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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종말, 그 씁쓸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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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종말, 그 씁쓸함에 대하여

유시민의 시사카페 <3>

민주당의 임종(臨終)이 다가오고 있다.

며칠 후면 대통령 후보 경선에 들어갈 정당을 보고 못된 야유를 보내는 것 같아서 무척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는 준비가 필요한 법, 지난 15년 동안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며 이어져 왔던 '김대중당'의 슬픈 종말을 담담하게 맞으려면 더는 미룰 수가 없다.

'김대중당'은 호남지역과 개혁세력의 연합이다. 1987년 창당한 평민당에서부터 2000년의 새천년민주당에 이르기까지 여기에는 변함이 없다.

이 두 세력의 연합만으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었기에 DJ는 '유신본당' 김종필씨와 손을 잡았고, 최초의 정권교체는 그렇게 해서 이루어졌다. JP와 갈라선 뒤 김대중 정권은 소수파로 떨어졌고, '호남실세'들의 무능과 전횡이 불러일으킨 쇄신파동의 와중에 불거진 DJ의 총재직 사퇴 이후 민주당은 자력갱생을 위한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민주당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다. 그 병의 이름은 '절망(絶望)'이다. 이른바 이회창 대세론을 뒤엎을 수 없다는, 정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정치적 절망감이다.

병이 깊었다는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드러났다. 민주-자민-민국당의 신3당합당 추진론자들이 며칠 동안 동분서주하며 벌였던 저질 코미디가 그렇고, 자기네 가운데 누가 나가도 질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민주당 경선 주자가 하나 둘이 아니라는 사실도 그렇다.

민주당은 절망의 강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우리가 익히 보아온 '김대중당'과는 다른 정당으로 변신하고 있다. 불과 5년 전 한나라당의 경선 후보였던 이인제 고문이 민주당 대의원과 당원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그 변신의 예비단계라 할 수 있다.

이인제 씨는 스스로 강조하는 바와 같이 젊은 지도자라는 점을 제외하면 정책과 노선에서는 이회창 총재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 '국민 지지도'를 명분으로 그를 지원하는 동교동계 구파의 전략은 결국 호남과 충청의 지역연합을 구축함으로써 민주당내 호남세력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시점까지 '이인제 대세론'이 지배하는 민주당의 경선 판도가 흔들릴 조짐은 나타나지 않았다. 판세가 그대로 이어져 이인제씨가 후보가 되고, 또 12월 본선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민주당은 호남-충청의 순수 지역연합정당으로 굳어질 것이다.

민주당의 비호남 지지자들은 정권교체라는 시대적 과제를 위해 DJP의 지역연합을 용납한 바 있다. 하지만 권노갑-이인제의 순수 지역연합까지 승인할 리는 없다. 그럴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인제 고문이 본선에서 패배할 경우에도 동교동계 구파와 개혁세력은 당을 함께 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호남과 개혁세력 연합으로서의 민주당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절망의 병은 동교동계 구파뿐만 아니라 민주당 개혁파까지도 감염시켰다. 각종 여론조사 지지도를 기준으로 볼 때 현재 2,3,4위를 달리는 노무현, 정동영, 김근태 고문은 모두 (자기네들끼리는 다른 점이 있겠지만) 넓은 의미의 민주당내 개혁세력에 속한다.

이들은 개혁연합을 만들어 민주당내 지역연합을 견제하고 당의 정체성을 지키라는 비호남 개혁세력의 요구를 외면한 채,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누가 대표로 나가든 이인제 대세론을 뒤엎을 수 없다는, 그러니 이번 경선에서 나름대로 내일을 위한 교두보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절망 속의 살 길 찾기'라고나 할까.

DJ는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성수대교 아래 한강 둔치에서 열린 연설회에서 진보세력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평민당을 발판 삼아 당신들의 뜻을 펴시오." '김대중당'은 진보세력 정치세력화의 발판이 되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재야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그래서 민주당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민주당의 임박한 종말은 가슴 쓰린 일이다. 그래도 정권을 바꿔보긴 했다는 것이 한 가닥 쓸쓸한 위안으로 남았을 뿐이다. 이런 사태를 반기는 이가 없는 건 아니다. '김대중당' 때문에 진보세력의 정치적 진출이 지체되었다고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원들이다.

눈앞에 다가온 민주당의 임종을, 우리에게 익숙한 '김대중당'과의 작별을 예감하면서 심사가 이래저래 복잡하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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