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당이 벌이고 있는 당내 자치단체장 후보경선에서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모두 자신의 텃밭에서 당 실세가 낙점한 대리인이 낙마하는 이변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전남지역은 당내 경선에서 승리를 한 후보가 무난하게 단체장으로 뽑힌 전례로 볼 때 도지사에서 기초 단체장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숫자의 단체장의 '물갈이'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남도지사 후보경선에서 허경만 현 지사가 박태영 전 산자부장관에게 패했다. 목포시장 경선에서는 전태홍 목포상공회의소 소장이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김흥래 전 행자부 차관을 물리치는 파란을 일으켰다. 광주시장 경선에서도 현직인 고재유 시장이 이정일 전 서구청장에게 밀려 민주당 후보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전남지역은 22개 시·군 기초 자치단체장 중 반수에 육박하는 10개 단체장 후보가 새로운 인물로 바뀌었다.
한나라당도 경기도 고양시장 경선에서 황교선 현 시장이 강석현 국회 정책연구위원에게 밀려났다. 당의 텃밭인 대구에서도 중구청장 후보경선에서 현직인 김주환 구청장이 지구당 부위원장인 정재원씨에게 고배를 마셨다. 공주시장 후보로 선출된 이준원 공주대 교수는 30대의 패기로 직능단체장을 지낸 유력 후보 두 사람을 당내 경선에서 제치는 이변을 나았다.
자민련의 아성인 충청지역에서도 김종필 총재가 직접 낙점하여 2차례나 군수를 역임했던 유병돈 현 부여군수가 김무환 충남도지부 사무처장에게 패배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홍성군수 후보경선에서도 공무원 출신인 채현병씨가 당이 미는 인물을 무찌르고 후보로 선출됐다.
***중앙당과 실세 입김 무력화**
각 당의 당내경선에서 일어난 자치단체장 후보선정의 이런 이변들은 크게 두 가지 특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중앙당이나 실세들의 영향력이 지방선거 후보 결정에 예전처럼 큰 힘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홍일 의원이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흥래씨의 패배가 그 좋은 사례다. 목포는 김대중 대통령과 여권 실세였던 권노갑 전 고문의 고향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게다가 김흥래 후보는 불공정시비가 일 정도로 홍일씨로부터 유·무형의 지원과 공개적인 지지표명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전태홍 후보에게 패한 것은 지역정서를 무시한 당 실세의 오판이 부른 결과라는 것이 현지여론의 분석이다.
또한 지역 재야단체의 신망까지 얻고 있는 전 후보가 승리한 것은 이전에 중앙당의 '하교'에 의해서 후보가 결정되던 자치단체장 선거가 당원이나 지역민이 직접 참여하는 상향공천방식으로 변화하면서 지역의 정서와 기반을 가진 인물들이 유리한 입장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신호로 읽힌다.
이는 지방정부가 점차 중앙정치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의 정치적인 정체성을 찾아가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직 단체장의 프리미엄 사라져**
둘째는 현직 자치단체장들이 누리던 프리미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식의 온정적인 지역선거풍토가 점차 선거직 공직자에 대한 냉정한 평가의 기회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직에서 금품수뢰나 친인척과 관련한 구설수, 특혜의혹 등으로 물의를 빚은 단체장들은 대부분 당내 경선 전에 스스로 연임을 포기하고 물러나거나 참신함을 앞세운 무명의 정치신인들에게 패배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특히 현직 단체장의 패배 중에는 지방의회에서 뛰어난 평판을 받은 시·군·구 의원들이나 하위 자치단체장에게 패한 사례가 늘어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이는 이들의 능력이 지방정부 내 활동에서 어느 정도 검증이 된 데 따른 유권자들의 반응으로 읽힌다.
참여연대의 손혁재 운영위원장은 이런 이변들에 대해 "우선은 대선 국민경선이 가져온 '아래로부터의 추대'라는 분위기가 지방선거에도 효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한 "관권의 선거개입이 점차 사라지면서 지역 언론이나 여론에 현직 인사의 능력이나 비리, 개인문제 등이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노출이 잘 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앞으로 단체장들은 (재선을 위해) 더 높은 수준의 능력과 도덕적인 기준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손 위원장은 또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경선에서 지구당위원장이나 지역구의원의 의도적인 영향력 행사가 없는 경우는 대부분 지역 민심이 원하는 인사들이 후보로 선출되는 분위기인 것 같다"고 분석하고, "이런 분위기는 대선의 향방을 알기 어렵고 국민들의 관심도 거기에 대부분 쏠린 상황에서 일어난 당내 권력공백이라는 중앙정치의 제한적인 상황이 일정부분 초래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으로 3번째를 맞는 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의 당내경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변들은 참신한 새 인물과 건전한 정치행태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요구가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뚜렷한 증거다. 이러한 민심의 변화가 실제 지방선거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또 대선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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