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 악착 같은 수비로 정평이 났던 독일 출신의 베르티 포크츠(59세)가 유력한 차기 한국 대표팀 감독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스코틀랜드 감독직에서 물러난 포크츠 감독은 "한국에 갈 경우 코치 3명을 대동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한국 감독 자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포크츠 감독은 2006 월드컵 개최지인 독일 출신 감독이란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2001년 이후 쿠웨이트, 스코틀랜드 대표팀을 맡아 부진한 성적으로 내리막 길을 걷고 있다는 게 걸림돌이다.
***포크츠, 네덜란드 토탈축구 무너뜨린 숨은 공로자**
1970년대 독일(당시 서독) 대표팀 수비수로 뛰었던 포크츠 감독은 '사냥개'란 별명답게 대인방어에 능한 선수였다. 포크츠 감독은 1974년 월드컵 결승에서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네덜란드 토탈축구의 사령관 요한 크루이프를 철저하게 봉쇄하는 게 포크츠의 임무였던 것.
네덜란드는 전반전 시작하자마자 크루이프가 얻어낸 페널티 킥에 힘입어 1대0의 리드를 지켰지만 그 뒤 포크츠의 그림자 수비에 크루이프의 발이 묶인 게 독일에게 1대2로 역전패 하는 빌미가 됐다. 독일을 우승으로 이끈 갈색 폭격기 게르트 뮐러의 극적인 결승골의 환희 뒤에는 포크츠의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가 숨어 있었던 셈이다.
당시 독일 대표팀의 헬무트 쇤 감독은 크루이프의 발끝에서 시작되는 네덜란드 토탈축구를 막기 위해 연습경기부터 포크츠를 치밀하게 훈련시켰던 것으로 훗날 밝혀졌다.
***'녹슨 전차'로 전락했던 독일 축구와 포크츠 감독**
포크츠는 1990년 월드컵 이후 베켄바워에 이어 독일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포크츠는 1990년 월드컵에서 독일을 우승시킨 베켄바워의 그림자에 한 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영국 <BBC>도 "당시 포크츠는 독이 든 성배를 물려 받은 것과 마찬가지였다"는 표현까지 할 정도였다. 마치 히딩크의 4강 신화라는 짙은 그림자에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는 한국 후임 감독들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포크츠는 199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독일을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세대교체에 실패하는 우를 범했고, 그 결과는 재앙으로 이어졌다. 독일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게 0대3으로 완패했다. 지난 30년간 월드컵에서 독일이 가장 큰 점수차로 패한 경기였다. 독일 축구는 이 패배로 '녹슨 전차'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고 포크츠도 독일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났다.
독일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포크츠는 그 뒤 독일 프로팀 바이엘 레버쿠젠, 쿠웨이트 대표팀에 이어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포크츠 감독, 한국에서 명예회복 할 수 있나**
스코틀랜드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 된 포크츠는 2004년 10월 홈 구장에서 펼쳐진 월드컵 예선에서 노르웨이에게 0대1로 패한 뒤 언론과 팬들로부터 강한 사임 압박을 받았다. 이날 경기는 스코틀랜드가 1985년 이후 홈 구장에서 벌어진 월드컵 예선전에서 처음으로 패한 경기였을 뿐 아니라 무기력한 경기 내용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명장 알렉스 퍼거슨(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과 그램 사우니스(뉴캐슬 감독)가 "현 스코틀랜드 축구의 문제는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에 있다"며 포크츠의 편을 들었지만 노르웨이전 패배 후 한 달 만에 포크츠 감독은 스스로 보따리를 쌌다. 포크츠 감독은 퇴임 당시 "소수 언론의 비난에 대다수 스코틀랜드 축구팬들이 동요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유년 시절 고아가 된 포크츠 감독은 외로움을 잊기 위해 축구에 모든 걸 쏟아 부었다. 축구 선수로서 천부적인 실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열정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는 게 독일 축구계의 포크츠에 대한 평가다.
포크츠 감독은"한국이 (월드컵에서) 유럽 팀들을 상대하려면 가능한 한 빨리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내가 한국 대표팀의 차기 감독이 되면 우리는 독일에서 많은 응원을 받게 될 것이고 골키퍼 코치 제프 마이어를 포함해 3명의 코치를 함께 데려갈 것"이라며 한국행에 발빠른 행보를 이미 시작했다.
대한축구협회는 2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술위원회를 열고 후임 사령탑 인선을 논의할 예정이다. 과연 포크츠 감독이 한국에서 '명예회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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