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농민대회에 참가한 후 24일 뇌출혈로 사망한 전국농민회 보령지회장 전용철 씨가 당시 집회 과정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다른 농민들에 의해 실려 나가는 사진이 발견됐다.
전 씨의 사인을 두고 경찰은 "집회 후 집 앞에서 쓰러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농민단체 측은 "집회 도중 경찰에 맞아 쓰러진 것"이라고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이 사진이 발견돼 주목된다.
이런 점에서 이 사진은 당시 전 씨를 후송한 농민들의 진술과 더불어 앞으로 전 씨의 사인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뇌출혈 사망 전용철 씨, 4명의 농민들이 팔과 다리 붙잡고 후송**
<사진1> 전용철
전국농민회 등 농민단체들은 27일 오후 3시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 씨는 15일 농민대회에서 농민들이 오후 6시 10~20분경 정리집회를 위해 모여있던 도중 강제진압에 나선 경찰의 방패에 맞아 쓰러졌고, 의식을 잃은 전 씨를 주위에 있던 농민들이 후송했다"고 주장하며, 전 씨가 후송되는 장면이 담긴 사진과 당시 전 씨가 입고 있던 옷과 신발, 전 씨를 후송한 농민들의 진술을 공개했다.
인터넷 매체 <민중의 소리>(www.vop.co.kr)의 김철수 기자가 촬영한 이 사진은 4명의 농민들이 전 씨의 팔과 다리를 붙들고 후송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전 씨가 폭행당하던 순간에 옆에 있었고 쓰러진 전 씨를 후송하기도 한 전남 화순군 능주면 지회장 배검 씨는 "농민들이 정리집회를 위해 여의도 문화마당에 모여있던 중 전경들이 몰려오자 전 씨가 앞으로 나서서 팔을 양쪽으로 펼치며 전경들을 저지하려 했다"며 "이 순간 순식간에 전경들이 방패로 전 씨의 가슴을 가격한 뒤 곧이어 머리를 가격해 전 씨가 뒤로 휙 넘어졌다"고 당시의 상황을 진술했다.
***"경찰들 몰려오자 전 씨가 앞에 나서서 막다가 가슴, 머리 맞고 넘어져"**
배 씨는 "당시 '전 씨가 앞에 나서서 전경들을 막는 모양새가 너무나 무모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황을 잘 기억하고 있다"며 "전 씨가 쓰러진 뒤에도 전경들이 그를 방패로 찍고 진압봉으로 수 차례 내리쳤다"고 증언했다.
'죽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 씨의 상태가 상당히 안 좋다고 느꼈던 배 씨는 주위 사람들에게 "사람이 죽었다"고 외쳤다. 이렇게 해서 모여든 4~5명이 김장택 제주 조천읍 지회장, 정태문 제주 성산읍지회장 등과 함께 전 씨를 집회장소 뒤쪽의 한적한 곳으로 옮겼다.
<사진2> 배검(목격자)
배 씨는 당시 "아스팔트 바닥에 두면 안 될 것 같아 스티로폼을 끌어 그 위에 눕혔는데, 전 씨가 눈을 깜빡이고 약간 움직였다"고 말했다. 전 씨는 이후 의식을 차리고 자신의 지역인 보령 농민회 동료들을 찾아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사건 발생 초기에 진술을 하지 못한 이유는 전 씨와 거주지역이 달라 안면이 없는 관계로 자신들이 후송한 사람이 전 씨인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26일 밤 당시 집회 취재사진을 살펴보던 농민회 관계자에 의해 전 씨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발견됐고, 사진 속의 인물들을 찾아내 이들의 진술을 확보한 것이다.
***후두부 충격에 의한 뇌출혈. 농민대회 당시 충격이 사인일 가능성 커**
결국 이번에 공개된 사진으로 전 씨의 사인이 '경찰 폭행에 의한 것'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 전 씨는 자발적 뇌출혈이 아닌 후두부에 충격을 입어 전두엽 부분에 뇌출혈이 생겨 사망한 '대측충격손상'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결론이 난 상태다.
이는 머리 뒷부분에 충격이 가해져 뇌가 머리 앞 쪽으로 쏠리자 머리 앞 부분에 큰 압력이 발생하고 출혈이 생긴 것으로, 이를 근거로 경찰은 "전 씨가 농민대회에서는 별다른 외상을 당하지 않았으며, 집에 귀가하던 도중 넘어져 생긴 상처"라고 주장하고 있고, 국과수도 '뒤로 넘어져 생긴 손상'이라고 결론 내며 '방패 등에 의한 충격이 아니다'라는 경찰 측의 입장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사진에서 전 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후송되는 사진과 전 씨가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봤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공개됨에 따라, 전 씨가 농민대회에서 입은 충격으로 인해 뇌출혈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더 크게 됐다.
***농민단체 "경찰 폭행 의한 뇌출혈 명백. 경찰에 반드시 책임 물을 것"**
<사진3> 김혁준 녹색병원 과장
박석운 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은 "경찰은 '전 씨가 농민대회에서는 아무런 부상 없이 멀쩡하게 귀가했고, 집에서 넘어져 뇌출혈을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오늘 공개된 사진과 진술은 전 씨가 넘어졌든 맞았든 뇌출혈의 원인이 된 충격은 경찰의 폭력에 의한 것임이 명백해졌다"고 주장했다.
전 씨가 농민대회를 마치고 '걸어서' 귀가한 것에 대해서도 원진녹색병원 김혁준 신경외과 과장은 "외부 충격에 의해 뇌출혈이 일어난 경우에 그 자리에서 즉시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러 사망하는 수도 있지만, 충격이 상대적으로 약하면 그 자리에서 멀쩡하게 걸어다니고 생활하다가 짧게는 1~2시간, 길게는 2~3일 후에 상태가 악화돼 쓰러지는 수도 많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농민회와 전국민중연대 등 사회단체들은 이날 제시된 증거를 바탕으로 경찰의 과잉 폭력진압에 대한 책임을 묻는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설 방침이어서 경찰이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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