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설훈 의원이 궁지에 몰렸다. 빌라게이트를 처음 폭로, '이회창 대세론' 침몰에 결정적 공헌을 했던 '저격수' 설 의원의 탄창에 총알이 떨어진 것일까.
19일 설 의원은 "최규선씨가 윤여준 의원을 통해 이회창 전 총재에게 2억5천만원을 줬다"고 주장해 정가에 큰 파문을 던졌다. 하지만 오히려 한나라당의 강력한 역공을 불러일으켰을 뿐 얻은 게 없다.
윤여준 의원과 이회창 전총재 측의 고소고발, 윤 의원의 농성과 조건부 의원직 사퇴서 제출, TV 토론 제의, 한나라당 장외투쟁 등 역풍이 거세다. 하지만 설 의원은 공개하겠다던 녹음테이프와 증인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직 설 의원은 자신만만하다. 23일에도 "테이프가 나오면 모든 게 밝혀진다"며 "갖고 있는 사람과 현재 간접적으로 통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최후의 순간까지 설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본인이 테이프를 들어보지도 않고 폭로한 데 대해서는 "경솔했다"고 인정,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물론 전격적으로 증인이 나서고 녹음테이프가 공개돼 이회창 전총재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현시점까지는 "설 의원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가뜩이나 악재가 산적한 여권에 또 하나의 화를 자초한 상황이다. 왜 이런 무리수가 나왔을까.
***궁지 탈출 노리는 조바심이 화를 자초했다**
우선 '3홍 비리의혹'과 청와대의 잇따른 게이트 연루설 등으로 궁지에 몰린 권력핵심의 조바심이 배경이 되었을 수 있다.
설 의원이 빌라게이트를 폭로한 것도 아태재단 이수동 전 이사의 고위층 인사청탁 파문 등 DJ 지근범위 인물들의 비리 의혹이 불거진 때였다. 자칫 아태재단 게이트로 비화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역공을 펴 상황을 극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대통령 아들을 향한 직격탄이 퍼부어지는 각종 비리 의혹 공세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조바심이 이 같은 무리수를 낳았을 것이란 해석이다.
설 의원의 폭로 이후 밝혀진 사실이지만 최규선씨가 여야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했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윤여준, 홍사덕 의원 등 한나라당 중진들과 수시로 접촉했다는 것도 확인된다.
그렇다면 이런 정황만 적절히 폭로해 가면서 최규선 게이트를 여야 모두가 연계된 사건으로 '물타기'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설 의원 쪽의 지나친 조바심 때문에 한발 더 나가 '2억5천 수수설'로 확대시키면서 야당의 역공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정보기관 연계설 퍼져**
또 하나 정가에서 지적되는 것은 정보기관 연루설이다.
설 의원은 19일 국회가 열리고 있는데도 면책특권을 받을 수 있는 국회 발언이 아니라 당사 기자실 기자회견을 통해 '최규선-윤여준-이회창 연계설'을 주장했다. 그만큼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설 의원에게 이런 정보를 제공한 쪽이 '믿을 만한 기관' 아니냐는 설이 유포되고 있다.
"지난번 빌라게이트 때도 정보기관에서 정보를 제공받았을 것이다. 그때 톡톡히 재미를 본 설 의원이 이번에도 같은 쪽에서 정보를 받고 무조건 확신해 버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국정원, 경찰, 청와대 사정팀 등 사정기관의 정보망이 권력 핵심의 여당 의원들과 연계돼 각종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그동안 정가에서 기정사실처럼 인식되어 왔다. 과거엔 이러한 커넥션이 '공작정치'의 산실이 되곤 했다.
지금은 '공작정치'적 측면은 많이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보 연계망 만큼은 여전히 존속되고 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번 경우 역시 그런 연계망이 가동되면서 시작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크다.
***설훈 의원, 모든 것 공개해야**
어쨌든 설훈 의원은 공격을 폈지만 오히려 수세에 몰린 형국이 됐다. 검찰은 윤여준 의원과 이회창 전총재 측의 고소사건에 대해 25일 고소인 조사를 시작으로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녹음테이프와 증인을 내놓지 못하면 정치적 책임은 물론 사법적 처리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모든 것은 설훈 의원에게 달렸다.
그간의 경위야 어땠든 자신이 정보를 확보하고 폭로하게 된 전과정을 소상히 밝혀야 할 것이다. 우리 정치 고질병의 하나로 지목되어 온 '무차별 폭로' '정보기관의 정치 관여' 근절 차원에서도 설 의원에게 떠맡겨진 짐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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