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동국대 강정구 교수에 대해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12일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가운데 논란의 당사자인 강 교수는 이날 "통일전쟁론은 전쟁주체자의 전쟁목표를 기준으로 한 전쟁 성격규정"이라며 문제가 됐던 '통일전쟁론'의 학문적 정당성을 재차 강조했다.
강 교수는 특히 "국보법이라는 사법적 잣대는 원초적으로 학문의 자유와 양립될 수 없는 것"이라고 자신을 둘러싼 사법처리 논란을 비판하기도 했다.
***"유엔도 북한의 침공을 통일전쟁으로 규정"**
강 교수는 이날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서프라이즈>에 기고한 '6.25 필화사건을 되돌아보며'라는 칼럼을 통해 그동안 자신에게 쏟아졌던 각종 비난을 10개 항목으로 나눠 조목조목 반박했다.
첫째, 강 교수는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미국에 배은망덕할 수 있느냐'라는 비난에 대해 "학문하는 사람까지도 조그마한 인연인 미국유학에 발목 잡혀 미국의 문제점에 눈감게 되면 이 세상에 정의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며 "친일 민족반역자의 아들딸들이 자기 부모와 조부모에까지 이런 엄격한 잣대를 대었더라면 시민사회 수준의 과거청산이 자발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이 문제제기가 얼마나 잘 못된 것인지는 분명할 것이다"고 비꼬았다.
둘째, 강 교수는 '국민정서에 반하는 6.25 통일전쟁론'이라는 비판에 대해 "학문적 결론은 객관적 자료, 타당한 방법론, 논리적 추론, 연구자의 양심 등이 종합·포괄화되어 귀결되는 것이지 학자가 남의 눈치나 보면서 그들이 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고 학문적 근거를 가진 주장임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정서에 맞는 학문만이 허용될 때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는 코페르니쿠스의 지적 혁명도 불가능했을 테고, 미국의 이라크침략 전쟁도 정당화되고 말 것"이라머 "또 국민정서는 수시로 바뀌므로 학문적 귀결이 국민정서의 변화에 따라 춤을 추듯 바뀌게 되는 이 엄청난 사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셋째, 강 교수는 '통일전쟁론의 찬양, 고무성'에 관한 비판에 대해 "6.25는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내전이라는 필자의 전쟁성격 규정은 남의 공식 입장인 '6·25 불법남침론'에서 남침을 인정한 셈이다. 이는 오히려 북의 공식 입장인 남한의 북침에 대한 정당방위론을 부정한 셈"이라며 "이처럼 학문적 결과는 어떤 이해당사자에게 때로는 득이나 실도 되고, '찬양'도 되고 '이적'도 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강 교수는 "바로 이 때문에 국보법 7조의 찬양, 고무라는 사법적 잣대는 원초적으로 학문의 자유와 양립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넷째, 강 교수는 '소영웅주의의 발로'라는 비난에 대해 "박사논문 때부터 여러 가지 시련과 굴곡을 각오한 이같은 학문적 행위가 소영웅주의라면(물론 동의하지 않지만) 우리 학문공동체에 정말 이런 소영웅주의자가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반박했다.
강 교수는 "6.25, 주한미군, 연방제 통일, 주체사상, 김일성, 김정일, 민족자주, 평화협정, 정통성, 항일무장 투쟁, 민간인학살 등이 냉전성역이지만 6.25는 냉전성역 0순위로 성역 중의 성역이다"며 "이성적이라면 응당 이 냉전성역 0순위인 6.25에 대한 필자의 냉전성역 허물기를 색깔몰이할 게 아니라 밀어주고 끌어줘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섯째, 강 교수는 '미군정 여론조사가 왜곡'이라는 문제제기에 대해선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문제 삼은 <동아일보> 기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논란은 강 교수가 지난달 30일 서울대 토론회에서 "당시 조선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좋아했다. 1946년 8월 미군정 여론국이 전국의 84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지지 세력이 무려 77%였고 자본주의 지지는 겨우 14%였다"고 '각주'를 통해 밝힌 대목을 <동아일보>가 동일한 조사자료를 통해 "자본주의 14%, 사회주의 70%, 공산주의 10%(일부 자료엔 7%), 나머지는 '모른다'였다"고 반박하면서 시작됐다.
요컨대 <동아일보>는 실제 공산주의 지지율은 10%였음에도 불구하고 강 교수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조선사람들은 공산주의를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좋아했다"고 왜곡했다는 것.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이 여론조사는 필자가 이미 1989년에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에서도 인용할 정도로 오래된 것으로 이번에 처음 인용하거나 새로운 주장을 펼치기 위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고 '고의성'이 없었음을 주장한 뒤 "해방공간인 당시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동일한 것으로 인식했다"는 반박을 곁들였다.
여섯째, 강 교수는 자신에 대한 '사상검증' 요구에 대해 "남한의 공식적인 해석과 역사를 찬양일변도로 평가하지 않으면 친북과 색깔몰이로 낙인찍는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이러한 필자의 학문적 기준과 잣대는 지금처럼 친북이나 친공으로 매도되기 일쑤"라고 반박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지난 98년 <경제와 사회>에 실린 논문을 제시해 사상검증을 받았다"며 그 일부를 소개했다. 내용은 "변화된 조건 속에 우리가 추진해야 할 통일의 방향에 관하여 시론적인 수준에서 논하겠다. 첫째, 통일 경제형태는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한 자본주의적 경제 형태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중국형 사회주의를 포함한다. 이는 선택의 문제나 주관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데 따라 변화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행사하고 있는 객관적 규정력의 산물이다"는 것이다.
일곱째, 강 교수는 '6.25는 불법 침략전쟁이어서 통일전쟁론은 성립될 수 없다'는 비판에 대해 "통일전쟁론은 전쟁주체자의 전쟁목표를 기준으로 한 전쟁성격 규정"이라며 "따라서 6·25의 성격규정은 1950년 10월 7일자 유엔총회 결의 376호처럼 통일전쟁, 북한의 규정처럼 조국해방전쟁, 남한의 북진통일론처럼 통일전쟁 등이 있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전쟁목표를 기준으로 한 통일전쟁 성격규정과 국제법을 기준으로 한 침략전쟁 규정은 서로 배타적이 아니라 양립가능하다"며 "6·25를 남한의 공식 규정인 침략전쟁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통일전쟁이나 민족해방전쟁일 수 있으므로 침략전쟁을 통일전쟁으로 성격규정했기 때문에 정체성을 위배했다는 등의 주장은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라고 주장했다.
여덟째, 강 교수는 '통일전쟁론을 부정하기 위한 요건'의 불충분함을 들며 "6·25 통일내전론을 국가보안법이란 법의 잣대가 아니라 이성적이고 학문적으로 부정하려면 유엔이 유엔군의 38도선 이북 침공을 통일전쟁으로 규정했음을 의미하는 1950년 10월 7일자 유엔총회 결의안 376호를 폐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홉째, 강 교수는 "국제법적으로, 또 유엔의 규정에 따르면 6·25는 침략전쟁이 아닌 내전이다. 내전에서 전쟁주체자의 전쟁목적이 통일이었기에 통일전쟁"이라며 "국제법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것을 일방적으로, 또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보편주의 원칙과 요즘 금과옥조처럼 들먹이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열번째, 강 교수는 이 대목에선 "논증이나 설득이나 설명이 아니라 색깔몰이 일색으로 또 일부에서는 폭력몰이로 결판을 내고자 하고 여기에 공안당국마저 사법처리 운운하고 가세하는 기막힌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아울러 "의도하지 않게 강의에 차질을 빚고 대학 업무에 불편을 끼친 점 등 각종 사항에 대해 동국대 학생과 동국대학교 당국에 유감을 표한다"는 사과의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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