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통일축구' 경기와 북측의 현충원 참배 등으로 14일은 남북한이 하나 되는 날이었다.
***관중들, 북한팀이 공 잡을 때 더 큰 환호**
○…이날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 행사에 이어 열린 남과 북 통일축구 경기에서 경기장을 가득 메운 7만여 명의 관중들은 남측과 북측 선수들이 전광판으로 소개될 때마다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고 연신 한반도기를 흔들며 두 팀 선수들의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에 화답했다.
많은 관중들은 전후반 내내 경기를 지배한 남측보다 오히려 북측 선수들이 공을 잡고 빠른 돌진을 할 때 더 크게 환호했다.
남측이 전반에 먼저 2골을 넣자 "제발 북측도 한 골 넣어라"는 구호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기도 했다.
○…남측은 후반 23분 박주영이 김진규의 칼날 같은 침투패스를 가볍게 오른발로 차 넣어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었다. 북측은 후반 막판 두 차례 프리킥으로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지만 끝내 남측의 골문을 열지는 못했다. 후반 36분 북측의 프리킥이 골대를 맞고 나오자 관중들을 아쉬움의 탄식을 연발했다.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남북 통일축구 경기에는 가족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관중들의 한결같은 바램은 통일된 조국에서 이 선수들이 단일팀으로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성산동에서 가족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한 관중은 "두 팀이 경기를 하는 걸 보니 빨리 단일팀으로 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대축전 행사의 모토가 '원 코리아'인데 축구 경기를 보니 아직 남측과 북측은 분단국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 행사를 통해 북측이 현충원도 참배하는 등 통일에 한 발 가까워진 느낌이라 기분은 좋다"고 밝혔다.
○…이날 경기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 것은 관중들만이 아니었다. 남측 국가대표팀의 본프레레 감독은 좀처럼 입지 않던 양복을 입고 경기장에 나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본프레레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오늘은 남측과 북측이 통일축구를 하는 날이기도 하고 내일이 한국에 국가적으로 매우 특별한 날이기 때문에 양복을 입었다. 경기결과 때문에라도 이제 양복을 입어야겠다"고 말해 기자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일반 시민들 '北 현충원 참배'에 "민족 장래에 유의미" 크게 반겨**
○…이날 개막식에 참석한 시민들은 '북측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에 대해서도 8.15 대축전의 열기만큼이나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통일에 한 걸음 다가간 것으로 민족의 장래에 유의미한 사건이라는 환영의 목소리였다.
개막식과 남북 통일축구를 모두 지켜보고 상기된 표정으로 상암경기장을 나서던 30대 직장인 이승익 씨는 "이제 통일이 다가오고 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이 씨는 "북측이 현충원 참배를 먼저 제안했다는 것은 통일에 다가가려는 북측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이라며 "이번 축전을 통해 우리 국민이 한 단계 성숙하고 통일을 고민하는 진지한 시간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한팀을 응원하기 위해 부천에서 직접 왔다는 50대의 한 여성은 "남북한 화해의 첫 걸음을 내디딘 의미있는 일"이라며 "이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말로만 화해하지 말고 진정한 화해와 남북이 하나 되는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대학생인 윤수현씨도 경기장을 나서며 "현충원 참배는 통일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자신을 초등학교 교사라고 소개한 한 시민은 "진정한 아픈 역사를 어루만지려는 노력의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북측의 현충원 참배를 바라보는 시각은 외국에서 온 교포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60대의 한 재미교포는 "민족의 장래에 좋은 일"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고국을 잠시 방문하는 동안 민족대축전 개막식을 보기 위해 일부러 상암 경기장을 찾았다는 그는 이날 개막식 열기만큼이나 환한 미소를 지었다.
***사소한 해프닝으로 끝난 보수 단체 집회...'대세'에 전혀 지장 없어**
○…이날 상암 경기장 안에선 남-북-해외 동포 등 7만여 관중이 운집해 흥겨운 민족잔치 한마당을 벌이는 가운데 경기장 밖에선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반대집회를 벌이기도 했지만 '대세'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대축전 개막식에 앞서 참가자들이 강변북로 진입로에서부터 상암 경기장에 이르는 1km의 행진을 마치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간 뒤 경기장 동문 근처에서는 경찰 병력이 시위를 벌이는 20~30명의 보수단체 회원들을 둘러쌌다.
○…이날 낮 현충원 앞에서 북측 대표단 참배를 막기 위해 '사죄 없는 참배 허락할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기자회견을 하려다 경찰에 연행됐던 '무한전진' 등의 보수단체 회원들은 자리를 옮겨 상암 경기장 앞에서도 기자회견을 시도했으나 역시 저지됐다.
그 과정에서 개막식에 참석하려던 시민들과 이들 보수단체 회원들 사이에 한때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행사 진행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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