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8강 진출이 온 나라를 강타하면서, 정치권엔 정몽준 변수가 태풍의 핵으로 등장하고 있다.
과연 그가 연말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것인가. 신당 창당에 나설 것인가. 재보선 후 예상되는 정계개편에서 그의 위치는 어디가 될 것인가. 8강전 승리 여부만큼이나 관심을 모으는 주제다.
정작 정몽준 본인이나 측근들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월드컵의 성공적 마무리만이 관심사라는 태도다. 하지만 이제 연말 대선과 정몽준의 행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몽준, 그는 누구인가**
정몽준 의원은 현대그룹 설립자인 고 정주영회장의 6남으로 1951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ROTC 장교로 군복무를 마쳤다.
대학 졸업 후 1975년에 부친이 경영하던 현대중공업에 입사하여 상무이사와 사장을 거쳐 현재 현대중공업 고문 직함을 가지고 있다.
정치 입문은 1988년에 무소속으로 울산동구에서 당선되면서부터다. 90년 민자당에 입당했으나 2년 후 탈당했고, 92년에는 부친이 창당한 국민당 소속으로 재선됐다. 이후 다시 무소속으로 돌아가 현재 4선이다.
정 의원의 정치가로서의 가장 큰 약점이자 강점은 선친인 정주영 회장의 후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정치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정주영 회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월드컵 공동유치 등 그를 대선후보의 반열에 오르게 한 최대 업적 역시 현대중공업과 현대그룹의 자금과 조직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반대로 현대와 정주영 회장을 빼면 그에게 남는 것은 아직 없다. 정치인 정몽준의 독자적 힘과 이미지가 전무하다. 4선의 국회의원 활동에서도 이렇다 할 업적이 없다. 거의 무소속으로 활동한 까닭에 정치권내 조직기반도 취약하다.
정 의원 스스로 꼽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도 부친인 정주영 회장이다.
***정몽준 의원의 은밀한 대선행보**
정몽준 의원은 6.13 지방경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의 내분과 제3후보론의 대두 등 정치권 동향을 살피면서 앞으로의 정치적 변수를 염두에 두고 월드컵대회 이후 자신의 행보를 다각도로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지난 달 20일부터 정책기능을 강화한 '정책보좌 인턴'을 모집중인 것도 대선도전을 위한 브레인 모집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정 의원 측은 인턴 모집에 대학교수, 벤처기업 사장 등 3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리는 등 예상외로 성황을 이루자 모집기간을 연장했다.
한 측근은 인턴 모집에 나선 이유에 대해 "정 의원이 4선 의원이라 소속 상임위 뿐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전문가들의 조언이 필요한 위치"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또한 "별도의 사무실을 갖추고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상으로 자원 봉사하는 개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대선 도전이 구체화할 경우 '정책보좌 인턴'이 곧바로 대선공약 개발팀이 될 것은 불문가지다.
또한 이홍구 전총리가 회장으로 있는 정 의원 후원회도 최근 가입자가 느는 등 전국적인 조직으로 세 불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의원 측은 "전국적으로 개인적인 지지자와 팬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별도로 조직화하는 것은 없고 다른 정치인들의 조직적인 후원회와 성격이 다른 순수한 일반인 회원이 많다"고 강조했다.
최근 노풍의 주역으로 떠오른 '노사모'를 의식해서인지 자발적 팬클럽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 없다"**
정 의원의 대선 도전 여부에 대한 '준비된 답변'은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한 측근은 "(대선)캠프 같은 것은 아직 전혀 준비를 안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정 의원은 현재 월드컵의 완전한 성공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을 자주 반복했다. 그러나 곧이어 "부정이라기보다는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는 상태로 봐 달라"고 주문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 의원의 인기가 오르는 것에 대해서는 "정치인으로서 여론이 좋으면 기분이 좋은 것 아니냐"는 원론적 답변에 그쳤다.
한편 정 의원의 움직임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5일부터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를 통해 '정몽준 변수'에 대해 다각도로 조사한 후 '제3후보로는 위력이 적으나 민주당 후보가 될 경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당도 제 3후보로 '정풍'이 불 경우 한나라당과 민주당중 어느 쪽 표를 잠식할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당내 일각에서는 지방선거 참패 직후 영입대상으로 정몽준 의원의 실명이 거론되기도 했다.
***주판알을 튕기느냐, 치고 나서느냐**
정 의원을 취재했던 한 언론인은 "밑바닥부터 올라온 인물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하에서 베이스를 올린 인물치고는 카리스마가 있다"고 그의 저력을 인정했다. 정치인으로서 보여준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휘두를 수 있는 축구계가 아닌 현실정치에서 자기방향이나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그의 카리스마나 리더십이 어떻게 발휘될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현대와 아버지 후광 이외에는 아직 검증된 바가 전혀 없는 그의 최대 약점을 짚어낸 것이다.
정가의 한 관계자는 "본인이 깃발을 들고 나서면 '아버지 꼴' 난다고 보는 것이 정 의원 측의 생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당 창당 등 적극적 행보에 곧바로 나서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 관계자는 "노풍이 완전히 가라앉고 대안이 없다고 할 때 끌려가듯 민주당에 들어가는 방안, 혹은 마지막까지 양당 사이에서 자신의 몸값 올리기에 나설 수도 있다"고 내다 봤다.
한일월드컵의 주역 정몽준 의원이 막판까지 치밀하게 주판알을 튕길지, 8강 4강에 고무되어 불쑥 치고 나서는 일을 저지를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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