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반 발 양보'안을 내놨다. 19일 이 총재는 기자회견을 갖고 '2단계 총재권한대행체제'라는 다소 복잡한 수습안을 제시했다. '총재직을 내놓겠다'는 '한 발 양보'가 아닌 '총재직은 갖되 권한대행체제로 간다'는 '반 발 양보'안이다.
'2단계 총재권한대행체제'는 우선 조만간 대선후보 출마선언을 하면서 곧바로 총재권한대행을 지명, 자신은 당무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5.10 전당대회에서 실시될 총재 경선에는 직접 출마, 총재로 재선출되면 즉각 당을 총재권한대행체제로 전환, 당 의사결정을 새로 구성될 총재단 합의에 위임하겠다는 방안이다.
이 총재는 "지난달 27일 당 중앙위 운영위원회에서 확정된 당헌을 다시 고치지 않고 그 틀 안에서 (집단지도체제) 운영의 묘를 살리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총재 측근들은 "이 총재가 총재경선에 출마하지 않을 경우 차기 당권을 노리는 부총재 출마예정자들이 총재 경선에만 몰려 부총재 경선이 무산되는 등 당내 경선이 큰 혼란을 겪을 가능성을 막고 당의 안정을 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덧붙였다.
***비주류 주춤하자 '반 발 양보안' 내놓아**
그러나 "총재직을 놓지 않고 당을 섭정하겠다는 뜻"이라는 비판론이 벌써부터 대두되고 있다.
그간 김덕룡 의원과 당내 소장파 등 비주류와 개혁파 의원들은 대선전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요구해 왔고, 특히 최근 민주당 국민경선이 국민적 시선을 모으면서 이 총재의 제왕적 이미지에 대한 반감이 높아져 '총재직 포기'라는 고강도 처방이 나올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이 총재는 '현 당헌 내에서 운영의 묘'라는 명분 아래 '총재권한대행체제'안을 내 놓았다. 이 총재의 이러한 선택에는 대략 세 가지 배경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 이 총재 측이 밝힌 대로 '당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고려다. 둘째 "비주류의 권력분점 요구에 너무 쉽게 밀려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식이다. 그리고 셋째 박근혜 의원 탈당으로 고조되었던 신당 창당 바람이 다소 주춤거리고 있다는 상황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세 가지 배경은 서로 얽혀 있다. 비주류의 힘이 주춤함에 따라 '반 발 양보'안으로도 수습해 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을 내리게 되었고, 대폭 양보할 경우 이번엔 당 주류 측에서 오히려 분란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식의 논리다.
***공은 비주류 쪽에 넘어 갔다**
이제 공은 비주류 쪽에 넘어 갔다.
비주류 측은 일단 이 총재 수습안을 비판했다. "결단을 촉구했으나 기대에 못미치는 수준"(김덕룡), "총재의 사태인식이 너무 안이하다. 부총재 사퇴를 검토하겠다"(이부영), "총재가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발상"(김원웅)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곰곰히 뜯어 보면 무작정 반발만 할 수도 없는 처지다.
탈당을 기정사실화하고 시기를 저울질하던 김덕룡 의원은 최근 당내 세력규합에 실패하며 행보를 늦추고 있다. 부총재직 사퇴 카드를 던졌던 강삼재 부총재는 그 이후 한마디 말도 없이 잠행하고 있다. 서울시장 경선을 거부했던 홍사덕 의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계개편 움직임도 힘을 잃고 있다. 특히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돌풍이 일면서 '영남후보론'을 매개로 했던 각종 정계개편 추진파들은 일단 민주당 경선 결과를 지켜본 이후로 행동을 미루어 둔 상태다.
비주류 측이 이 총재의 수습안을 즉각 거부하고 탈당을 감행하기에는 여건이 충분치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총재 수습안을 전폭 수용하면서 당 경선 참여로 선회하기에는 수습안이 미흡하다.
집단지도체제 즉각 도입 뿐 아니라 이 총재 측근의 부총재 경선출마 포기도 얻어내지 못했다. 이 총재는 `측근정치' 폐해 논란과 관련, "가신정치, 측근정치, 밀실정치는 한국정치에서 사라져야 할 구태정치의 표본으로 측근을 빙자한 불공정 행위를 한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면서 "그러나 특정인이 출마하는데 대해 총재가 지목해서 나오라 말라 하는 것은 민주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얻어낸 것도 없는데 수습안에 승복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탈당을 감행하자니 정치적 상황이 어렵다. 이제 비주류의 고민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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