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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이 아니라 '김혁규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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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현철이 아니라 '김혁규 공천'

정초 YS-昌 만남에서 나온 세 가지 이야기

김영삼 전대통령은 1월 중순 고향나들이 때 부산에서 저녁모임을 가졌다.

김 전 대통령을 기다리는 동안 화제는 자연스레 이번 대선에서 YS는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에 모아졌고, 모두들 이회창 지지를 예상했다. 어떤 이는 김현철씨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보궐선거에 나서게 될 것이라는 신문보도를 들먹이며 오늘 만찬에서 김 전대통령은 이회창 지지를 내비치게 될 것이라는 성급한 추측도 했다.

그러나 이런 예측은 빗나갔다. 김 전대통령은 만찬 인사에서 이회창 총재나 한나라당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신의’를 강조했다. 신의 없는 사람은 국민도 결국 배신한다는 YS의 지론을 이 자리에서도 편 것이다.

정초 이회창 총재가 상도동으로 김 전대통령을 방문, 정중한 인사를 했다. 신문들은 김 전대통령이 전에 없이 따뜻하게 이 총재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부산 YS 팬들의 ‘이회창 지지’ 예측은 이런 보도에 근거했다.

그런데 예측은 빗나갔다. 누구보다 YS를 잘 안다는 부산의 YS 팬들이 YS 의중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게 맘 상했던지 만찬이 끝나고 YS가 떠난 뒤 모두들 다시 자리에 앉아 YS 의중을 탐색했다.

YS의 신의론이 이회창을 겨냥한 것인지 혹은 일반론인지를 두고 설왕설래했다. 그리고 수백 명 YS 부산 팬이 내린 결론은 YS는 아직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YS가 말한 신의 얘기의 표적은 여전히 이회창 총재인 것 같긴 하지만 그러나 이회창 총재에게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 좀 더 두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

***YS, ‘DJ의 실정(失政)’, ‘무력한 야당’ 비판**

그럼 정초 YS-이회창 면담은 뭐였을까.

이회창 총재는 이 면담에 정치적 의미를 애써 지웠지만 사실은 어떤 면담보다 정치적 면담이었다. 우선 면담은 상당 기간의 막후 내왕이 있었다. 서청원 의원은 그 한 사람. 그는 YS-이 총재 사이를 내왕하며 면담을 주선했다.

면담에선 지난 일을 사죄하고 협조를 구하러 간 이 총재가 많은 얘기를 했고 YS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YS가 듣기만 한 건 아니었다. YS는 세 가지를 얘기했다.

첫째, DJ의 실정(失政) 얘기다. 김대중 대통령이 나라의 기초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데 대해 두 사람은 의견이 일치했다.

YS는 “DJ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극언했다. 특히 북한정책에 대해선 “나는 그의 사상을 의심한다. 그의 과거에 문제가 있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둘째, YS는 야당의 역할에 대해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원내 제1당, 사실상 과반수 의석을 가진 강력한 야당이 전혀 강력하지 않다고 YS는 지적했다.

“요새 같은 야당은 일찍이 없었다. 시민운동단체도 야당을 거들지 않는다. 지금 야당은 마치 ‘왕따’ 당한 꼴이다. 국민의 강한 지지도 따르지 않고 있다. 그 책임은 야당 자체에 있다. 좀더 강하게, 보다 단호하게 대응해 나갔어야 했고 이제부터라도 강한 야당이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총재 러시아엔 왜 갔소?” 라고 YS는 물었다. 정기국회가 열려 있는 기간 야당총재가 나라를 비운 전례가 없다고 YS는 말했다. 국회의원들에게 금족령을 내려놓고 총재가 스스로 어길 수는 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날 특별한 일이 없던 해도 정기국회 회기 중엔 총재는 외유를 안 했다. 그런데 지난 해 정기국회는 중요한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런 중요한 일보다 더 중요한 뭐가 있어서 러시아에 간 것인가. 미국 방문이었다 해도 회기 중 외유는 안 되는데 러시아엔 왜 갔느냐”고 따진 것이다.

그러면서 YS는 이 총재에게 미국방문을 권유했고, 이 총재도 이 대목에서 “실은 미국 방문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김혁규 지사 의리 지킨다고 공천 안 주면 안돼”**

셋째 얘기는 김혁규 경남지사에 대한 것이었다. “듣자하니 경남지사는 이00 의원을 내정했다지요” 라고 운을 뗐다.

“김 지사는 내가 어렵던 야당시절 미국에서 만났다. 그는 내가 미국 갈 때마다 집에서 파티를 열어주었다. 매번 4백명 넘게 모이곤 했는데 단 한번도 거르는 일없이 그런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나라 안은 탄압이 극심했던 군부독재의 시대, 야당 총재한테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게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데도 기꺼이 이를 감당했다.”

“92년 대통령 선거 때 잠시 귀국했기에 나를 도와달라고 청했다. 당에 들어온 게 아니고 외곽에서 별도로 도왔는데 너무 열심이고 잘 했다. 그래서 청와대로 데려갔다가 경남지사로 발령했다. 지사 일에서도 성실성과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도지사가 선거직으로 바뀔 때 공천을 했고 그는 무난히 당선했다. 그리고 역시 일을 잘 했기에 재선됐다. 지금도 잘하고 있고 경남도민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데 공천을 안 하기로 했다고 들었다. 왜 그를 공천에서 아예 제치고 있는가.”

“김 지사는 서울에 오면 이 총재 당신한테 먼저 가는 것이 아니고 내게 온다. 더러 당신한테는 못 가는 때가 있어도 내겐 빼놓지 않고 다녀간다고들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사실이 어떤지는 몰라도 김 지사는 서울에 오면 나를 찾는다.”

“이 총재! 6년 후가 될지, 6개월 후가 될지 사람일은 모르는 일이지만 이 총재도 언젠가는 은퇴할 날이 오지 않겠소. 그럴 때 요새 따르던 측근들이 단 한사람도 찾아오지 않는다면 이 총재 마음이 어떻겠소. 유별나게 충성스럽던 사람이 그리 변하면 ‘정말 의리 없고 신의를 모르는 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소. 김 지사는 신의를 지키고 의리를 알고 실천하는 것 아니오. 그게 공천에서 제치는 이유가 되어서야 되겠소” 라고 YS는 말했다.

이 총재는 YS의 의리 얘기에 동감을 표시했다. “김 지사를 그런 이유로 제치는 일은 결코 없도록 하겠다”는 것도 약속했다.

***이총재 YS 뜻 무시해 관계개선 실패**

여기까지가 정초 YS-이회창 회동에서 YS가 한 세 가지 이야기다.

대문까지 배웅 나갔던 YS가 이 총재 소매를 끌고 들어와 귓속말을 나눈 게 정가의 화제가 되었었는데, 실은 그날 회동 결과 발표는 이 총재에게 전적으로 맡기겠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그날 회동은 대단히 정치적인 회동이었고,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왜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는 이전으로 돌아간 것일까. 회담 뒤의 얘기가 YS 심기를 건드린 것은 아닐까.

우선 이 총재가 “정치적 의미는 부여하지 말라”고 한 대목이다.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말이 YS에게 어떤 의미로 와 닿겠는가. ‘YS는 정치에 초연해야 할 분이며, 그날 만남은 정초의 인사 그 이상은 아니다’라는 이 총재의 의도가 물씬 풍기지 않았을까. 그럴 요량이었다면 왜 갔을까.

그 뿐인가. 바로 뒤이어 한나라당은 시도지사 후보는 당 경선으로 공천한다고 발표했다. “당원들이 경선 투표를 합니다. 그러니 총재로선 중립을 지키는 것 외엔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이 총재가 YS에게 보낸 회답이라고 YS는 읽지 않았을까.

***김현철 보선 출마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또 하나의 쟁점, 차남 김현철씨의 보궐선거 출마 얘기다.

김현철의 보선 출마는 거론된 일도 없고 이 총재 지지여부를 그 문제와 결부시켜 고려할 사안이 아니다. 그 점 YS는 확고하다. 그런데 느닷없이 ‘보선 공천을 약속했을지도...’ 라는 보도가 나왔다.

회담 후 발표론 아무 것도 없다. 이 총재가 아무 선물도 안 가져갔는데 YS가 달라질 수 있겠는가. 이런 추측이 ‘김현철 공천설’을 생산해 냈다. YS로선 가장 못마땅해 했을 대목이다.

흔히 이 총재를 가리켜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자리로 옮겨 생각할 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가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YS면담의 무소득도 그 탓인가?

“우리 정치는 변해야 한다. 대통령선거는 변화로 연결되어야 한다. 어느 정당, 어느 후보가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를 만들어갈 의지를 갖고 있는지가 중심문제다. YS의 관심, 명분 선택은 여기서 찾게 된다. 지금은 어떤 것도 결정한 것이 없다.”

YS 주변이 말하는 YS의 현재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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