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미림팀' 공운영 씨의 자택에서 압수한 도청 테이프 274개에 대한 수사 여부를 두고 검찰 수뇌부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274개의 테이프를 겨냥해 여당의 특별법과 야당의 특검법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쉽사리 수사 착수 여부를 결론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74개 테이프 내용 '수사 가능'-'수사 불가능' 검찰 내부 의견 팽팽**
우선 '위법한 방법에 의해 수집된 증거는 사용할 수 없다'는 독수독과(毒樹毒果)론이 검찰 내부에서 상당한 논란을 빚고 있다.
일선 지검의 최고위급 수사 책임자는 최근 이 이론에 근거해 "테이프 내용은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고, 검찰 내부에서도 이와 같은 입장이 다소 우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도청이 이뤄진 시점이 93년 3월~97년 11월일 경우 공소시효가 완료된 위법행위에 대한 수사 착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10여 년 전의 위법 행위에 대한 물증 확보도 쉽지 않기 때문에 자칫 사회적 혼란만 일으키고 실체적 진실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 "이번 사건에는 '독수독과론'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다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불법 도청물을 직접 증거로 사용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수사 기법의 문제일 뿐 기소가 가능한 사건에 대해서는 위법 행위를 인지했을 때 당연히 그것을 단서로 삼아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정-경-언-검의 유착 관계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을지 모르는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해 이번 기회에 검은 유착 관계를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도 검찰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검찰은 그동안 누누이 "국민적 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처벌 여부에 관계없이 진상을 밝히겠다"고 강조해 왔다.
***특별법-특검 추진 정치권, 검찰서 '판도라의 상자' 빼앗아 갈 수도**
정치권의 특별법-특검 진행 과정도 검찰에게는 테이프 내용 수사 착수 및 시기 결정에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어차피 특검이든 특별법이든 테이프 내용 공개의 주도권을 정치권이 쥐게 된다면 검찰이 앞서 나갈 필요가 없다는 풀이다.
이와 관련 한 법조계 인사는 "검찰이 테이프 내용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경우 전체 내용을 공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수사가 가능한 일부 위법 행위에 대해서만 수사를 한다면 오히려 '표적수사'라는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난감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에 앞서 변수는 더 있다.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특별법은 테이프의 공개 주체는 제3의 기구로 하되 수사주체는 검찰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검찰이 기초적인 수사를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다, 특별법이든 특검이든 법률안이 통과돼서 실체적인 팀이 꾸려지기까지는 1달 이상이 걸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검찰로서는 274개의 테이프를 마냥 끌어안고만 있을 수도 없다.
현재 정치권에서 진행하고 있는 특별법-특검 논의에서 여.야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데에다, 의견 조율에 성공하더라도 9월 정기국회에서나 법안 처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여 검찰로서는 그때까지 정치권 논의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것.
게다가 검찰이 테이프 공개나 수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미루는 모습을 보이다 정치권에 테이프 수사의 주체를 빼앗길 경우 정치적 독립을 주장하던 검찰의 이미지에 훼손이 올 것이라는 주장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검찰은 각계 인사의 의견을 수렴하는 동시에 정치권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 조만간 테이프 내용에 대한 수사 착수 여부를 결론짓는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져 검찰이 과연 스스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