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 결정을 위한 당 경선 포기를 검토 중이라 한다. 경선 포기는 물론 한나라당 탈당이라는 극약처방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8일 중앙일보는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인단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결과는 이명박 전 의원이 53%, 홍 의원이 37%, 16% 포인트 차이다. 한달전 같은 중앙일보의 일반 서울시민 대상 조사에서 홍 의원이 12% 포인트 차이로 앞선 것과 정반대 결과다.
이에 대해 홍 의원은 측근을 통해 "일반 시민 상대 조사와 당 대의원 상대 조사가 거꾸로 나오는 것은 '이유 없는 마술'이 아니다"라며 "깊이 생각해 폭넓은 결심을 하겠다"고 밝혔다. 돈 경선, 조직 동원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 측근은 "홍 의원이 후보사무실 폐쇄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등록 마감일은 9일이다. 홍 의원은 아직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9일까지 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 서울시장 후보경선은 이명박 전 의원 혼자 나서는 결과가 된다.
과연 홍 의원이 후보등록을 포기할 것인지 아직은 분명치 않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는 심각한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대통령선거로 가는 가장 중요한 중간단계다. 그런데 돈 경선 시비로 경선 자체가 무산돼 버린다면 시장선거에 큰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이는 대통령선거에도 엄청난 악재다.
박근혜 부총재 탈당, 강삼재 부총재의 부총재직 사퇴, 김덕룡 의원의 탈당 시사, 박근혜-이수성 신당 창당 합의에 이어 서울시장 후보 경선 무산까지 겹친다면 이회창 총재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질 우려가 크다.
홍사덕 의원의 선택에 정가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바로 이 때문이다.
***홍사덕 의원 캠프의 불공정 경선 주장**
홍 의원 캠프가 지적하는 불공정 경선 사례는 여럿이다. 우선 '새서울 산악회'라는 사조직을 문제삼는다. 6-7개월 전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이 산악회에 서울지역 지구당 간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헌상 지구당 위원장과 간부들은 경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제한되어 있다.
또한 이 전 의원의 친형인 이상득 사무총장에게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총장의 보좌관이 여의도 모 호텔에 마련된 이 전의원 위장조직에 출몰하며 돕는 것이 불공정경선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다. 또 이 전의원 출판 기념회 겸 서울시장 경선 출정식에 당원들을 동원할 때 원외 지구당에 동원비를 지원한 사실도 있다는 게 홍 의원 캠프의 주장이다.
이회창 총재와 이 전 의원 사이를 의심하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이 총재가 언론사 세무조사 와중인 지난해 여름 느닷없이 싱가포르를 방문한 것부터 의혹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이 총재의 외유에는 이 전 의원이 수행했고, 당연히 이 전 의원이 비용을 대지 않았겠느냐는 의심이다.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의 유착관계가 성립돼 돈 경선 행태에 눈을 감는 것은 아니냐는 얘기다.
***홍사덕의 분노, 폭발하나?**
그렇다면 경선포기 불사를 외친 홍 의원의 결단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측근에 따르면 홍 의원은 이 총재와 당에 대한 배신감으로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한다. 동시에 이 총재의 '정치적 둔감함'을 한탄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는 12월 대선의 결정판임에도 불구하고 당내 경선에서부터 헤매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 후보가 출마할 경우 시민들의 지지도가 앞서 낙승할 수 있지만 이 전 의원의 경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홍 의원이 '경선포기 불사'를 외치며 초강수를 두는 배경이다.
일단 홍의원은 경선거부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신중한 편이다. 그러나 배신감이 깊어지면 어떤 선택을 할지 예측불허다. 아예 한나라당 탈당과 의원직 사퇴라는 극약처방을 내리지 않을 것으로 보기도 힘들다.
김덕룡 의원 같은 사람은 한나라당 탈당을 결심해 놓고 홍 의원이 동조한다면 훨씬 파괴력이 클 것을 믿고 있는 눈치다. 만약 홍 의원이 탈당하고 반 이회창 전선에 서면 이 총재로서는 중대한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의원이 탈당한 데 이어 김덕룡 의원의 이탈, 강삼재 부총재의 당직사퇴라는 위기상황에서 홍 의원까지 이탈하면 그건 최악의 상황이다.
이처럼 홍 의원은 "민심에서 앞선 후보가 나가야 본선에서 이긴다"는 논리, 그리고 "불공정을 바로잡는 이 총재와 지도부의 납득할 만한 조치가 없으면 판을 깰 수도 있다"는 위협, 이렇게 두 가지 카드로 이 총재를 밀어붙인 것이다.
***이 총재와 이명박 전 의원, 수습에 부심**
이명박 전 의원 측은 홍 의원의 초강수에 긴장하고 있다. 홍 의원이 거부하면 경선에 맥이 빠지고 본선에서의 경쟁력도 크게 떨어진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우선 이 전 의원은 돈 살포 의혹에 대해 펄쩍뛰며 부인했다. 그리고 "여론조사에서 불리하다고 후보직을 사퇴한다면 과거 이인제씨가 대선경선에 불복하고 당을 뛰쳐나간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면서 홍 의원 측을 공격했다.
하지만 조만간 홍 의원과 만나 '오해'를 풀 것임을 시사했다. "당이 어려울 때 끝까지 선의의 경쟁을 해 깨끗한 경선이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자세로 홍 의원 설득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회창 총재 측도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총재는 윤여준 기획위원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황망하게 수습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즉각 총재단 및 주요 당직자회의를 소집, 각급 선거에서 '이심(李心)' 중립을 거듭 강조하고, 돈선거 시비가 불거지지 않도록 후보들에게 엄중 경고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한 이 총재가 직접 홍 의원과 접촉, 설득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겠다는 뜻이다. 박근혜 탈당, 강삼재 부총재직 사퇴에 이어 홍사덕 경선포기가 굳어지게 되면 자칫 '이회창 대세론' 자체가 흔들려 버릴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총재의 수습책이 먹힐 것인가, 홍 의원의 경선포기로 가게 될 것인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등록 마감일은 9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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