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마침내 우승은 했지만 웬일인지 울고만 싶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마침내 우승은 했지만 웬일인지 울고만 싶소"

[화제의 신간]<끝나지 않는 신드롬>, 손기정에 투영된 스포츠민족주의

스포츠는 민족적 저력의 잣대로 이해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억압 받고 있는 민족에겐 자신의 존재가치를 외부에 표출하려는 처절한 '몸짓'이 된다.

'우리는 단순한 축구클럽이 아니다'라는 모토를 지닌 스페인 프로축구의 바르셀로나가 좋은 예다. 프랑코 독재정권에 의해 언어와 자치권을 뺏기는 등 억압을 받은 카탈루냐인들은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모두 바르셀로나 팀에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도 한국인의 민족적 울분을 자긍심으로 바꿔주는 하나의 촉매제가 됐다. 당시 한국 민중들은 충분히 준비된 민족주의적 관중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하 한국의 민족적 에너지를 촉발시켰던 손기정**

<끝나지 않는 신드롬>의 저자 천정환은 스포츠를 통해 일제강점기 민초들의 애환이 어떻게 민족적 에너지로 분출됐는가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저자가 주목한 스포츠 민족주의의 표상은 손기정이었다.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출발 시간이 가까워왔다. <동아일보> 사옥 앞 라디오 스피커에서는 NHK 아나운서 야마모토의 말이 속사포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중략) 드디어 운명의 출발시간 1936년 8월 9일 밤 11시 2분, 베를린은 오후 3시 2분. 라디오 스피커에서 "탕" 하는 출발 신호 총소리가 들렸다.

스타디움에 모인 10만 관중의 함성이 '우웅' 하는 둔중한 소리로 흘러나왔다. 광화문 인근의 조선인들도 "와!" 하는 함성과 함께 혹은 팔을 쳐들고 혹은 우산을 아래위로 흔들며 "손기정!", "남승룡!"을 외치기 시작했다.

저자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낸 '국민적 영웅' 손기정 신화의 시작을 이렇게 전했다.

***"마침내 우승은 했지만 웬일인지 울고만 싶소"**

저자는 손기정이 금메달을 딴 뒤 일본 언론과 한 인터뷰 내용과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을 비교했다.

일본과의 인터뷰에서 손기정은 "정정당당히 싸워서 결국 승리의 월계관을 조국으로 가져가게 되옴을 기뻐하오며 고국의 여러분께서 성원해주신 힘인 줄 아옵고 간단하나마 이것으로 인사를 대신합니다"라고 말했다. 손기정은 그러나 <조선일보> 김동진 도쿄지국장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우승했다고 반겨하는 축하하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눈물만 앞섭니다"라며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해 계속 떠듬떠듬 이야기했다.

<조선일보>는 인터뷰 기사의 제목을 '세계 제패한 영웅의 가슴도 뜨거운 흥분 식자 쓸쓸한 애수, 마침내 우승은 했으나 웬일인지 울고만 싶소'로 뽑았다. 왜 손기정이 훗날 해방의 기쁨을 설명하며 "조국의 땅 위에서 달릴 수 있는 젊은이들은 행복하다"고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는 "손기정은 오래 준비된, 바로 그 스포츠를 매개로 한 문화민족주의의 정화였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숭고한 영웅과 높이 펄럭이는 깃발, 그리고 아름답고 장중한 노래와 의식을 필요로 한다. 대중문화는 표상과 의례를 제공하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다. 영화와 연극, 대중매체는 모두 손기정이라는 영웅의 탄생과 신드롬의 확산에 단단히 한 몫을 했다"고 썼다.

지난해 5월 일본의 우익편향 언론 <산케이신문>의 스포츠 자매지인 <산케이스포츠>는 손기정을 "마라톤왕국 일본의 첫 금메달리스트다. 생가가 가난했던 손기정이 할 수 있는 놀이는 달리는 것뿐이었다"고 써 국내언론으로부터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다. 손기정의 금메달을 둘러싼, 피할 수 없는 한국과 일본의 시각차가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끝나지 않는 신드롬>은 친일과 반일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스포츠 영웅에 대한 대중들의 열망에 초점을 맞췄다. 1930년대 평범한 한국인들이 손기정의 금메달 획득에 어떻게 기뻐하고 반응했는지 자료를 통해 제시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손기정 금메달의 뒷얘기를 통해 독자들이 당시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