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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는 '권력유착', 출구는 '대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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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는 '권력유착', 출구는 '대화합'?

<기자의 눈> 광복 60주년의 '아주 특별한 사면'

화해, 관용, 국민화합, 사회통합…. 12일 발표된 '8.15 대사면' 조치에 동원된 화려한 수사들이다. 전국민의 10%에 가까운 422만명이 통치권자의 결단으로 죄 사함을 받은 '대화합'의 날에 딱 들어맞는 단어들이다.

택일도 금상첨화다. 마침 거대권력들의 유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안기부 'X파일' 사태와 '밀실야합'의 상징인 민자당 탄생의 비사를 털어놓은 '박철언 회고록'이 신문지면을 대대적으로 장식한 날에 이뤄졌으니 말이다. '권력유착', '부정부패', '뒷거래'의 예정된 출구는 '대화합'이라는 정치권의 공식을 보란 듯 드러낸 기념할만한 사면이다.

***부패비리와 대화합은 동전의 양면?**

구속 당시는 물론이고 수감 중에도 끊임 없이 기사거리를 제공했던 정대철 전 의원은 사면의 날에도 여지없이 으뜸 관심대상이었다. '수뢰죄'로 받은 5년 형기의 3분의 1도 채 마치지 않은 그가 통치권자의 은전을 받을 수 있었던 '비법'은 아무래도 나머지 422만명의 그것과는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정대철 한사람의 사면을 위해 422만명을 끼워넣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걸 보면 그가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이라는 비공식 직함을 지닌 거물임에 틀림없는 모양이다.

정 전 의원 덕택에 여권의 이상수 신상우, 야권의 김영일 신경식 최돈웅 김종필 이한동 전 의원 등 쟁쟁한 인사들은 치러야 할 곤욕을 좀 덜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들 중에는 '차떼기'의 주역들도 있고, 조만간 선거에 출마한다는 설이 들리는 사람도 있고, 민자당 '3당 합당' 트로이카 중의 한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화합'이라는데 무슨 트집을 잡을까.

언제는 안 그랬나. 87년 노태우 후보 측에 제공한 비자금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97년 10월3일 개천절 특사를 받고선 나흘 후인 10월7일 또다시 불법자금 제공을 진두지휘했다. 이상호 X파일이 폭로한 그해 10월7일의 기록에 따르면 그렇다. 하기에 권력유착은 대화합으로, 대화합은 그 즉시 또 다른 유착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게 아마도 그네들의 방식인 듯한데 새삼 무엇을 탓할까.

***자기편 빠지면 원칙 없는 사면?**

물론 가끔은 유착과 대화합의 순환이 제대로 안돼 불만이 나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12억원의 추징금 미납으로 사면에서 누락된 서청원 전 의원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추징금을 미납했지만 사면됐었다"고 따지는 걸 보면 그렇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여당인사에 편중된 사면"이라고 볼멘소리를 하는 것도 실은 "누이 좋고 매부 좋자고 하는 일인데 왜 우리편은 몇 명 뺐느냐"는 얘기 아닌가?

이해가 된다.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던 사면법 개정안을 슬그머니 9월 정기국회로 미루면서 광복절 '대화합'에 동참하려던 계획에 일정 정도 차질이 빚어졌으니 야당으로선 배가 아플만도 하다. 하지만 야당도 참아야 하겠다. 최측근이라는 안희정 최도술씨가 이번 사면에서 자진 탈퇴했으니 노무현 대통령의 심기는 오죽할까 생각하면 참는 데에 도움이 될 법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 아들, 홍업 홍걸씨는 사면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빠진 것은? 홍업 홍걸씨는 "김대중 전대통령이 고령이라는 인간적 측면이 고려"됐고, 현철씨는 "형이 확정되지 않아서"라는 명쾌한 설명이 있으니 'DJ 달래기'니 뭐니 하는 말도 접어두는 게 좋겠다. 이도 저도 다 억울하면 다음에 집권하면 될 일이다.

***X파일 권력유착은 어찌될까?**

어쨌건 이번 사면은 여러 모로 교훈을 줬다. 요즘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개탄을 금하지 못하는 'X파일' 사태도 권력유착이 그 본질인 만큼 언젠가 대화합으로 고결하게 승화될 것이라는 예상을 해봄직하다. 따라서 불법도청 테이프에 대한 수사를 얼마나 할 것이며 공개는 또 얼마나 할 것인지 모르지만 이런 정치권의 생리대로라면 머지않아 적당히 눈감아줄 것을 요구해올 때도 있을 것이다.

또한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이 입바른 말처럼 신성한 권리인지도 오늘 하루 정도는 회의를 품어보자. 국민은 뽑고, 뽑히면 부정을 저지르고, 들켜서 잠시 옥살이를 하다보면 살아남은 그들의 동료들이 국민은 손쓸 여지도 없이 '대화합'의 선처를 베풀어 구제해주니 말이다.

지금까지는 너무 열 받지 말자고 한 얘기다. 오늘은 '검은 거래'에 열 받고, 내일은 '그들만의 대화합'에 또 열 받아봐야 느는 것은 술뿐이다. 광복 60주년 8.15에 그래서야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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