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X파일', '대연정' 등 정치권의 양대 현안에 대해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물밑 움직임이 주목된다.
***"불법 도청이라는 형식논리에 빠져선 안돼"**
'X파일' 문제와 관련해 최근 김 장관은 법적 논란을 피하면서도 테이프 내용을 공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고 열린우리당 안팎의 측근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김 장관은 안기부 테이프 공개의 법적 걸림돌이 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의 예외조항을 꼼꼼히 챙기는 한편, 불법 공개 시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는 열린우리당이 2일 추진키로 한 '국정원 불법도청 테이프에 관한 특례법'(가칭)과는 다른 맥락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현재 우리당이 만들겠다는 특별법은 테이프의 공개 여부를 논의할 소위 '제3의 민간기구'의 설치 근거와 구성방식, 사후 처리에 관한 절차와 특례를 규정하는 수준이다. 요컨대 기구 구성 절차와 관련된 특별법일 뿐 최종적인 공개 여부에 대한 강제력은 결여돼 있다. 열린우리당 스스로가 이 테이프들의 공개 여부를 아직 결정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특별법안의 성안을 맡은 이은영 의원도 "제3의 민간기구는 우리나라의 법정신을 해석하는 역할을 하는 기구로 이 기구에서 공개 여부가 결정되더라도 '강제'보다는 '권고' 수준으로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병호 의원도 특별법이 테이프 공개를 위한 수순밟기가 아니냐는 해석에 대해 "공개 여부에 대한 우리당의 판단은 들어가 있지 않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에 반해 김 장관 측이 생각하는 특별법은 국민적 혼란은 최소화하면서도 X파일 내용이 담고 있는 사회적 부패 비리상은 공개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의 한계를 새 특별법으로 해소함으로써 검찰이 법적 정당성을 갖고 테이프를 공개토록 하자는 것이다. 우리당 지도가 테이프의 공개 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시 없이 제3의 민간기구를 통해 에둘러 가는 방식을 취했다면, 김 장관측은 검찰이 법적 시비를 핑계로 테이프의 공개 문제를 회피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압박의 성격이 강하다.
김 장관은 정치권이 불법 도청이라는 형식논리에 빠져 권-경-언 유착이라는 X파일의 본질을 놓지고 있는 게 아닌지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재야파의 '테이프 공개론' 탄력받을까**
물론 김 장관이 이를 직접 구체화시키거나 당에 명시적인 제안으로 내놓을지는 불투명하다. 당의 의사결정에 김 장관이 직접 개입하기에는 난처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X파일 문제에 접근하는 김 장관의 기본 태도는 소위 '재야파' 의원들과 일맥상통해 당내 '테이프 공개론'의 강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당내 재야파의 수장격인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은 "국가의 안전보장, 남북관계 문제, 사생활 침해 문제를 제외한 정경유착, 권언유착은 시원스럽게 공개해야 한다"고 이미 주장한 바 있다.
장 위원은 "사생활 침해 등을 제외하면 테이프를 공개해도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본다"며 "우리당 특별법에서도 민간기구가 테이프 공개 여부를 강제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만드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인영 의원도 "X파일 문제는 덮을래야 덮을 수 없는 문제"라며 "(삼성 X파일을 통해) 드러난 의혹, 명백한 불법에 대해선 공소시효가 남아 있으면 처벌해야 하고, 나머지 274개의 테이프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공개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연정 문제는 선거구제 개편에 주목해 신축적 대응**
김 장관은 또 다른 현안인 연정 문제에 대해서도 '재야파'와 물밑 교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지역구도 극복이라는 대통령의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한나라당과의 연정에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앞서 김 장관은 7월 초 연정론이 최초로 제기됐을 때 "대통령은 영향력을 가진 당원이기에 그 말씀을 경청하고 주목할 수밖에 없지만, 대통령이 했으니 그대로 가자고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당의 독자적인 판단을 주문했었다.
당 관계자에 따르면 "김 장관은 한나라당과의 연정에는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대연정 자체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만큼 향후의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이 휴가 후 내놓을지 모를 진전된 연정 구상에 대해 김 장관측이 다각적 검토와 대비를 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김 장관의 이런 행보는 '라이벌'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베일에 싸인 행보와는 사뭇 다른 측면이기도 하다.
정 장관측은 "정 장관은 정치 문제에 대해선 일절 의견을 내지 않는다. 생각이야 있겠지만 어떤 말을 하는 순간 논란에 휘말려들기 때문이다"면서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물론 김 장관측도 최근의 각종 현안에 대한 공식 입장은 "지켜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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