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축구팀 히딩크요? 기분은 좋지만 한국 여자축구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지난 주 막을 내린 동아시아 여자축구 선수권대회에서 뛰어난 지도력으로 세계적 강호 중국, 북한을 연파하고 우승을 차지해 화제가 된 여자 축구대표팀 안종관 감독과 10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2003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 여자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3위로 끌어 올려 한국 여자축구 사상 첫 월드컵 본선진출을 이끈 안종관 감독은 올해 5월 다시 여자대표팀 감독이 된 뒤 성공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안 감독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감독할 때와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그때는 다른 종목에서 축구로 전향한 선수들이 많았지만 지금 대표팀엔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경험한 선수들이 대부분"이라고 운을 뗏다.
안 감독은 "동아시아대회를 앞두고 훈련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날씨가 덥고 부상선수도 많아 차연희, 김결실 등 체력이 뛰어난 선수들에게 멀티 플레이어가 돼 줄 것을 지시했는데 결과가 좋게 나와 기쁘다"라고 밝혔다.
멀티 플레이어와 함께 안종관 감독의 용병술은 대회 우승에 고비가 됐던 북한전에서 빛을 발했다. 후반 21분 교체투입된 박은정이 천금의 결승골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안 감독은 "스트라이커 한송이가 많이 뛰어 박은정의 기용을 생각하고 있었다. 과감한 슈팅이 돋보이는 박은정을 한 방이 꼭 필요할 때 조커로 쓰려고 미리 준비했습니다"라며 박은정이 준비된 교체카드였다는 점을 피력했다.
안 감독은 또 "여자 대표팀 성적이 나야 실업팀들도 많이 창단되는 등 여자 축구의 기반이 강화될 것이란 점을 선수들에게 주지시켰다. 이 때문인지 선수들의 정신적인 무장이 잘 됐던 것도 우승의 원동력이었다"고 밝혔다.
안 감독은 이어 "파주에 모여 훈련할 때는 새벽에 기초체력 훈련을 하고 오전엔 전술훈련에 집중했습니다. 연습경기도 하며 안 된 부분은 계속 반복해서 훈련했다.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조직력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고 대회 첫 경기에서 중국을 이겨 자신감도 붙었다"고 덧붙였다.
안 감독은 여자 축구대표팀 전임감독제에 대해 "전임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남자처럼 대회가 많지 않아 아직은 쉽지 않을 것 같다. 협회에서도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겠지만 올해에도 여자 대회는 동아시아대회 하나밖에 없어 여자팀 감독이 많은 연봉을 받는 전임감독이 되는 게 현재로선 맞지 않습니다. 다만 여자팀이 A매치 경기를 자주 치러야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서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보면 전임감독제가 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안 감독은 자신이 '1988년부터 89년까지 남자대표팀 선수로 뛰었지만 잘하지 못하는 선수'였다고 말했다. 대통령배 국제대회에 나간 게 고작이고 그나마 무릎 부상으로 일찍 현역에서 은퇴해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됐다는 것.
1994년 여자 실업팀 INI 스틸 코치를 거쳐 97년 정식감독이 됐던 안종관 감독은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축구뿐만 아니라 때로는 가정사를 포함한 개인적인 얘기도 자주 합니다. 결국 원활한 대화를 통해 얻어지는 선수와 감독 간의 신뢰가 제일 중요하다"고 자신의 지도자 철학을 내비쳤다.
안 감독은 "여자는 남자 선수들과 달라 기초훈련과 전술훈련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유럽 선수들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기 위해 유럽 전지훈련도 필수적이다"라며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안 감독은 동아시아대회에서 우승을 했지만 한국은 여자축구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에서 26위로 아시아에서 아직 4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여자팀 히딩크'란 별명이 붙어 기분은 좋습니다. 하지만 한국 여자축구는 아직 아시아 4위에 불과합니다. 여자 축구를 정책적으로 밀고 있는 북한이나 중국, 일본에 비해 선수층도 얇고 지원도 부족해 갈 길이 아직 한참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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