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와 김덕룡 의원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통령후보 경선에 참여할 것인지, 하지 않는다면 과연 탈당할 것인지 초읽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일단 경선 불참선언이 있을 것이란 전망에는 당 안팎의 다수가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경선 불참이 탈당으로 이어질 것인지, 그 시기는 언제가 될 것인지는 누구도 선뜻 점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 전체의 지각변동과 긴밀히 연계된 중대 변수이기 때문이다.
***집단지도체제 둘러싼 '기싸움' 일단락**
한나라당은 20일 총재단회의와 당무회의를 잇따라 열어 대선후보 선출방식과 집단지도체제 도입 시기를 결정했다. 대의원 1만5천명, 일반 당원 1만명, 국민참여 경선을 통한 모집당원 2만5천명 등 모두 5만명의 선거인단을 통해 대선후보를 선출한다. 집단지도체제 도입 시기는 차기 대통령 취임 후 100-180일 이내로 결정했다.
이중 대선후보 선출방식은 이미 쟁점에서 벗어나 있었다. 국민참여 비율을 30%로 할 것인지 50%로 할 것인지가 쟁점이었는데, 이회창 총재가 지난 18일 비주류 측이 요구해 온 50% 안을 전격 수용했기 때문이다.
관건은 집단지도체제 도입 시기다. 박근혜 부총재와 김덕룡 의원 등은 이번 5월 전당대회부터 총재직을 폐지하고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주류측은 대선 승리를 위해 선거 이전 총재와 대선후보 분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선 직후 도입할 수 있다는 양보안을 제시했다.
19일 이 총재가 박 부총재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설득을 시도했지만 불발했고, 20일 당무회의에서 '대통령 취임 후 100-180일 이내'라는 원안대로 통과된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 눈길을 끈 것은 이부영 부총재였다. 박 부총재, 김 의원과 함께 비주류의 핵심으로 평가되어 온 이 부총재가 "대선 승리를 위해 '대선전 당권·후보 분리 주장'은 철회되어야 한다"며 "대통령 취임 후 3개월 이내에 집단지도체제를 위한 지도부 경선을 실시하자"고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이로써 비주류는 박근혜 부총재와 김덕룡 의원 둘로 좁혀졌다.
박 부총재는 20일 도산아카데미연구원 주최 세미나에 참석 "정당개혁을 위해선 1인 지배체제 극복이 선행돼야 하지만 현 시점에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당의 최종안을 보고 입장을 정리, 금주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김덕룡 의원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결정에 절대로 승복할 수 없으며 정치개혁을 위한 투쟁의 제2막을 열어가겠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경선불참 선언 후 상황 살필 것**
이제 입씨름은 끝났고, 행동만 남았다. 박 부총재와 김 의원은 배수진을 치며 이 총재를 압박했고, 이 총재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공은 박·김 두 사람에게 넘어간 셈이다.
두 사람이 탈당할 것인지 여부를 점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지금까지 두 사람의 행보를 볼 때 일단 경선 참여는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박 부총재가 자신을 직접 찾아온 이 총재의 절충안을 단박에 거부한 것이나 김 의원이 당무회의 결과에 대해 '시대 역행으로 절대 승복할 수 없다'고 반발한 것은 이미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들러리 경선 참여'는 안 하겠다는 것이다.
일단 경선에 참여하면 발이 묶인다. 경선 패배 후 탈당하게 되면 '제2의 이인제'가 되어 두고두고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개혁'이란 명분 아래 이 총재를 비판하면서 경선 참여를 거부하고, 추후 정치권의 동향을 살피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김 두 사람이 즉각 탈당을 감행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당 경선 이전 정계개편을 추진해 보려던 '신3당합당' 내지 '내각제 신당' 등의 움직임이 YS의 거부와 여론의 질타 속에 무기력해진 현 상황에서는 탈당 감행은 어려울 것이란 해석이 더 우세하다.
또한 이부영 부총재마저 이 총재 편에 섬으로써 당내에선 두 사람의 '당권·대권 분리 주장'이 완전히 고립된 상황이다. 당내 분위기는 이 총재 중심의 주류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박·김 두 사람의 반발이 'JP의 몽니'에 비유될 정도다.
탈당을 감행할 정치환경이 조성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의 향후 행보는 정치권 전체의 지각변동과 떼어서 전망하기 어렵다. 민주당 경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정가의 정계개편 추진세력들은 다시금 활동을 재개하게 될 것이고, 그 세력화의 추이에 따라 박·김 두 사람의 행보도 결정될 것이다.
***朴·金, 함께 움직일 것인지도 불투명**
박근혜 부총재와 김덕룡 의원이 함께 움직일 것인지 여부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지금까지 정가의 관측과 두 사람의 발언들을 종합하면 박 부총재는 이른바 '영남후보론' 쪽이고, 김 의원은 '개혁신당' 쪽이다. 이 둘은 서로 합쳐지기 어렵다.
'영남후보론'이 가시화되려면 YS와 JP, 그리고 민주당 동교동계 등이 한데 합치는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당장 20일에도 박 부총재는 YS의 대변인격인 박종웅 의원과 만나 앞으로의 정치권 변화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개혁신당'은 민주당 개혁파의 움직임이 관건이다. 김 의원은 민주당 정대철, 김근태, 정동영, 한나라당 이부영 의원 등과 함께 이른바 '여야 개혁파 5인 모임'의 멤버다. 박·김 두 사람이 앞으로 만나야 할 사람부터가 다른 것이다.
또한 두 사람의 정치적 배경도 전혀 상반된다.
박 부총재는 아버지의 후광을 바탕삼아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있지만 아직은 정치경력이 일천하다. 정치권내 독자적인 조직기반도 뚜렷하지 않다.
반면 김 의원은 박정희 정권에 맞서면서 정치를 시작했고, 상도동계 핵심으로 YS정권을 지내면서 정치권 안팎에 나름의 조직기반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대중적 인기는 아직 미미한 형편이다.
단순화시켜 본다면 박 부총재는 정치권 지각변동 여하에 따라 '간판스타'로 떠받들어져야 할 상황이고, 김 의원은 정계개편의 장기적 그림을 그려야 할 상황이다.
지금 현재 공통점은 '이회창 시대의 한나라당'에서는 각자의 비전을 찾을 수 없다는 것 하나 뿐이다. 이 공통점에 바탕을 두고 서로의 상황차이를 극복,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일 것인지도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두 의원은 그간 자신들의 당내투쟁이 당권싸움으로 비쳐지는 것을 우려 만남을 꺼려 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경선방식이 확정되었으니 적절한 시점에 회동, 연대투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 동안은 정계개편 등 정치권 지각변동의 출발점은 민주당이 될 것으로 예측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박근혜 부총재와 김덕룡 의원의 행보에 따라 한나라당이 그 출발점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박·김이 정치권 지각변동의 뇌관으로 떠오른 셈이다. 이래저래 당분간 두 사람에게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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