 온 딸의 서울말을 낯설어하는 아비의 말임을 감안하면, '경사'는 서울말을 뜻하는 '경사(京辭)'인 듯하다.
△ "홍이 너 교회 일 좀 보겠나?" "싫소." 간단없이 돌아온 대답이다. 〈9-287〉
⇒ '간단(間斷)없이'는 '끊임없이'와 같은 말이다. 그러니 '지체없이' 또는 '즉각'이라야 한다.
△ 이 나라는 나무화살[弧矢]로써 천하를 정하느리라. 〈10-110〉
⇒ '호시(弧矢)'는 나무로 만든 활과 화살이다.
△ 집게손가락을 하고서 코를 행 푼 임이네 〈10-155〉
⇒ 엄지와 검지로 콧방울을 집은 상태를 '집게손가락을 하고서'라고 표현했다. '집게손가락'은 검지와 같은 말이니, 뜻의 혼란이 생길 수 있다.
△ 갑자기 내려간 일기와 찬비 때문 〈10-238〉
⇒ '일기'가 아니라 '기온'일 듯.
△ 이제 기우는 다 사라졌다고 보연은 생각한 것이다. 〈10-414〉
⇒ '기우가 사라졌다'는 우스운 표현이다. '걱정이 사라졌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의 걱정은 모두 기우였다'가 '기우'가 바르게 쓰인 글일 것이다.
△ 박의사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모양인데 〈11-405〉
⇒ '역린'은 '왕의 노여움'을 이르는 말이다. 드물게 '웃어른의 노여움'을 이르는 경우도 있으나 아무에게나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 경찰을 수모했으니 용서 못한다. 〈13-30〉
⇒ '수모(受侮)'는 '모욕을 당함'의 뜻이다. '모욕'이라고 해야 한다.
△ 국난 내습을 외쳤을 뿐 〈13-186〉
⇒ 적군이 내습해 오거나 태풍이 내습해 오는 것이 곧 '국난(國難)'인데, 국난이 내습한다는 것은 이상한 말이다. 국난이 닥쳐온다고 외쳤을 것이다.
△ 절도(節度)와 미온(微溫)은 어떻게 다른가. 아니면 같은 것인가 〈13-335〉
⇒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두 단어를 대비시켜 놓았으니,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 정도에 넘지 않게 알맞게 행동하는 자세와 미지근한 태도를 말하는 것일까?
△ 쾌적한 건강과 노리(老羸, 늙은이)의 행복을 누리는 한 쌍의 노부부 〈13-337〉
⇒ '노리(老羸)'는 '늙은이'가 아니고 '늙고 쇠약함'의 뜻이므로, '노리의 행복'이란 말이 이상해지고 말았다. '노년의 행복'이나 '노경(老境)의 행복'이어야 할 것이다.
△ 자기 입에서 쏟아져 나가는 모욕적 언사는 차제에 있지 아니하고 〈14-51〉
⇒ '차제에 있지 아니하고'가 무슨 말일까? 짐작컨대 필자는 일본식 구투 용어인 '차한(此限)에 부재(不在)하다'를 염두에 두고 쓴 듯하다. 그렇다면 '어떤 제한을 받지 않고' 또는 '문제삼지 않고'가 된다. 어쨌든 우 리말로 '아랑곳하지 않고'하면 매끄럽게 통하는데 왜 구태여 까다롭고 아리송한 말을 쓰는지…….
△ 우리가 만난 지 몇 년 만이지요? 〈14-61〉
⇒ '만난 지'가 아니고 '헤어진 지'일 것이다.
△ 이런들 저런들 무슨 일이 생기든 추호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처지는 아니었고 〈14-120〉
⇒ 약간 빈정거리는 투의 글이긴 하지만, '경천동지'라는, 과장된 말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더욱이 부정(否定)하는 말과 호응하는 진술부사 '추호'가 붙어 '조금도 ~하지 않다'는 형식의 글에서 '경천동지'는 좀 엉뚱한 느낌이다. '추호 놀랄 처지는 아니었고'하면 너무 힘이 없는 글이 되는 것일까?
△ 석면(石綿)과 같은 어두움은 어디로 이어지는 것인가 〈15-86〉
⇒ '석면과 같은 어두움'이 어떤 어두움인지 잘 알 수 없다. 어째서 '석면'이 '어두움'에 비유되었는지 모르겠다.
△ 임산부의 모습이 있을 뿐이었다. 〈15-311〉
⇒ 이 글 내용에는 '임부(姙婦)'는 있으되, '산부(産婦)'는 없다. '임산부'는 '임부'로 고쳐야 한다.
△ 토지매매는커녕 토지상조권(土地商組權)에 대해서조차 창구를 닫아버리는 현상 〈16-54〉
⇒ '토지상조권'은 끝내 알아낼 수 없었다. '토지'에 대해서 만든 '〈토지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으니,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
△ 보비위를 맞춰 〈17-48〉
⇒ '보비위(補脾胃)'가 곧 비위를 맞추는 일이므로, 그저 '비위를 맞춰' 또는 '보비위하여'라고 해야 할 것이다.
△ 도와주어야겠기에 도와주었을 뿐, 아니 도와준다면 어폐가 있고 〈17-315〉
⇒ '어폐(語弊)'는 적절하지 않은 말을 함으로써 생기는 오해나 폐해를 이르는데, 이 글에서는 어폐가 될 그런 말을 찾을 수 없다. '아니 도와준다'는 행위 자체를 '어폐'라고 할 수는 없다.
△ 구천이는 자신에게는 배다른 숙부였지만 〈17-348〉
⇒ '배다른 숙부'란 말이 있다면, 서희의 조모인 윤씨부인이 서희의 아버지 최치수와 구천이를 낳았으니 배가 다르지는 않고, 구태여 말하자면 '아비 다른 숙부'일 것이다.
△ 후일 일련(日蓮)은 군국주의의 괴뢰로서, 정한론자(征韓論者)와 군국주의자들이 곧잘 치켜들고 나오는 역사적 존재가 되었다. 〈18-10〉
⇒ 일련종(日蓮宗)의 개조(開祖)이며, 13세기의 인물인 일련, 곧 니치렌이 750년쯤 전에 어떤 주장을 했고, 그 주장을 근대의 군국주의자들이 어떻게 치켜세우든, 그를 '군국주의의 괴뢰'라고 규정하는 것은 비약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 그 서투른 언해로 끄적인 편지는 분노에 찬 것이었다 〈18-222〉
⇒ '언해(諺解)'는 '언문(諺文)'으로 고쳐야 한다.
△ 독일은 소련의 스탈린그라드에서 항복했으며 〈19-197〉
⇒ 독일군을 1944년 1월 스탈린그라드에서 패퇴(敗退)했으나, 항복한 것은 이듬해인 45년 5월이었다.
△ 노인의 옆에는 노인의 노처인 듯 안노인이 졸고 있었다. 〈20-37〉
⇒ '노인 옆에는 그의 아내인 듯 안노인이 졸고 있었다'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장황하게 늘였을까? 마치 '노'를 운자(韻字)로 한 운문(韻文)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다.
△ 전세는 일본에 극악 상태였다. 〈21-208〉
⇒ '극악(極惡)'은 선악의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지,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아주 좋지 않은 상황을 나타내는 말은 '최악의 상태'이다.
△ 야심에 울울창창해 있는 이 범호가 조직을 되살릴 것을 열망하고 〈21-125〉
⇒ 야심에 가득 차 있음을 '야심에 울울창창해 있는'이라고 표현했는데, 어쩐지 실감이 나지 않고 장난삼아 쓴 글 같은 느낌이다. '야심에 차 있는 이 범호가'하는 단순한 글이 훨씬 명쾌하다.
(4) 일본 관계 교정 미스의 예
하야세(早懶)---瀨
헤이게(平家)와 겐지(原氏)---케, 源
기쿠지 간(鞠池寬)---치, 칸, 菊
이시가와(石川啄本)---카, 木
구마가이 젠타(態谷善太)---熊
몬쓰키(紋村)---付
미야지마(宮鳥)---島
사가(佐駕)---賀
다이코보리(大閣堀り)---閤
이시하라 간지(石原完邇)---와, 莞爾
번주(番主)--藩
다해코(妙子)---에
우에스기(士杉)---上
마자키(眞岐)---사, 崎
아마카스(甘粨)---粕
마쓰오카 요소케(松岡洋石)---스, 右
고도쿠(辛德)---토, 幸
가마쿠라(鎌)---鎌倉
삿포로(礼幌)---札
타가키 세이시로(板恒征四郞)--이타가키, 垣
구가(空海)---구카이
쓰무라 양행(律村洋行)---津
센게 모도마로(千家之麿)---토, 元
야나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야나이하라
마세이(麻生久)---아소 (히사시)
하기하라 사쿠타로(荻原朔太郞)---와, 萩
마치아이(特合)---待
오야코돈부리(親ふどんぶり)---子
이도다완(井戶茶碗)---자
(5) 우리말 관계 한자의 미스의 예
당주(堂主)---當主(현재의 호주)
잡답(雜畓)---沓
동맹철시(同盟澈市)---撤
계도금범(桂悼錦帆)---棹
선우일(蘇于逸)--鮮
산호주(珊瑚舟)---珠
장강[楊子江]---揚
촉루(觸髏)---髑
갈비[松桔葉]---枯
진입부(陣立夫)---陳
우분(牛奮)---糞
일진(一陳)을 거느리고---陣
성삼대(成三台)---臺
흉당(胸堂)---膛
사금(妙金)---砂 또는 沙
만경창파 녹수상(緣水上)에---綠
수(隨), 당(唐), 송(宋)---隋
막을 두(柱)---杜
원세개 같은 간물(好物)---奸
(나남출판사에서 2003년 10월 5일에 펴낸 〈토지〉(전21권)에 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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