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베를린영화제 본선 경쟁부분에 올랐었고 지난달 말에는 전주영화제 개막작으로도 선정됐던 일본의 사카모토 준치 감독의 한일 합작영화'케이티(KT)'가 3일 국내에서 개봉돼, 흥행 성공 여부가 주목된다.
이 영화는 1973년 8월8일에 일어났던 '김대중 납치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영화제목 'KT'는 김대중대통령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긴다이주'의 약자로 영화 속에서 그를 언급할 때 쓰는 호칭이다. 또한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꾸민 암살작전(KILLNG THE TARGET)의 작전명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이 요즘 '3홍 비리'로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마당에 과연 국내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지가 의문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에 영화 홍보를 맡은 대행사가 처음부터 과도하게 'DJ매니아'만을 겨냥한 듯한 홍보 전략을 펴온 대목은 도리어 역작용을 낳지 않을까라는 관측을 낳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홍보사측은 지난달 DJ와 친분이 두터운 저명인사들은 초청해 첫 시사회를 여는가 하면, 전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이 작품을 넣는 등 상당히 '정치적 접근'을 해왔다. 지난달 30일에는 김 대통령과 함께 김대중이란 이름을 가진 이들을 초청한 이색시사회도 추진했으나, 김 대통령은 여기에 참석치 않고 청와대에서 비디오로 영화를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홍보 전술은 영화 내용과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김 대통령의 전기 영화나 당시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폭로해줄 작품으로 기대한 관객에게는 상당히 실망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DJ보다는 납치사건에 투입된 중앙정보부(KCIA) 요원들과 이들을 돕는 가상의 인물인 일본자위대 소령 토미타(사토 코이치 분)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11일 열린 국내 첫 시사회에 초청받은 한승헌 변호사, 장을병 정신문화연구원원장, 김영배 민주당의원 등 DJ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은 영화 속에서 DJ의 비중이 적은 대목에 적잖이 아쉬워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영화는 도입부에서는 빠른 속도감으로 극을 진행하며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지령을 내려 중앙정보부(KCIA)가 납치를 시도했고 일본 정부도 묵인 내지는 협조를 한 것을 기정사실로 설정하여 이 사건에 대한 기존의 추측 외에 새로운 사실을 폭로하려는 의도는 없음을 일찌감치 보여준다.
이후 픽션과 사실이 뒤엉키며 전개되는데, 한국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끔찍한 고문을 당한 경험이 있는 유학생을 애인으로 둔 자위대의 정보장교 토미타가 상부의 명령을 받고 한국 중정요원인 김차운(김갑수 분)과 함께 DJ를 암살하기 위한 공작에 가담하며 겪는 여러가지 갈등과 동화 과정이 에피소드 중심으로 나열된다.
일본인인 토미타의 시각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당시 DJ의 정치적 입지나 한국의 정치상황보다는 일본에서 일어난 한국정치인에 대한 납치사건에 왜 일본자위대의 정보장교와 재일동포들이 연루돼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이는 이 영화가 사실상 일본에서 처음부터 기획되고 제작된 영화로, 한국측은 뒤늦게 제작비 일부와 한국인 배우섭외 정도의 역할만을 해준 결과다.
납치작전의 전개과정을 묘사하면서 그런 대로 긴장감을 주며 전개되던 이 영화의 치명적 약점도 일본인이 제작 주체였다는 대목에서 발생한다. 극우파인 중정요원들이라면 당연히 일본의 36년간에 걸친 조선지배에도 반감을 가질 것이라는 사카모토 감독의 상상은 마치 중정간부들이 명성황후 시해와 식민지시대에 분노하는 민족주의자들인 것처럼 묘사해 관객의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우리나라의 극우파가 친일파와 맥을 같이 한다는 한국의 정치사를 알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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